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성경에 예쁘고 착한 글만 있는 건 아니다

입력
2020.08.26 15:10
수정
2020.08.26 17:55
25면
0 0
기민석
기민석목사ㆍ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보증을 서지 말아라.”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니. 보증을 잘못 섰다가 “너에게 갚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네가 누운 침대까지도 빼앗기지 않겠느냐?”(22:26-27). 집에 빨간 딱지가 붙어 본 사람들에게는 심장에 무척 해로울 말이 또 있다. “모르는 사람의 보증을 서면 고통을 당하지만, 보증 서기를 거절하면 안전하다”(11:15).

성경의 잠언은 신앙인들에게 인기 많은 책이다. 하지만 위 구절은, 장로나 집사에게 사기쯤 당한 사람들에게는 분노에 기름을 끼얹을 내용이다. 동시에 교회는 열심히 다니면서도 남을 위해선 눈곱만큼도 손해 보기 싫어하는 허수아비 신앙인들은 아주 반가워 할 구절이다.

서로 너무나 상반되는 가르침이 성경에 동시에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냉정한 보신주의의 잠언 구절은 기독교 성경의 ‘옛 언약’을 담은 구약에서 발췌한 것이고, 따뜻한 이타주의의 가르침은 ‘새 언약’을 담은 신약의 내용이다. 기독교의 성자 예수는 본래 구약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던 유대인이었다. 예수는 유대사회에서 불꽃 같은 삶을 살다 죽임을 당했고, 이후 성령의 감화에 힘입어 용기 있게 예수의 신앙적 가르침을 따라 살던 이들이 유대교에서 분파하여 지금의 기독교가 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이전의 옛 경전과 예수 이후의 새 경전을 함께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는 옛 언약을 반드시 새 언약을 도래케 한 예수의 가르침 아래 새롭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 이웃에게 보증서지 말라는 잠언의 내용은,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네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아라”는 마태복음의 가르침으로 조명하는 것이다(5:40-42).

예수는 옛 언약이 반드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정확히 일렀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하고 말한 것을 (옛 언약으로부터)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새 언약을)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5:38-39). 한 번은 부족했는지 또다시 이렇게 강조한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옛 언약으로부터) 들었다. 그러나 나는 (새 언약을)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5:43-45).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성경의 기본도 무시한 채, 성경의 일부만 들먹이며 지독히 이기적인 폭력과 거짓을 정당화하는 이들이 역사 속에 늘 있어 왔다. 그들은 찬송가를 부르며 침략지의 원주민을 무참히 살해했다. 성경을 읽을 때 노예들이 따라 준 차를 마셨고, 조찬 기도회를 마친 뒤 미사일을 쏘았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선동한 뒤 혐오와 거짓과 침을 내뱉었다. 코로나보다 악질이며 정치꾼들처럼 천박하다. 위 예수의 말을 비추어 보자면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그러면 보증 서지 말라는 잠언의 내용은 왜 성경에 있는 것일까? 잠언은 성경의 지혜 문헌에 속하는 책이다. 그 취지가 ‘인생’에 대한 묵상을 기억하기 쉬운 양식으로 만들어 전수하는 것이며, 인생의 현세적인 성공과 행복을 비교적 많이 다룬다. 종교성은 있지만, 초점은 정통적 신학보다는 행복한 인생이다. 성인기에 진입한 자녀들에게 인생살이의 기술을 알리는 책이기도 하다.

예쁜 글들만 모아 놓은 것이 성경이 아니다. 나는 삶의 가장 고귀한 가르침을 성경에서 배웠지만, 삶의 가장 흉악한 이야기도 성경을 통해 접했다. 하지만 잊지 말 것은, 성경은 스스로 그 해석적 필터를 제시했다. 이타적 사랑과 희생의 화신인 십자가의 예수가 성경 전체를 조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 잠언 구절을 어떻게 예수의 정신으로 재해석해야 할까? 난감한 질문이지만…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웃에게 보증 서 달라고 조르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반 농담 반 진심이다.

기민석 목사ㆍ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