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 붓칠하던 벽화마을...결국 '붉은 X' 폐허로 변했다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예술가들 붓칠하던 벽화마을...결국 '붉은 X' 폐허로 변했다

입력
2020.08.29 09:00
0 0
김시덕
김시덕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편집자주

도시는 생명이다. 형성되고 성장하고 쇠락하고 다시 탄생하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다. 우리는 그 도시 안에서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도시란 무엇일까, 도시의 주인은 누구일까. 문헌학자 김시덕 교수가 도시의 의미를 새롭게 던져준다.

부산 남구 문현동 산비탈에 위치한 안동네 벽화마을에서 내려다본 전경. 김시덕 제공


<1>부산 안동네 벽화마을의 마지막 모습

오늘 답사할 곳은 한때 ‘부산 최초의 벽화마을’이라 불리던 부산 남구 문현동 산 23-1 일대다. 산비탈에 조성된 공동묘지에 철거민과 빈민들이 살게 되면서 마을이 이뤄졌다. 그러다가 부산시가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대상으로 이 지역을 선정하면서 마을 곳곳에 벽화가 그려졌고, 2008년에는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주거환경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 마을에 벽화가 그려졌을 초기에는 “벽화를 매개로 한 외지인과의 사회적 연대는 이들의 자존감을 어느 정도 회복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삶이 정상화되는 데 이바지했다”(조관연 ‘마을가꾸기 사업과 부산 안동네 마을의 변화’)는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각종 지도 어플리케이션에는 ‘안동네 벽화마을’이라는 지명이 등록돼 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리뷰도 온라인에 많이 올라와 있고, 별점 평점도 높다.

부산 남구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 전경. 김시덕 제공

이 마을은 1950~60년대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광복과 함께 해외에 거주하던 한국인들이 대거 부산을 통해 귀국하고, 6ㆍ25전쟁 때 북한군의 공격을 피해 한반도 전역의 주민들이 부산으로 피난왔다. 부산에 가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특히 부산항 일대는 높은 산과 바다 사이에 평지가 좁고 길게 이어져 있어, 도저히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없다.

그래서 부산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제일 먼저 부산항 일대의 바다를 매립했고, 그렇게 새로 생긴 땅에 지금껏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유명한 매축지(埋築地) 마을이다. 오늘 주제는 아니지만, 매축지 마을의 대부분은 이미 재건축이 끝났고, 남아있는 블럭들도 재건축이 확정된 상태다. 근대 부산의 매립·매축 역사를 확인하고 싶은 분은 더 늦기 전에 이곳을 방문하실 것을 권한다.

1894년 부산항일대 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기술이 발전하고 자본이 축적된 21세기에야 인천 송도 신도시처럼 대규모 매립지를 개발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세계 최빈국이던 신생 대한민국의 부산이라는 도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광복과 전쟁 후에 귀국민과 피난민이 급증한 부산에서는 시 당국이 여러 차례에 걸쳐 공격적인 주택개발 정책을 펼쳤는데, 평지가 거의 없는 부산에서 주택을 짓는다는 것은 결국 산기슭에 집을 짓고 길을 닦아 마을을 만드는 일이었다.

부산시는 1955~81년 사이 크게 세 단계에 걸쳐 주택개발 정책을 펼쳤다. 1955~64년 사이에는 도심의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고 철거민을 도심 외곽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문현동 산 23-1 일대 마을은 이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긴 1965~72년에는 무조건 철거하고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시가 ‘정책 이주지’라는 곳을 미리 개발한 뒤 철거민들을 이주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마지막으로 1973~81년 사이에는 연립주택 및 시영ㆍ주공임대아파트를 건설해 철거민들을 이주시켰다(김성태 ‘실향민 정착지로서의 부산 구릉지 주거 경관’ 서울대 도시설계학 전공 석사논문 인용).

오늘날 부산 영도에서 바라본 부산항 일대.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 과정을 거치며 부산의 산은 중턱까지 집이 가득 차게 됐고, 산 중턱에 놓인 산복도로에서 바라보이는 이들 주택과 항구가 부산 바닷가 일대의 특유한 경관을 만들었다. 이 부산 특유의 경관을 확인하기 위해 문현동 산 23-1 일대의 마을에 가보기로 했다. 지도 어플리케이션의 위성사진에 '안동네 벽화마을'이라는 타이틀과 '문현3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예정)'이라는 타이틀이 동시에 보이는 것이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이 마을은 여전히 벽화마을로서 기능하고 있는가, 아니면 철거가 시작되었는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사용하는 답사 방법 중 하나는,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위성사진 모드로 켜고 지역을 찬찬히 살피다가, 산동네로 보이는 지역이 확인되면 현지를 답사하는 것이다. 도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재정착한 산동네에는 그 도시의 옛 모습, 내가 말하는 '도시화석'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산동네 한가운데 자리한 버스 종점이나 등산로 초입에 내려서 내리막길을 따라 마을을 살피고, 산의 능선을 따라 다음 산동네로 걸어간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은 너무 힘들고, 또 서울을 비롯해 충청남도, 강원도 등 산이 많은 지역의 도시에서도 버스 종점이나 등산로 초입은 대체로 산동네의 거의 위쪽 끝부분에 자리하기 때문에 이 방법을 쓰면 체력적 손실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부산역을 둘러싼 황령산·수정산·구봉산·아미산·천마산 기슭에 자리한 산동네에 대한 당일치기 답사를 수행하면서, 이런 나의 답사 방법이 한계를 드러냈다. 부산은 산동네 가운데 마을버스 종점에 내린 뒤에도 한참을 더 걸어 올라가야 마을 끝에 다다르거나, 아예 마을버스가 진입할 수 없는 좁은 골목으로 이뤄진 산동네가 많았다. 그래서 다른 도시에서 하던 방식으로 산동네를 답사하다가 탈진해버렸다. 한국 여타 도시의 산동네와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라고 할까.

통일교의 발상지인 안창마을에서 태극도 신앙촌인 감천마을로 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다른 도시에서 저렇게 높은 곳에 마을을 만들면 겨울에 눈이 도로에 얼어붙어 사람이 못 살 겁니다. 부산은 눈이 안 내려서 저렇게 산 중턱까지 마을이 생겼고, 인구가 늘어 대도시가 되었지요.” 전쟁과 기후가 부산을 한국 제2의 대도시로 만들었다는 말이다.

문현동 산 23-1 마을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마을 동쪽의 황령산 중턱에서 버스를 내리는 방법, 마을 남쪽의 문현초등학교 근처에서 내려서 산을 오르는 방법, 마을 서쪽의 전포돌산공원 근처에서 내려서 산을 넘는 방법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한다. 나는 마지막 루트, 즉 마을 서쪽에서 버스를 내려 산을 넘어 마을 꼭대기에 접근하는 방법을 택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눈앞에 철거 직전의 마을이 펼쳐졌다. 목표했던 남구 문현동이 아닌, 전포돌산의 서쪽에 자리한 부산진구 전포동의 재건축 지역이었다. 현재 한국 어디를 가도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 중인 2020년에도 조합원들은 총회를 열고 용역들은 철거민을 밀어내고 철거를 진행한다. 이곳 전포동도 지도상으로는 아무런 표식이 없었지만 재건축 사업이 진행 중이던 것이다.

재건축 사업이 진행 중인 부산 진구 전포1동의 모습. 김시덕 제공


재건축 사업이 진행 중인 부산 진구 전포1동의 모습. 김시덕 제공

이런 마을은 우연히 마주친 바로 그때 답사하지 않으면, 그 다음에 갔을 때에는 허허벌판으로 바뀌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곳곳에 ‘철거’라고 페인트로 거칠게 적힌 골목길을 걸으며, 간혹 만나는 주민분들께 깊숙히 고개 숙여 인사하며 급히 마을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가파른 산길을 15분쯤 걸어 오르자 전포돌산과 황령산을 잇는 능선이 나타났다. 돌산길과 진남로283번길이 만나는, 속칭 안동네 벽화마을의 최정상 지점이었다. 남쪽으로 뻗어있는 깊은 계곡에는 단독주택부터 고층아파트까지, 현대 한국의 거의 모든 건물 형태가 뒤섞여 있었다.

길 중간에는 2008년에 세워진 벽화마을 안내판이 있었다. 안내판은 누군가 코팅을 뜯어버려서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길 옆에서 영업했을 ‘레트로 감성 돋는’ 몇몇 가게들은 폐업한 지 오래였다. 돌산 능선 위에서 안동네 벽화마을로 내려가는 돌산3길 초입에는, 벽화거리가 시작된다는 안내판과 ‘돌산마을 생존권 투쟁협의회 / 끝장 투쟁 사무소’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절반 이상 뜯겨 나간 안동네 벽화마을 안내판. 김시덕 제공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 김시덕 제공

수풀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어서, 과연 아직도 길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돌산3길. 하지만 조금 내려가니 경로당이 나오고, 2월 26일 남구청장 명의로 작성된 코로나19 확산 관련 안내문이 출입구에 붙어 있었다. 이 마을이, 이 길이 올해 초까지도 기능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경로당을 지나, 타이거모기라고도 불리는 산모기에 뜯기지 않기 위해 연신 손을 휘저으며 돌산3길을 계속 걸어 내려갔다. 길 중간, 아니 수풀 중간에 서있던 집의 담벼락에는 빨랫줄에 빨래를 널고 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2015년 어떤 작가분이 안동네 벽화마을에 대해 쓴 글을 떠오르게 하는 벽화였다. 이 글을 쓴 분을 비판할 의도가 아니므로 지은이와 글의 제목은 익명으로 한다.

“따스한 햇살 아래 주민들의 빨랫감들이 보송보송 말라가고 있다. 사람이 있어서, 그리고 그들 사이 공감대가 형성되는 벽화가 있기에, 문현동 안동네는 밝고 따뜻하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지어진다. “그곳에서 몸과 마음이 즐거운 사람들이 있는 한, 마을의 미래는 보다 오래 갈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빨랫줄 벽화에는 빨간 페인트로 X자가 쳐져 있었다. 주민의 퇴거가 완료되었다는 철거 용역의 표식이었다. 빨랫줄에 정확히 X자가 그려져 있는 데서, 벽화에 대한 철거 용역의 냉소가 느껴졌다. 공공기관에서 벽화사업을 일으키고 예술가들이 벽화를 그리고 여유있는 사람들이 마을 골목에서 레트로 감성을 충전해도, 결국은 철거의 대상일 뿐이라는.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 김시덕 제공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에 그려진 빨랫줄 벽화. 퇴거 완료를 뜻하는 'X'자 표식이 겹쳐있다. 김시덕 제공

벽화사업을 벌이고 레트로 감성을 즐긴다는 것은, 결국 마을 사람들이 수십 년 간 쌓아온 시간을 약탈하는 행위다. 물론 레트로 감성을 즐기는 것은 좋다. 다만 즐긴 만큼 마을 사람들에 대해 책임의식을 느꼈으면 좋겠다. 재건축ㆍ재개발을 반대하거나, 토지주가 아닌 세입자들의 재정착에 물질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아니면 벽화사업을 해서 마을을 재생하려 했지만 실패했다는,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할 수도 있겠다. 이 마을을 이용해서 근무 평점을 따고 정부 지원금을 받고 봉사활동 점수를 받고 레트로 감성을 충전한 사람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굳이 벽화 작업을 해야겠다면, 페인트 작품 대신 모자이크 작품을 남기면 좋겠다. 페인트 작품은 한 번 그린 뒤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애프터 서비스를 해야 한다. 벽화를 그린 예술가가 자기 만족 뒤에 떠나버리고 나서 페인트가 벗겨지기 시작하면, 그 벽화는 마을의 흉물이 된다. 반면 모자이크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벗겨지거나 떨어질 가능성이 낮아서 그나마 보기에 낫다. 벽화를 그리는 사람이, 어떤 마을이 재건축·재개발될 때까지 책임지고 정기적으로 벽화를 덧칠할 책임감을 지니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럴 자신이 없다면 재료라도 반영구적인 것을 쓰기 바란다.

광명의 한 마을에 그려진 모자이크 벽화. 페인트 벽화에 비해 내구성이 좋다. 김시덕 제공

이 글은 재건축·재개발을 반대하는 내용이 아니다. 재건축·재개발은 필요하고, 동시에 토지주·건물주가 아닌 세입자·임대인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다. 관광객들은 마을 사람들이 수십년간 살아온 곳에 함부로 들어가서 레트로 감성 찾지 말고, 벽화사업을 일으키고 수행해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마을 사람들의 공간을 약탈하지 말라.

옛 마을에서 레트로 감성을 즐기다가 재건축·재개발이 시작되면 떠나는 사람들, 모든 과정이 끝나고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사람들, 이들이 보지 못하고 알고 싶어하지 않는 일들이 재건축·재개발 과정에서 일어난다.

다음 글에서는, 안동네 벽화마을처럼 거의 폐허가 된 마을에서 실제로 재건축·재개발이 시작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려 한다.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김시덕의 이 길을 따라가면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엣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