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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바로 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입력
2020.08.27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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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권경훈 부산취재본부 차장

권경훈 부산취재본부 차장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 수사 관련 이야기다. 부산경찰청은 지난 25일 넉 달 동안의 진행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강제추행 혐의만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는 내용이었다.

4ㆍ15 총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 사퇴 시기를 총선 이후로 조율하거나 총선 전 사건 무마를 시도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 지난해 또 다른 직원을 성추행하고 불법 채용한 혐의 등에 대해서도 밝히지 못했다. 주요 사안들이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났다.

경찰은 “저인망식 수사를 펼쳤다”는 수사학적 표현을 썼다. 실제 경찰은 참고인만 59명을 소환한 것을 비롯해 수 차례의 압수수색, 통화ㆍ문자 메시지 분석 등을 실시했다. 심리분석과 법률자문 등 외부 전문가도 투입했고, 수사 자료만 4,600쪽이 넘는다고 했다. 그러면 같은 수사학적 표현으로 ‘고래도 지나갈 수 있는 그물을 사용한 저인망 또는 걸릴 것이 없는 곳에 그물을 친 저인망은 아닌지’ 되묻고 싶었다.

수사 결과는 혐의를 새롭게 입증한 것이 없다시피 했다. 오 전 시장이 사퇴를 하면서 자백한 내용의 수준에 그친 것이다. 야당은 “넉 달 동안 경찰 인력 30여 명이 투입된 수사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초라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결과”라고 반발했다.

8,000건 정도의 통화 내용을 분석하는 등 광범위하게 조사했지만 청와대나 여권 등과 교감한 것은 없다고 했다. 작정하면 누가 흔적을 남기겠나. 직접 만나거나 종이에 적어 주고 받으면 추적이 쉽지 않다. 다른 드러나지 않는 방법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고, 그랬을 가능성이 없을 수도 있지만 ‘8,000건’의 통화 분석으로 할 일을 다했다는 식은 아닌 듯 하다. 경찰 조직 안에서 조차 “(정치권) 눈치 보느라 늦었지”라는 혀 차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 온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어쩌면 애당초 강제추행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사에 매달린 경찰들의 노고를 모르는 것도 아니다. 수사 결과를 두고 논란이 일고, ‘부실’이니 ‘늑장’이니 여러 지적이 나오는 것도 예상하던 바다. 그런 논란과 지적이 본질인지 아닌지는 일단 접어 두자.

다만 이번 사건을 경찰의 수사 능력과 과정, 결과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앞으로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라는 기본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정치적 해석을 가져올 수 있는 사건인 경우 더욱 그렇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 관련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이 지난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개정 법안이 시행되면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경찰이 1차적 수사권과 수사 종결권이라는 중요한 권한을 갖게 된다.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런 권한을 공정하게 행사한다면 경찰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바로 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그 어느 시대보다 못한 처지를 자초해 오랫동안 암울한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 신세에 대한 책임은 경찰 자신에게 있다.

권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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