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오후(summer afternoon), 여름의 오후, 나에겐 언제나 영어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단어.”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살았던 소설가 헨리 제임스가 한 말이다. 유난히 긴 장마와 불볕 더위에 지친 한국의 독자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말일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오래전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여름 오후보다는 가을 아침이나 봄비 같은 단어의 조합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하지만 미국에 온 이후 북위 43도의 도시들에서 20여년을 살고 보니 여름 오후까지는 아니어도 여름 저녁나절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진다. 겨울이 길고 어두운 이 북방의 도시에서는 여름 동안 일 년을 버틸 햇빛과 에너지를 충분히 저장해 두어야 한다. 그래서 해가 긴 이곳의 여름은 삶의 속도가 느려지고 그 밀도는 높아지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자연과 가까이 보내기 위해 숲과 호수를 찾아 나서고 도시의 거리 축제나 행사도 대부분 여름에 몰려 있다. 이런 여름의 삶의 리듬은 대부분 시간을 일터와 집안에서 보내는 겨울과 대조된다. 헨리 제임스가 영어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단어로 칭송한 여름의 오후는 천문학적, 기상학적 시간이기 이전에 사회학적 시간인 셈이다.
그런 여름이 저물어 가는 이맘때쯤이면 언제나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기 마련이다. 직업상 여름이 끝나가는 시점이 새 학기의 시작과 맞물려 더욱 그렇다. 사회학자 대니얼 벨은 대학교수 노릇을 할 만한 세 가지 이유가 6월, 7월, 8월이라고 했다던가? 하지만 올해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에서 느껴지는 가을을 맞는 마음이 남다르다. 우선 아쉬움보다는 어떤 안도감이 앞선다. 코로나19의 그늘 아래서 여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들은 다 취소되고 매일 매일이 수요일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지속된 끝에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라는 정상성이 주는 안도감이다. 한국에서는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조금은 엉뚱한 제목으로 소개되었던 영화에서 멈춰 버린 시간의 감옥에 갇혀 있던 주인공 필 코너스가 마침내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해 새로운 하루를 맞는 기분이 이랬을까?
하지만 그런 안도감 사이로 어쩔 수 없이 불안과 상실감, 그리고 분노가 고개를 내민다. 3월에 시작된 이 비정상적 삶이 어느새 여름을 지나 가을에 접어들었지만 미국의 상황은 좋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되어 이런 삶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지 모르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다. 그 시간 동안 제대로 작별인사도 못하고 떠나보낸 사람들, 젊음을 바쳐 키워 온 가게, 배움과 우정의 기회, 사랑하는 손주와의 시간, 그 외 돌아오지 않을 모든 소중한 것들이 주는 상실감이다. 이 모두의 희생으로 번 시간이 코로나19에 대한 효과적 대응을 준비하는데 쓰이지 못하고 철저히 낭비되었다는 데서 오는 분노다. 사회적 연대를 튼튼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어야 할 모두의 희생이 오히려 편을 가르고 갈등을 부추기는 핑계로 이용되는 것에 대한 분노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이제 두 달 남았다. 중요하지 않은 선거가 없지만, 코로나19, 폭발하는 인종 갈등, 그리고 경제 침체라는 삼중의 위기 속에 치러지는 이 선거의 결과에 참 많은 것들이 달려 있다. 미국인들은 불안과 상실감, 그리고 분노를 안고 투표소에 들어갈 것이다. 11월 4일 어떤 세상에서 잠을 깨게 될지, 기다려야 할 두 달의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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