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나 지인 사칭하는 '메신저 피싱' 기승
구글 기프트 카드, 상품권 등 대리구매 유도
"엄마, 내가 휴대폰이 고장나서 수리 맡기고 잠깐 문자하는 건데…"
어느날 갑자기 낯선 휴대폰 번호에서 온 문자.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처한 가족 혹은 친구라고 주장하면서 구글 기프트 카드나 문화상품권 등의 대리 구매를 요구합니다. "급하다"는 채근에 못 이겨 근처 편의점이나 대형마트로 향하시려던 발걸음, 잠시 멈춰주세요.
이 문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언택트 소통이 늘어나면서 덩달아 기승을 부리는 금융 사기, '메신저 피싱'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1~4월 전국 메신저 피싱 피해액은 12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4억 원)보다 52%나 훌쩍 뛰었습니다. 과거 기승을 부리던 보이스 피싱이 요즘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한 메신저 피싱으로도 옮겨왔단 겁니다.
"지금 뭐해? 바빠?" 묻는 문자ㆍ카톡, 조심하세요
그렇다면 주로 쓰이는 메신저 피싱 수법은 무엇일까요. 우선 이들은 '엄마, 아빠, 지금 뭐해?' '많이 바빠? 바쁜 거 아니면 톡 해줘'와 같이 가족 또는 지인을 사칭하고 피해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질문을 합니다
기존 카카오톡 등 SNS 계정이 아닌 새로운 계정이나 낯선 번호를 사용하면서 "휴대폰 액정이나 충전단자가 망가져 PC로 문자나 카톡을 보내게 됐다"고도 설명하죠. 휴대폰이 고장났다는 핑계로 피해자가 전화를 통해 신원 확인도 할 수 없도록 말이에요.
이같은 메신저 피싱은 이전에는 대출금 상환이라던가 지인한테 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는 이유로 대리 입금을 종용했다면, 요샌 근처 편의점 등에서 구글 기프트 카드 같은 상품권을 몇 십 만원, 많게는 수 백 만원 어치를 사달라고 하는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지나치게 많은 금액에 의심을 품으면 "외국인들 상대로 상품권을 판매하고 있다. 수익이 좋다"고 둘러댑니다. 수고비를 챙겨준다고도 하죠. 상품권을 대리 구매하면 뒷면의 '일련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는데요, 이 번호 절대 알려주면 안됩니다. 또 주민등록증이나 신용카드의 앞ㆍ뒷면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 역시 응해선 안 되겠죠.
상품권 사기, 피해 알아차려도 계좌정지 등 조치 어려워
사기꾼들이 상품권을 '미끼'로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계좌에 대한 지급 정지를 피할 수 있어서라는데요. 은행 계좌로 입금을 유도한 경우엔 피해자가 사기 사실을 깨닫고 경찰 또는 금융사에 지급 정지 요청을 하면 돈을 빼가기가 쉽지 않지만, 상품권 일련번호를 통한 피싱은 이런 즉각적인 대처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구글 고객센터는 이같은 사기수법이 횡행하자 홈페이지에서 신고 접수를 받고 있습니다. 다만 환불 등의 조치는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에 한해 해당 카드를 구입한 점포를 통해 가능합니다. 문화상품권 발행업체 한국문화진흥이 운영하는 온라인 사이트 컬쳐랜드에서는 노출된 핀 번호를 일정 기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블록 처리'도 해준다고 하네요.
어느 때보다 극성인 메신저 피싱에 이달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대책을 요구하는 청원도 올라 왔습니다.
구글 기프트 카드를 구매해달라는 말에 넘어가 무려 1,015만원의 피해를 봤다는 청원인은 "(카드의) 판매액이나 개수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어요. 또 점원이 이를 판매하기 전에 '사기에 사용되는 상품권'이라는 고지를 해줬으면 좋겠다고도 했죠. 실제로 수십만원 어치의 상품권을 사는 이를 수상하게 여긴 편의점 직원이 "피싱의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 사고를 막은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피해를 막으려면 무엇보다 본인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겁니다. '뭐 해'라는 가족의 연락까지 의심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지만, 사기를 당한 이후에 하는 후회는 너무 늦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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