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D램 고정가격, 9개월 만에 상승세 꺾여
가격 바닥 예상 시점도 '올 4분기'→'내년 1분기'
올해 하반기 반도체 경기 하강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D램 고정거래 가격 상승세가 9개월 만에 꺾였고,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실적 전망치를 줄줄이 낮추고 있다. 상반기 반도체 수요를 견인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반사이익 효과가 소멸하는 가운데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수급 차단 수위를 높이며 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탓이다. 반도체에 전체 수출의 20%를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선 코로나19 유행 심화에 반도체 경기 부진까지 겹칠 경우 하반기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D램 고정가격 9개월 만에 꺾여
25일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래 상승 내지 보합을 유지해왔던 D램 고정거래 가격(월말 DDR4 8GB 기준)이 지난달 전월(28.5달러) 대비 5% 이상 떨어진 27달러를 기록, 9개월 만에 하락했다. 고정거래 가격은 반도체 제조사와 수요처가 통상 3개월 단위로 공급계약을 맺으며 체결하는 가격으로 D램 거래물량의 60~70%가량에 적용된다.
D램 현물가격은 2.54달러(21일 기준)로 4월 초 형성됐던 연중 고점(3.64달러) 대비 30%가량 내렸다. 현물가격은 고정거래가격에 비해 반도체 시세로서의 중요도가 다소 떨어지긴 하지만, 고정거래가격의 변동 뱡향과 폭을 미리 알리는 선행지표 역할을 한다.
반도체 제조업체들도 하반기 실적에 부정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 미국 웨스턴디지털은 최근 3분기 매출 전망치를 37억~39억달러로 제시했는데 이는 시장 컨센서스(평균 예상치)인 44억달러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글로벌 D램 시장 3위인 미국 마이크론도 최근 진행한 투자 컨퍼런스에서 9~11월 매출이 당초 회사가 제시한 전망치를 밑돌 것이라고 예고했다. 대만 D램 공급업체 난야테크의 지난달 매출은 전월 대비 7.8% 하락했다.
반사이익 안긴 코로나, 이제 부메랑으로
하반기 반도체 가격 하락은 시장에서 예상됐던 바이긴 하다. 상반기 반도체 호황을 이끌었던 서버용 메모리칩 수요가 다분히 코로나19로 인한 공급 차질을 우려한 서버업체들의 '패닉 바잉(공포에 기인한 매수)'에서 비롯되면서 재고가 과다하게 쌓였을 거라 쉽게 점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와 같은 유력 공급업체도 "하반기엔 평균판매가격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문제는 가격 하락이 예상보다 가파르고 장기화할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당초 오는 4분기에 반도체 가격이 저점을 찍을 거란 전망이 우세했지만, 최근 들어 내년 1분기까지는 가격 약세가 이어질 거란 관측이 점차 힘을 얻는 분위기다.
비관론을 키우는 주요인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엔 교육, 회의, 여가 등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수요가 온라인으로 대거 전환하며 이를 뒷받침할 서버 및 PC용 칩이 호황을 누렸지만, 유행이 길어지면 소비자 구매력 자체를 떨어뜨리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경기 전망이 악화되고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서버업체들도 증설을 보류할 가능성이 크다"며 "서버용 D램 가격 하락은 다른 D램 품목 가격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악재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다. 지난 5월 화웨이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통해 칩을 조달하는 걸 막은 미국 상무부는 최근 기성품 전반에까지 제재를 확대했다. 화웨이가 글로벌 통신장비 1위, 스마트폰 2위(출하량 기준) 업체로서 반도체 시장의 핵심 매입처 역할을 해온 점을 감안하면 당장 반도체 수요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화웨이의 반도체 구매액은 208억달러로 애플(361억달러)과 삼성전자(334억달러)에 이어 3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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