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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원피스와 시대의 눈

입력
2020.08.27 06: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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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정 정의당 의원. 뉴스1

류호정 정의당 의원. 뉴스1


곧 가을이다. 원피스의 계절도 간다. 8월 한 달간 부동산, 코로나19 방역, 수해 문제로 정신없는 와중에 의원 한 분이 본회의장에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등원하자 온 사회가 저마다 한마디씩 보태는 ‘복장 정국’이 열렸다. 지난 2003년 한 의원의 백바지 논란 이후 또 다시 복장이 이슈화된 것이다. 전선은 간결했다. 분홍 원피스가 국회에 어울리는 복장인가? 한쪽에선 국회도 일하는 직장이고 원피스는 오피스룩의 하나일 뿐이라 하고 반대편에선 국회의 권위와 품위를 무시하는 복장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복장에 관한 명시적 규정은 없다. 다만 국회법 25조에 ‘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여야 한다’고만 되어 있을 뿐이다. 이는 곧 사회 구성원의 합의로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결국 논란의 요점은 ‘품위를 해하는 복장’에 대한 인식에 달렸다. 사회의 발전과 다양성에 대한 논의의 깊이에 따라 합의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 불과 몇 십 년 전 장발과 미니스커트는 공권력의 단속 대상이었고 문신은 조폭이나 하는 것이라는 게 우리 사회의 합의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논란은 의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단면과 같은 것이다.

이번 논의가 세대, 정파, 성별 간 소모적 논쟁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선 짚어 봐야 할 지점이 있다. 구성원의 암묵적 합의의 최저선이 어디인지에 대해 명확히 하고 그로부터 어디까지 나아가고 용인할지를 발전적으로 논해야 한다. 이러한 고려 없이 무엇을 입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주장만 난무하면 ‘의원의 품위를 유지하는 복장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지나친 파격과 지나친 엄숙주의의 양극단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다.

법관이 반바지에 슬리퍼를 입은 채 재판을 진행한다면 국민들이 그 판결에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가, 새빨간 양복을 입은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에 유권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해석하는 공적 영역의 변화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의식 변화를 최대한 폭넓게 담아야 하기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다. 국회의원의 본회의장 출석 복장에 대해서는 기업, 문화계 등 민간 영역보다는 조금 더디게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 합의의 최저선이다.

혼자만의 공간이라면 무한대의 자유를 누린들 누가 뭐라겠는가. 하지만 타인이 있다면 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옷차림을 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언행을 포함한’ 이미지를 보고 상품에 대한 가성비와 구매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결국은 고객의 눈이다. 누구나 양복 입고 수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복장 정국의 순기능은 존재한다. 한때 여성 의원들이 바지 정장을 입는 것이 금기시되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저 평범한 복장으로 자리 잡은 것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새로운 문화이자 확장된 합의이다. 이번 논란도 문화를 창조해가는 과정의 일부이자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하나의 상징이 아닐까?

관종이 아니라면 이미지 전체를 고객 눈높이에 맞추게 된다. 물론 시대는 고객의 눈을 바꾸어 나간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용감한 자로부터 출발했지만 어느 영역을 선택할지 또한 선택하는 자의 능력과 수준이다. 그리고 고객의 선택은 늘 옳다. 계절이 가도 원피스는 남는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ㆍ성균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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