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루트 참사 그 후, 식지 않는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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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 참사 그 후, 식지 않는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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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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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석
김강석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레바논 베이루트 폭발 참사 현장에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려 참석 시민들이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순간을 대형 화면으로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우리나라에서 민중가요는 대중들이 권력에 저항하여 시위나 집회를 할 때에 함께 부르는 노래로 활용되어 왔다. 특히 민중가요가 한창 불렸던 시기는 1980년대다. ‘광야에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와 같은 다양한 노래가 시민들의 저항의식을 표출하는 통로로 활용되었다.

정치적 불안정이 심한 중동 지역에서는 우리 민중가요의 성격을 갖는 시위 노래들이 종종 등장한다. 2011년 아랍의 봄이 시작된 튀니지에서는 엘 제네랄이란 예명으로 잘 알려진 래퍼가 재스민 혁명의 주제곡을 불렀다. 엘 제네랄의 본명은 하마다 벤 아모르이며, 벤 알리 대통령을 비판하는 가사의 랩을 제작하여 정권이 물러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무바라크 정권에 대한 시위가 격화되었던 이집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드록 가수인 라미 에삼은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수백만 명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대표곡인 '이르할('물러나라'라는 의미)'을 불렀다. 당시 집회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은 무바라크 퇴진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은 라미 에삼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후 이집트에 새로운 알 시시 군부 정권이 들어서자 라미 에삼은 핀란드와 스웨덴으로 거처를 옮겨 지금까지 음악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아랍의 봄의 열기가 수그러들면서 한동안 이런 유형의 노래를 잊고 지내 왔다. 그런데 최근 레바논에서 들려온 소식은 사라졌던 관심을 되살아나게 해주었다. 지난 8월 1일 레바논에서는 군 탄생 75주년을 기념한 음악회가 방송을 통해 중계됐다. 다채로운 공연에는 소프라노 가수 마지드 엘 루미의 순서가 포함되었다. 그녀는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세계 3대 테너로 불리는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멋진 무대를 선보였을 만큼 인정받는 음악가로 알려져 있다.

이 날 마지드 엘 루미가 부른 노래는 상처로 얼룩진 베이루트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변화를 갈망하는 '야 베이르투(Ya Beirut)' 라는 곡이었다. 시리아 출신 시인 니자르 캅바니의 시에 곡조를 입힌 곡으로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래다. 그런데 공연 도중에 논란거리가 생겼다. 마지드 엘 루미의 노래에 코러스를 넣어주며 함께 부르던 합창단원들이 원곡 가사를 왜곡한 것이다. “혁명은 슬픔의 연원에서 나온다”라는 노랫말을 빼먹었다. 이를 두고 혁명이라는 말 자체를 두려워하는 레바논 당국이 사전 검열을 통해 예민한 가사를 다르게 불렀다는 비판이 SNS를 통해 확산되었다.


드론으로 촬영한 레바논 베이루트 폭발 현장. 뉴시스


논란이 커지자 레바논 출신의 세계적인 가수 낸시 아즈람까지 정부에 대한 비판에 가세했다. 전 세계 아티스트를 대상으로 하는 월드뮤직어워드에서 여러 차례 수상한 바 있는 낸시 아즈람은 명실공히 아랍 지역 최고의 가수로 손꼽힌다. 그녀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혁명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문장 하나에는 온통 관심을 쏟는 정부 당국이 왜 베이루트 항에 있던 2,750톤의 인화성 물질에는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느냐' 라고 일침을 가했다. 낸시 아즈람은 8월 4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발발한 대참사를 사실상 방조한 정부가 가수의 노랫말에는 지나친 통제를 가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었다. 당시 베이루트 항에서는 거대한 버섯구름이 일어나며 마치 핵폭발을 연상시키는 엄청난 재앙이 발생했다. 폭발 현장으로부터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건물마저 무너졌고, 베이루트 항구 주변은 완전 초토화되었다. 레바논 참사의 원인은 항구에 수년간 보관되어 온 인화성 물질인 질산암모늄 탓으로 알려졌으며 레바논 정부가 위험 물질을 방치했다는 거센 비난이 일어났다. 대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하산 디아브 총리는 짧은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야만 했다.


레바논 베이루트 대규모 폭발 참사 이후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현재까지 레바논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분노는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우려 속에서 다소 줄어들긴 했으나, 또 다시 대규모 시위가 재현될 가능성은 상존한다. 레바논 정국이 대폭발의 후유증에서 조속히 회복되고 안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를 위해서는 레바논 당국이 시위 확산을 우려해 노랫말을 검열하는 구태의연한 방식을 버리고, 국민들의 안위를 진정으로 돌아보아야만 할 것이다.

김강석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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