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ㆍ시민단체? "피해 인정질환 늘려야"
가습기살균제 참사 비대위 "정부, 추모재단 설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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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가들과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자들이 3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참사 9주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지 9년이 된 31일 피해자 유족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아직도 피해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피해 인정질환을 늘리고 인정률도 높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은 이날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정부인정질환 인정률이 8.2%로 판정신청자 10명 중 1명도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체계는 정부가 지원하는 구제급여(1ㆍ2단계 피해자)와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의 자금으로 피해 보상을 해주는 특별구제계정(3ㆍ4단계 피해자)으로 나뉜다. 피해구제위원회는 정부 재정으로 지원하는 구제급여 대상자를 선정하고, 이 피해 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그와 같은 수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질환자는 구제계정운용위원회가 선정한다.
환경부가 발표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지원 현황'을 보면 폐질환은 8.5%, 천식은 7.6%, 태아피해는 50%로 전체 1만1,518명을 판정해 8.2%인 949명을 인정했다. 판정신청자 10명중 1명도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은 셈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폐 질환, 천식, 태아 피해 3개 질환만 가습기살균제 피해질환으로 인정하고 있다. 센터는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결과로 기타 폐질환과 신경계 질환 등 각종 병에 걸리는 경우가 보고되고 있지만 이들 질환이 아니면 피해 신고를 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인정질환에 포함돼 피해신고를 하더라도 실제 정부로부터 피해 인정을 받고 보상을 받기 어려운 점도 문제로 꼽힌다. 센터는 "기업기금으로 지원하는 계정인정자를 포함해도 피해신고자의 절반도 안 되는 43%가 피해자로 인정받았고 피해지원금도 37%만 지급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전히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질환이 많다"며 "인정질환도 실제 질환별 인정기준이 매우 엄격하다"고 덧붙였다.
센터 측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문재인 정부 들어 변화의 조짐을 보였지만 실제로는 초라한 낙제 수준의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이성진 환경보건시민센터 정책실장은 "정부가 피해질환으로 인정한 천식의 경우에도 기업들은 피해자들이 낸 소송에서 합의를 하지 않고 있다"며 "아직까지도 제조사들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31일 기준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자는 6,844명, 사망자는 1,599명에 이른다. 하지만 환경부가 한국환경보건학회에 의뢰한 피해조사에 따르면, 전체 노출자는 400만명에 잠재적 건강 피해자도 5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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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유가족들 "판매 기업으로부터 사과 한번 없었다"
이날 현장에는 피해자 유가족들이 참석해 아직 가습기 제조사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10일 사망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남편 김태종씨는 "아내가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는 SK가 만들고 애경이 이마트에 공급한, 굴지의 회사들이 관련된 상품이다"며 "우리가 물건을 팔아줘 성장한 기업인데 피해자가 죽는 순간까지 사과 한번 없다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 장모와 아내를 2014년 2월 떠나 보낸 조병열씨는 "사별 후 지금까지 (판매 기업으로부터) 명확한 답변 한마디 듣지 못하는 이 세상이 너무 서글프고 힘들다"며 발언 도중 눈물을 쏟기도 했다.
한편 이날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가 나서 추모재단을 설립하고 전체 피해자를 위한 추모제를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의 피해판정 기준과 인정기준 등을 바로 잡고 불인정 피해자 전부의 피해를 재판정해야 한다"며 "피해신청자의 올바른 배상과 보상을 촉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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