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딩 챔피언’ 두산의 2020시즌 행보는 연이은 부상 악재로 가시밭길 그 자체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 일지를 나열하면 끝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29일 현재 팀 성적은 94경기 52승2무40패(승률 0.565)로 4위다. 8월 들어 LG의 급상승세로 처음 3위 자리를 내주고 4위로 내려갔지만 줄곧 선두권을 지키면서 1경기 차 순위 경쟁을 계속 하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5월 개막부터 8월까지 4개월간 10개 팀 중 단 한 번도 월간 승률 5할 밑으로 기록하지 않은 유일한 팀이란 부분이다(5월 14승9패ㆍ6월 14승11패ㆍ7월 12승11패ㆍ8월 12승2무9패). 그만큼 두산의 뚝심이, 아니 그 무엇인가 남다른 힘이 있다는 증거다. 여기서 남다른 힘이라면 대부분 두산의 ‘화수분 야구’라는 근간을 얘기하겠지만 사실 지금 상황은 그 힘만으론 버겁고, 이젠 그 힘도 많이 떨어졌다.
잘하고 있지만 위기다. 앞서 두산이 남다른 힘으로 잘 버텨내고 있다고 높게 평가했지만 중위권 판도가 흔들릴 만큼 위기는 위기다. 게다가 올 시즌 우승을 노려야 한다면 정말 쉽지 않다. 지금 두산은 하루하루가 위태위태하지만 버텨내고 있을 뿐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텨내는 '잇몸야구'다. 올 시즌 7월 이후 김태형 감독의 게임 운영을 지켜보며 미디어가 평하는 문구 중 하나다. 아주 정확한 표현이다. 감독의 역량 중 가장 높게 평가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위기 관리다. 잇몸 야구는 정상 상황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 감독의 남다른 역량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이가 없으니 잇몸으로라도 씹어야 살 수 있다. 얼마 전 사랑니를 뽑고 나서 통감했지만 잇몸으로 씹는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실감했다. 마찬가지다. 이 없이 잇몸으로 버티는 야구는 또 다른 큰 상처와 고통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승부의 경쟁에서 생존해야 한다. 승리를 위탁 받은 감독은 감성보다 이성, 이상보다 실리를 내세운다. 특히 부상자들이 쏟아진 김 감독은 더욱 그렇다. 시즌 중ㆍ후반을 승부처로 삼겠다는 다른 팀들의 여유(?)와는 달리 김 감독은 하루하루 한 경기, 한 경기를 붙잡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버텨서 시즌 65%를 소화했다.
재미 있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이 없이 잇몸으로 씹다 보면 어느새 굳은살처럼 고통에 단련된다. 빠져버린 이 주변이 강해지고, 안 아프게 씹는 나름의 요령과 방법도 생긴다. 올해 김 감독의 두산 야구가 딱 그렇다.
김 감독의 직설 화법은 선수단에 긴장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특히 어린 선수들의 숨겨져 있는 힘을 최대한 끌어냈고, 결과로 이어지게 했다. 구멍 난 선발진 두 자리 중 한 자리는 이미 최원준으로 메워졌고, 류지혁의 트레이드 이후 대체불가였던 유격수 김재호의 부상은 3루수 허경민에게 또 다른 자신감을 심어주며 버텨냈다.
잇몸 야구 또는 하루살이 야구처럼 분명 비춰질 수도 있지만 위기에 온 힘을 다해 대처하면서 두산에 새로운 힘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그리고 이 새로운 힘은 두산을 지금의 자리에 버티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두산은 이번 시즌 후 주전급 대다수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획득하며 팀 전력 구성에 큰 혼란이 올 것이다. 때문에 혼란이 닥치기 전 올해를 우승 적기로 삼는다. 많은 전문가와 필자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잇몸 야구로 평가되는 2020시즌 김 감독의 위기 관리 역량을 보면서 최근엔 조금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FA 효과’로 우승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위기의 한계를 넘어서며 새로운 힘을 갖게 된 두산 야구에 또 다른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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