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지침 따라 봉사시설 줄줄이 휴관
대학은 교육부 대책 마련에서 제외돼
수도권 A대학 4학년인 황모(23)씨는 애초 8월 졸업을 계획하고 1학기 학사 일정을 짰지만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졸업을 한 학기 뒤로 미뤘다. 졸업이수 학점은 이미 다 채운 황씨의 발목을 잡은 건 졸업요건 중 하나인 '사회봉사' 항목. 졸업 직전 10여시간의 봉사시간을 채우려고 공공기관 등 3곳에 봉사신청을 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해당 기관들이 예정된 봉사일정을 줄줄이 취소하면서다. 황씨는 "졸업논문까지 다 통과했는데 정작 봉사시간 몇 시간이 모자라 졸업을 못하게 돼 눈 앞이 캄캄하다"고 토로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상당수 공공기관이 학생들을 상대로 운영하던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잠정 중단하면서 황씨처럼 봉사 시간을 채우지 못해 졸업을 미루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봉사시간을 마저 채우기 위해 한 학기를 더 다닐 수밖에 없는 학생들로선 속이 터지지만 정작 대학이나 교육당국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며 뒷짐만 지고 개선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상당수 대학은 사회봉사활동을 '졸업 요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략 졸업 전까지 공공기관 등에서 40시간 이상 봉사활동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 소재 한 대학 관계자는 "재학기간 4년 통틀어 명시한 요건이라 최근 몇개월간의 상황만으로 졸업 요건을 갑자기 바꿀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문제는 최근 코로나 사태로 상당수 공공기관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운영하던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잠정 중단하면서 대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대학생들이 봉사활동을 위해 가장 많이 찾는 도서관이나 박물관 등은 정부 방역 지침에 따라 아예 문을 닫은 상황이다. 대학생 김모(22)씨는 "최근 3개 기관에 봉사활동 신청서를 냈는데 코로나 사태로 모두 반려 당했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사설기관들도 대학생 봉사 프로그램을 줄줄이 취소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장애인 복지센터 관계자는 "아쉽지만 방역 수칙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게 맞다고 판단해 학생 봉사 접수는 잠정 중단했다"고 말했다. 성북구의 한 사회복지관 역시 "연령대가 높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이 밀집한 곳이라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부 기관에 학생들이 대거 몰리면서 "봉사활동 자리 하나 잡는 것도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하느냐"는 학생들의 토로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심모(22)씨는 "온라인 봉사프로그램은 포토샵 등 전문 자격을 요하는 경우가 많아 바로 활동하기 어렵다"며 "코로나19로 인해 결국 봉사활동마저 학생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학이 엄격한 잣대를 늦추지 않고 있는 가운데 교육당국도 대책 마련은 뒷전이다. 대학은 국가 교육과정에 포함된 게 아닌 만큼 당국이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중ㆍ고등학교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각 시·도 교육청 차원에서 봉사 시간을 입시 평가 항목에서 제외하거나 필수 충족 시간을 줄이는 개선책을 시행했다.
학생들은 답답함을 토로한다. 코로나19라는 비상 상황인 만큼 대학 측이 '봉사 시간 졸업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안진걸 대학교육연구소장은 "대학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교육부가 각 대학별 졸업 요건 실태를 파악해, 학생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