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가 코로나 퍼트린다”는 나쁜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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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가 코로나 퍼트린다”는 나쁜 선동

입력
2020.08.24 18:00
수정
2020.08.24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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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장인철논설위원

여당 지도부, 코로나 확산 극우 책임론
전광훈과 교회 잘못 불구 음모론은 비약
‘편가르기’ 대신 포용ㆍ통합 정치 펼쳐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코로나19 재확산 국면에서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도들이 보인 행태는 개탄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4일 현재 이 교회 관련 코로나19 확진자는 무려 875명에 이른다. 지난 12일 2명의 확진자가 나온 이래 전체 대상자 4,066명에 대한 검사가 진행되는 데 맞춰 확진자수가 급증하는 데다, ‘n차 감염’까지 늘고 있는데 따른 수치다. 전 목사는 이런 상황을 부른 가장 큰 책임자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는 (교회)외부 불순분자들의 바이러스 테러 사건”이라며 상식 밖의 음모론을 주장했다.

사랑제일교회 신도들의 ‘8ㆍ15 광화문 집회’ 참석 경위도 뒤죽박죽이다. 전 목사는 확진자가 나온 뒤 교회를 폐쇄했으며, 집회에도 불참할 것을 고지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소 10명의 교회 확진자들이 지난 8일 및 15일 집회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확인돼 전 목사의 말을 신뢰할 수 없게 됐다. 여기에 더해 일부 신도들이 검사 절차를 밟으려던 보건소 직원을 껴안으며 “너희도 (코로나19에) 걸려봐라”라며 침까지 뱉거나, 교회에서 ‘순교’하겠다며 버틴 건 상식 선을 넘은 게 분명하다.

하지만 사랑제일교회 사태 자체보다 더 걱정인 건 이들의 비상식에 대한 정권의 대응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번 코로나 감염 폭발은 사랑제일교회 등 일부 극우단체에서 시작돼 8ㆍ15 광화문 집회를 계기로 전국으로 확산됐다”며 ‘극우단체’나 ‘8ㆍ15 광화문 집회’ 같은 정치적 편 가르기가 분명한 단어를 거리낌 없이 동원했다. 이 대표의 거친 말버릇이 또다시 도진 걸로 넘길 일이 아니다. 이 대표의 말은 사실에 어긋나지 않지만, ‘극우단체가 코로나를 전국적으로 퍼트렸다’는 오해를 일으키기 십상일 정도로 노회하게 가공된 것이다. 당 대표 경선에 나선 김부겸 후보는 아예 “종교의 탈을 쓴 일부 극우세력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정치란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 내고, 그 적과의 투쟁 속에서 ‘아군’의 동력을 확보해 나가는 편 가르기 과정의 반복일지 모른다. 그리고 노회한 정치인이라면 억지로라도 누구나 미워할 만한 소수의 공적(公敵)을 만들고 공격함으로써 다수를 내 편에 끌어들이는 술수를 아예 체질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도 적정선이라는 게 있다고 본다. 그 선을 넘어서면 정치는 폭력적 선동으로 전락하고, 사회를 온통 증오와 배제의 참혹한 도가니로 만들 뿐이다. 유태인을 반드시 없애야 할 공적으로 가공해 낸 히틀러의 나치가 그랬고, 조선인들을 관동대지진의 방화범으로 몰아 수천 명의 학살 참극을 일으킨 일제의 위정자들이 그랬다.

나는 전 목사나 그를 추종하는 일부 신도들이 현 정권을 비판하는데 있어 매우 거칠고 비합리적이며 무례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이 정권 타도를 위해 코로나를 일부러 전파하는 음모를 꾸미거나 실행할 만한 조직은 결코 못 된다고 본다. 그래서 이 대표 같은 정권 내 핵심 지도자들까지 나서 한 줌의 ‘정서적 공동체’에 불과한 그들을 애써 ‘공공의 적’으로 부풀리고 공격하는 행태가 영 안쓰럽고 걱정스러운 것이다.

현 정권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나름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개혁의 동력을 얻기 위해 그동안 대기업과 부자들부터 심지어 국립묘지에 묻힌 지 오래인 이른바 ‘친일부역자’들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적을 만들고 기꺼이 투쟁해 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소수일 때라면 몰라도, 압도적 정치력을 갖춘 지금 정권이 굳이 적을 만들고 투쟁하는 방식으로만 국정을 몰아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진정한 개혁과 전진의 길은 그런 투쟁보다, 부단히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는 포용과 통합의 노력 위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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