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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사적 윤리에 개입하지 마라"

입력
2020.09.0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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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펜든 리포트 (9.4)

1957년 '울펜든 보고서'로 유명한 영국 학자 존 울펜든. lgbthistoryuk.org

1957년 '울펜든 보고서'로 유명한 영국 학자 존 울펜든. lgbthistoryuk.org


컴퓨터공학의 선구자 중 한 명인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은 동성애 혐의로 1952년 영국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2년 뒤 자살했다. 그 직후 영국 정부는 동성애자 처벌이 합당한지 재고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다. 여성 3인을 포함한 법률가, 하원의원, 의사, 목사 등 13명이 뽑혔고, 의장에는 리딩대(Reading University) 부총장 존 울펜든(Sir John Wolfenden) 경이 위촉됐다. 당시 형법상 동성애 행위는 무조건 불법이어서, 5파운드 벌금에서부터 종신형까지 가능했다.

1957년 9월 4일 첫 보고서가 발표됐다. 요지는 '성인 간 동의하에 이뤄진 동성애 행위는 범죄로 처벌하지 않는 게 옳다'는 거였다. 5,000부가 인쇄된 155쪽 유료 보고서는 발표 당일 한 시간도 채 안돼 매진됐다. 3년간의 확대 토의를 벌여 위원회가 내린 결론 역시 '동성애 불법화는 시민 자유의 침해'라는 거였다. 최종 보고서는 "사회와 법은 '사적 윤리의 문제인 개인 행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당시 성인은 만 21세 이상이었고, 법적 개입 반대의 전제는 '사적인 공간'에서 '동의하에 이뤄진 행위'였다. 반대의견은 단 한 명, 제임스 어데어(James Adair)라는 글래스고 전 검찰총장이 냈다. 그는 "동성애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동성애를 조장하는 것이며, 음란행위에 면허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10년 뒤인 1967년에야 '개정 성범죄법(Sexual Offences Act)'으로 울펜든 보고서를 수용했고, 스코틀랜드(1980년)와 북아일랜드(1982년)가 뒤를 이었다.

한국의 보수진영은 차별금지법 반대의 논거로 영국의 2010년 평등법(Equality Act)이 동성혼 법제화(2014)의 징검다리였다며 공세를 편다. 영국은 이미 2004년부터 동성 파트너십(Civil Partnership)을 법으로 인정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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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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