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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에 맞서 전공의에 이어 24일부터 단체행동에 돌입한 전임의들. 뉴스1
인류 최대 보건 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의사들이 파업을 하는 비극적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파업의 직접적 이유는 정부가 향후 10년간 의대정원 4,000명을 늘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이런 엄중한 상황에 의대 정원 증원이라는 정책을 결정했을까? 코로나19 위기 속에 감염병 전문의, 역학조사관 부족현상이 발생하였다. 지역별 의료격차 문제도 여실히 드러났다. 그러자 지난 5월 말 정부는 포스트 코로나 대응을 명분으로 부족한 공공, 필수 의료 인력을 늘리겠다며 의대정원 확대 정책 카드를 꺼내들었다.
당시 뉴스를 보면서 정책결정 이론 중 ‘쓰레기통 모형(garbage can model)’에 해당하는 의사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통 모형은 정부의 정책이 합리적 과정을 통해 결정될 것이라는 기본 전제를 뒤집은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의 흐름, 해결책의 흐름, 참여자의 흐름, 의사결정 기회의 흐름이 각각 따로 흐르다가 극적 사건이나 정치적 변화 등과 같이 점화되는 계기(triggering event)를 만나면 의사결정이 내려진다. 사실 필수분야 의사부족과 지역별 의료격차 문제는 이번에 처음 드러난 것이 아니다. 의대 정원 조정도 새로운 해결책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의사정원 확대와 의료의 공공성 확보를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20여년 이상 오래 묵은 문제와 해결책이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 상황에서 정책결정의 기회를 만난 것이다. 그러나 전시상황에 가까운 보건위기 속에서 이해관계자 합의는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웠다. 정부와 의사협회의 힘겨루기 속에 정책이 표류되기 시작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어? 저런 정책이 왜 나왔지?’ 최근 정부 정책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한 게 여러 번이다. 주말동안 6번 외식을 하면 1만원을 할인해주는 외식쿠폰에 숙박, 여행, 영화, 운동시설까지 1,700억원 정부할인쿠폰은 신용카드 사용자에게 선착순으로 배포하기로 했다. 수혜자와 집행방식 측면에서 정책의 효과나 비용 대비 효율성이 확인되지 않은 섣부른 정책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결국 며칠 만에 중단되었다.
사회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면서 정책결정 과정에서 비합리적 행태와 모순이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럴수록 잊지 말아야 할 원칙이 있다. 첫째, 정책문제를 잘 정의해야 한다. 정책문제 분석 과정에서 간혹 해결해야 할 정책문제를 전혀 엉뚱하게 설정하는 경우를 제3종 오류라고 한다. 신종 감염병 대응을 위해서는 고려대 이재갑 교수의 말대로 의대정원 4,000명 증원이 아니라 감염병상 4,000개를 늘렸어야 했다. 의대정원 증원 정책은 문제 자체를 잘못 정의한 제3종 오류라 할 수 있다. 둘째, 정책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이론과 근거에 의해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확실성 속에서 정책은 정치적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이 행정부에 정치로부터 독립된 권력을 부여한 까닭은 전문성을 갖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증거에 기반하여 효율적인 대안을 찾아내는 것이 행정부의 역할이다.
조급함 때문인지 설익은 정책이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사례가 너무 잦아지고 있다. 그럴수록 정책 간 모순과 충돌로 정부에 대한 불신만 깊어진다.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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