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추한 검사, 부패 검사, 실력 없는 검사

입력
2020.08.26 04:30
26면
0 0
서울중앙지검 로비에 걸린 '검사 선서' 액자 앞으로 마스크를 쓴 직원이 지나가는 모습. 서재훈 기자

서울중앙지검 로비에 걸린 '검사 선서' 액자 앞으로 마스크를 쓴 직원이 지나가는 모습. 서재훈 기자


나라 걱정이 많은 기자와 변호사, 검사 셋이 최근 한자리에 모였다.

마스크를 벗자마자 강제로 닫혀 있던 입들이 거칠게 움직였다. 교육과 부동산 이야기를 꺼내며 정부 욕을 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코로나19와 남북문제를 화두로는 '남조선'의 미래를 논했다. 내년 서울시장 선거와 내후년 대선에 대한 갑론을박도 빠지지 않았다.

앞가림은 제대로 못했지만, 40대 남성 3명은 밤새도록 대한민국의 앞날을 걱정했다. 다들 자기 일처럼 생각하는 걸 보니 애국자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정답 없는 얘기를 떠드는데 지쳤는지, 이들은 의기투합해 한가지 주제를 골랐다. 요즘 가장 ‘핫한’ 아이템 중 하나인 검찰 개혁에 관한 이야기였다. 세 명 모두 오랜 세월 서초동을 배회하던 인간들이라 대화 속에는 디테일이 잔뜩 묻어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야기는 어떤 검사들을 솎아내야 검찰 조직이 제대로 굴러 갈지에 모아졌다. 그리고 가장 설득력 있는 의견을 낸 사람에게 10만원씩을 주기로 했다.

변호사가 포문을 열었다. 그는 검찰 개혁 완수를 위해선 ‘추한 검사’부터 솎아내야 한다고 소리쳤다. 검사들은 결코 도덕적이지 않은데, 엄청 고결한 척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범죄에 연루된 검사들을 예로 들었다. 검사장은 길거리에서 음란행위를 하고, 부장검사는 여검사와 여직원을 성희롱하고, 평검사는 검사실에서 여성 피의자와 성관계를 했다. 음주운전에 적발된 검사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기자도 질 수 없었다. 그는 ‘부패한 검사’야말로 공공의 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사들은 결코 깨끗하지 않은데, 엄청 청렴한 척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금품비리로 처벌된 검사들을 거론했다. 검사장은 사업가에게 공짜 주식을 챙겼고, 특수부 검사는 다단계업체에서 돈을 받았으며, 형사부 검사는 그랜저 승용차를 받았다. 언론에 안 나왔을 뿐이지, 돈 욕심 내다가 옷 벗은 검사가 한둘이 아니다.

현직 검사 차례였다. 그는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의 시각은 다소 달랐다. 그에게 추한 검사와 부패한 검사는 나쁜 검사일 뿐이었다. 15년 검사 생활을 하면서 그가 경험한 퇴출 1순위는 ‘실력 없는 검사’였다. 명문대 졸업하고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까지 통과했건만, 구속영장 한 줄 못쓰고 공소장 한 단락 적지 못하는 검사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통한 능력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옛날 자료와 사건을 참고해 욕 안 먹을 만큼만 서류를 작성하면 된다. 딱 거기까지다.

문제는 실력 없는 검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제 발로 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이 실력이 없다고 인정하지 않거니와, 인정한들 고칠 생각은 없다. 실력이 없는 게 범죄는 아니지만 치료가 쉽지 않은 이유다. 여기에 경찰이 송치한 ‘7억원 오류(사실은 7,000만원)’를 바로잡지 않고 그대로 재판에 넘긴 검사처럼 ‘성의 없는 검사’까지 속출하고 있으니 검찰의 미래는 더욱 암울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검찰 개혁이 아니라 검사 개혁이 돼야 한다. 개혁의 시작은 검사가 실력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깨는 데 있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검찰 개혁을 반대하기에 앞서 실력 있는 검사를 많이 보고 싶다.” 그의 확신에 찬 결론과 소망에 변호사와 기자는 지갑을 열 수밖에 없었다.

지난 3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강당에서 열린 임관식에서 신임 검사가 추미애 법무부장관 앞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지난 3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강당에서 열린 임관식에서 신임 검사가 추미애 법무부장관 앞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강철원 기획취재부장 stro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