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남북한의 작은 교역' 구상에 따라 추동한 '설탕-술 맞교환 사업'이 좌초 위기에 놓인 배경을 놓고 억측과 뒷말이 쌓이고 있다. 북측 사업 파트너가 대북 제재 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사실이 공개된지 하루만인 25일 이 장관은 '대북 제재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통일부가 모르고 추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반박한 것이다.
그러나 이 장관 해명을 뒤집으면, 대북 제재 위반 가능성을 알고도 통일부가 해당 사업을 추진했다는 얘기가 된다. 몰랐어도, 알았어도 통일부로선 비판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인영 "언론 보도도 됐는데, 내가 몰랐을까"
남한의 설탕과 북한 술의 물물교환 사업을 통일부는 얼마 전까지 검토했다. 2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측 파트너인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가 북한 통치 자금을 관리하는 '노동당 39호실' 산하 기관일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중단됐다. 노동당 39호실은 국제사회의 북핵 관련 대북 경제 제재 리스트에 올라 있다.
통일부는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의 제재 대상임을 정말 몰랐을까. 이 장관은 25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2017년 4월쯤 베트남 무역박람회 당시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가) 대북 제재에 저촉된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는 것은 근거로 들어 "(제재 대상임을) 숙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통일부 '사업 어렵게 됐다' 고백 망설였나
이 장관이 미리 인지했다면, 통일부의 태도는 더욱 의아하다. 제재 저촉 가능성을 알고도 '위험'을 무릅쓴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25일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의하며 검토중인 상황이었다"며 "그러한 우려를 고려해 해당기업와 계약 내용 조정에 대해 협의 중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장관은 지난 달 장관에 취임하기 전부터 "(남북 교류 사업의 대북 제재 저촉 여부를 심사하는) 한미워킹그룹에서 할 수 있는 것과 우리 스스로 판단해 할 수 있는 부분을 구분해야 한다"며 남북 주도의 '작은 교역'에 의욕을 보였다. '대북 제재를 우회해 남북관계의 물꼬를 터 보자'는 이 장관의 구상을 청와대도 호평했다.
이에 이 장관이 대북 제재 관련 사실을 인지한 뒤 곧바로 포기하기보다는 제2의 해법을 찾는 중이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정부 소식통은 "통일부로선 어떡하든 제재망을 회피해 사업을 추진할 방법을 찾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재 리스트' 피할 북한 단체, 찾을 수 있을까
통일부는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가 아닌 북측 단체나 기업과 물물교환 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 그러나 척척 진행되리라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유엔 안보리와 미국이 지정한 대북 제재 대상 리스트는 200개가 넘는다.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는 이 리스트에 명시돼 있지 않다. 제재 대상인 노동당 39호실 산하 기관으로 추정될 뿐이다.
제재 대상과 연관이 있다는 '추정'만으로도 교역 대상에서 제외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남북 교류의 척박한 현실이고, 통일부가 안전한 북측 단체를 조기에 찾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통일부의 물물교환 사업 제안에 화답할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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