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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종교가 될 때

입력
2020.08.26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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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전광훈의 정치에 이용되는 한국 개신교
반대편에선 ‘묻지마 지지’ 부작용 심각
정치와 종교의 잘못된 만남이 남긴 상처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의 첨탑. 뉴스1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의 첨탑. 뉴스1

정치와 종교가 만난 양극단의 실체를 요즘 새삼 실감한다. 한쪽 편의 절정은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사랑제일교회로 대표되는 집단이다.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신성 모독 발언에도 추종자들은 “할렐루야”를 외치고, “실외에선 감염되지 않는다”는 비상식적인 주장에 수천 명의 인파가 광화문에 모여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었다.

더욱 서글픈 건, 목사를 자처할 뿐 어디서도 성직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전광훈이란 인물에 이용되는 한국 개신교의 현주소다. 이미 2005년 그는 목회자 2,000명을 상대로 한 설교에서 “빤스(팬티) 내려라 해서 그대로 하면 내 성도요, 거절하면 아니다”라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성희롱 논란이 일자 교계는 당시 설교를 들었던 목사 200명을 상대로 조사까지 벌였지만 결론은 이랬다. “전 목사를 도덕적으로 상처 입히기 위한 언론 폭력이다.” 도리어 그를 옹호한 것이다. 한때 한국 보수개신교계의 한 축으로 불린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역시 전 목사를 연이어 대표회장으로 선출했으니 나락에 떨어진 수준을 스스로 그렇게 드러냈다.

전 목사가 ‘종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의 언행이 이를 증명한다. 2019년 1월 한기총 대표회장에 당선된 직후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간첩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2008년부터 총선 때마다 극우 개신교 정당을 창당해 정치에 도전했다. 꾸준히 그의 세력에 기대며 ‘상부상조’를 도모한 미래통합당 역시 그를 키운 책임이 있다. 전광훈에게 종교는 정치의 발판이자 도구다.

그 반대편엔 종교가 된 정치 집단이 있다. 대통령의 발언이나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학자나 칼럼니스트, 기자에겐 이들이 나타난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을 지원한 인사라 할지라도 타깃이 된다.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공익제보지원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신평 변호사가 오죽하면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썼을까. “야비하고 혹독한 댓글은 소위 ‘대깨문(극렬 문재인 지지층)'이 한다. 위대한 달님이 내려주시는 빛을 가린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인격적 파멸을 끌어내려 한다.”

코로나19가 2차 대유행 조짐을 보이는 요즘, 정부의 방역 실책을 지적해도 도마에 오르기 십상이다. 강양구 TBS 과학전문기자는 “계속해서 수도권의 바이러스 확산 가능성을 경고해온 나는 ‘일베 기자’ 혹은 ‘개신교 인권을 걱정하는 기자’가 되어 조리돌림을 당한다”고 페이스북에 토로했다.

코로나 사태가 오래 이어지면서 느슨해진 국민의 긴장감을 정부가 반값 영화 티켓, 여행 할인 쿠폰을 뿌려 부추긴 건 사실이다. 이제야 드러나는 중증환자 병상 부족도 그간의 안이한 대응을 방증한다.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가 수도권에서 당장 입원 가능한 중증환자 병상 수를 점검해 보니, 정부 발표의 8분의 1 수준이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정부가 가용 병상을 제대로 관리하고 대비하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정부의 누구도 그런 책임을 거론하거나 자성하지 않는다. 대신 연일 외부에 화살을 겨눈다. 적을 상정하면, 정치엔 도움이 될지 모르나 국가 방역엔 어떤 득이 있는지 모르겠다. 일부 집단의 방역 방해가 확산의 기폭제가 된 건 맞지만, 정부 역시 ‘방역과 경제 모두를 잡겠다’는 닿기 어려운 이상향을 설정해 두고 계속 헛발질만 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종교는 ‘왜’라는 질문이 의미 없는 영역이다. 절대적인 믿음이어서다. 정치는 다르다. ‘왜’가 없어지면, 정치의 이유가 희석되고 왜곡된다. 종교를 도구로 삼는 정치는 혹세무민하고, 맹목적인 유권자들은 난세를 자초하는 영웅을 만들 뿐이다.

김지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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