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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조여오는 감염 공포

입력
2020.08.29 09:0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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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가 시행 중인 25일 점심시간 서울 종로구 젊음의 거리 식당가가 한산하다. 연합뉴스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가 시행 중인 25일 점심시간 서울 종로구 젊음의 거리 식당가가 한산하다. 연합뉴스


우리 동네에서 지난 15일부터 열흘 동안 50여명(시 기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확진을 받았다. 한 사람 한 사람 확진자가 발생할 때마다 휴대폰이 자지러지게 울렸다. ‘삐이이익’ 하고 수 차례 날카롭게 반복되는 긴급재난문자의 수신음은 지금이 정말 재난 상황이라는 걸 상기시켜주기에 충분했다.

급기야 이젠 재난문자가 울릴 때마다 보이지 않는 감염 위험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듯한 공포심마저 느낀다. 광복절 직후만 해도 확진자의 거주지나 동선이 우리 집과 행정구역은 같아도 거리상으로는 다소 떨어져 있는 곳이라 아주 위협적으로 여겨지진 않았다. 그런데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코로나19 확진자가 사는 곳과 검사 직전 동선이 우리 집 쪽으로 빠르게 좁혀 들어왔다. 결국 지난 주말엔 집에서 멀지 않은 식당에 확진자가 머문 사실이 확인됐고, 그 식당을 거쳐간 사람들 모두 검사를 받으라는 재난문자가 울렸다.

다행히 식구들이 가보지 않은 식당이긴 했지만, 보금자리 코앞까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침투했다는 게 실감 났다. 동네 엄마들도 비슷한 심정인 듯했다. 마음 편하게 만나질 못하니 메신저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다 보면 하나같이 “확진자가 근처에 점점 많이 나오고 있어서 정말 무섭다”는 데 공감했다. 한 엄마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요 근처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확진자 거주지가 가까워지면서 뭔가가 점점 조여오는 것 같아 공포스럽다”고 호소했다.

과학자들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많은 사람들의 뇌에 감염 위험에 대한 공포 기억이 형성되고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특히 재난문자를 수신음을 들었을 때,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영상을 접했을 때 도무지 일이 손에 안 잡히거나 아무 생각이 나지 않거나 갑자기 몸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면 뇌에 강력한 공포 기억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공포는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 가운데 뇌과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돼온 것으로 꼽힌다. 뇌 속 신경회로에서 워낙 뚜렷이 만들어지고 강력하게 저장될 수 있어 생쥐를 비롯한 실험동물을 이용해 관련 메커니즘을 비교적 명확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포 기억을 형성하고 저장하는 뇌 부위는 ‘편도체’다. 뇌 한가운데에 있는 편도체는 외부의 공포 자극을 인체의 공포 반응으로 연결시키고, 공포의 대상을 뇌에 학습시키는 역할을 한다.

가령 실험실에서 생쥐에게 특정 소리를 들려주면서 발에 전기충격을 가하면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나중에는 전기충격을 가하지 않고 해당 소리만 들려줘도 생쥐는 움직임을 멈추게 된다. 생쥐의 편도체가 청각 자극을 공포 반응으로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실험 전엔 생쥐에게 공포를 일으키지 않던 소리가 반복 충격을 통해 공포의 대상으로 학습되는 것도 편도체의 작용이다. 이렇게 학습된 공포는 기억으로 만들어져 수많은 신경세포로 이뤄진 신경회로에 저장된다.

뇌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보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편도체는 이미 코로나19의 공포를 반복적으로 학습했을 거라고 추정된다. 재난문자 수신음 같은 청각 자극뿐 아니라 매일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접하는 코로나19 검사 장면, 확진자 발생 장소 폐쇄 장면 등의 시각 자극도 공포 반응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학습된 코로나19 공포가 이미 많은 이들의 뇌 속에 견고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을 터다.

공포는 생존에 없어선 안 될 감정이다. 뇌가 코로나19에 대한 공포심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인류는 더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될 지 모른다. 신경회로에 공포 기억이 자리 잡아야 앞으로도 바이러스가 두려워질 때마다 개인위생을 비롯한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게 된다. 다만 이 재난 상황이 점점 길어질수록 생활에 제약을 받을 만큼 공포감이 너무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될 따름이다.

뇌과학에선 건강한 사람이라면 공포 기억의 강도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고 본다. 코로나19에 대한 소리나 영상을 접할 때마다 두렵다는 생각에만 집중하지 말고 문자와 뉴스에서 전달하는 객관적인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라는 것이다. 그때 그때 ‘팩트 체크’를 반복하다 보면 재난문자나 확진자 발생 뉴스를 보고 일시적으로 두려운 감정을 느끼더라도 다시 차분하게 대응이 가능할 정도로 공포심을 완화시킬 수 있게 된다는 조언이다.

요 며칠 재난문자가 올 때마다 공포의 강도를 조절하려고 다분히 애쓰고 있다. 뇌과학의 조언이 빗나가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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