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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지을지 모르니 미리 죽인다!”... 박근혜의 블랙리스트, '현대판 보도연맹'

입력
2020.08.25 04:30
수정
2020.08.25 09:3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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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제주 백조일손(百祖一孫)

편집자주

진보 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가 대한민국 곳곳을 다니며 역사적 장소와 현재적 의미를 찾아보는 ‘한국근대현대사 기행’을 매주 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한다.


1950년 7월초 대전 산내골의 좌익정치범과 보도연맹원 집단학살을 미군이 촬영한 사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정부는 적에게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며 전국의 보도연맹원들을 집단학살했다. 손호철 제공

1950년 7월초 대전 산내골의 좌익정치범과 보도연맹원 집단학살을 미군이 촬영한 사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정부는 적에게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며 전국의 보도연맹원들을 집단학살했다. 손호철 제공

'마이너리티 리포트'.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로 조지 오웰의 명작인 '1984년'처럼 개인의 삶을 통제하는 미래사회를 비판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예측 프로그램을 통해 앞으로 일으킬 가능성이 큰 사람들을 골라내 제거해 범죄를 사전에 예방해 ‘안전사회’를 만든다는 섬뜩한 이야기다. 한마디로 “너는 죄를 지을지 모르니 미리 죽인다”는 거다.

말도 되지 않는 국가폭력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그런 제도가 있었다. 형기가 만료됐지만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큰 사람들을 가두었던 청송교도소가 그 예다. 전향을 거부한 사상범은 형을 다 살고 나와도 ‘보호감호’라는 이름으로 다시 감호소라는 형무소에 가두었다.

진짜 심각한 것은 ‘예비검속’이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 잡아들인다는 뜻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보도연맹이다. ‘보도연맹’하면 ‘기자협회’ 같이 보도관계자들의 모임 같지만 전혀 아니다. 전향한 좌익 등 좌익경력이 있는 사람을 관리하기 위해 이승만정권이 정권초기 만든 사상통제 조직으로 ‘대한민국정부 절대지지’, ‘공산주의 절대배격·분쇄’ 등을 목표로 해 30만 명이 가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보도연맹 가입을 실적제로 운영하자 공무원들이 건수를 올리기 위해 좌익활동과는 무관한 사람도 다수 가입시켰고 단순부역자나 농민도 많았다.

문제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적에게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들을 예비검속하여 집단적으로 ‘예방학살’한 것이다. 희생자 수는 정부조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 4,934명이며,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을 포함하면 2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전쟁 중 국군희생자가 14만 명 정도라고 하니 전사자보다 더 많은 국민을 ‘좌익의심자’라는 이유로 무차별 학살한 것이다.


아름다운 산방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 학살자 묘지. 백여구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 ‘백 명의 조상에 한 명의 자손’이라는 슬픈 이름을 붙였다. 손호철 교수 제공

아름다운 산방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 학살자 묘지. 백여구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 ‘백 명의 조상에 한 명의 자손’이라는 슬픈 이름을 붙였다. 손호철 교수 제공


서귀포시 대정의 유채밭에 우뚝 솟은 산방산은 제주도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산이다. 이 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바닷가 평지에 ‘백조일손(百祖一孫)묘’란 글씨가 눈에 띈다. ‘백 명의 조상에 한명의 손자’라니, “자식(손)이 아주 귀한 집안이구나” 하고 사연을 읽어보니, 전혀 그것이 아니었다.

이곳은 한국전쟁과 함께 이승만정권이 집단학살한 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자들의 묘지였다. 1950년 8월 20일 경찰과 군은 예비검속대상자 250명을 송악산 섯알오름에 끌고 가 집단학살했다. 유가족들은 시체도 수습하지 못하고 눈물로 지내다가 6년 뒤 149구의 시체를 몰래 발굴했지만 132구는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백 명의 할아버지의 한 자손’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붙여 함께 묻은 것이다. 아름다운 산방산을 배경으로 이어져 있는 묘의 봉우리들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더욱 슬픈 것은 묘지 앞에 유리진열대에 전시되어 있는 부서진 돌조각들이다. 4ㆍ19혁명이 나자 유가족들은 이들을 기르는 추모비를 세웠지만, 5ㆍ16쿠데타 후 군부는 거창 등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추모비를 부셔버렸다.

진열대에 든 것이 바로 그 추모비다. 4ㆍ19혁명이 나자 한국전쟁 피학살자유가족들은 전국적으로 조직을 만들어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등을 요구했다. 5ㆍ16 세력은 이들 대표들을 ‘빨갱이들을 추모했다’며 국가보안법으로 사형선고를 내리는 등 또 한 번 박해했다. 유가족들을 두 번 죽인 것이다.

보도연맹은 1948년 단독정부 수립후 도입되어 한국전쟁이후 가입자들을 집단학살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는 ‘요시찰 인물’이란 형태로 변형되어 계승되어 왔다. 보도연맹의 흔적 중 가장 최근의 것은 얼마 전까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국정농단사건중 하나다. 국정농단 조사에서 밝혀진 박근혜정부의 ‘블랙리스트’가 바로 그것이다.

자기들이 보기에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 ‘좌파’명단을 만든 것이 바로 문제의 블랙리스트이니, ‘현대판 보도연맹’이 아니고 무엇인가. 순수가정으로 만일 전쟁이 난다면, 이들을 보도연맹같이 예비검속해서 처리하려 할지 모르지만, 지금이 평시인 만큼 머리에 총을 겨누고 처형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박근혜정부는 훨씬 완화되고 세련된 방식으로 이미 이들을 ‘처형’했다. 국가권력으로 이들의 밥줄을 끊어 ‘경제적’으로 처형한 것이다. ‘좌파 의심자’에 대해 경제적 학살을 한 것이다.

그것이 보수적 생각이든, 진보적 생각이든, 인간은 자기 나름의 생각을 할 자유가 있다. 아니다. 한 보수정치인이 “생각은 자유지만 이야기하면 국가보안법대상”이고 주장했으니, 머리의 자유만이 아니라 입의 자유도 있어야 한다. 즉 우리는 자기 나름의 생각을 하고 이를 이야기할 권리와 자유가 있다. 이 같은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단순히 ‘무찌르자 공산당!’으로 오해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아래 이 같은 자유를 압살해 왔다. 한마디로, 우리의 역사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다며 자유민주주의를 압살해온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이 같은 희극은 끝내야 한다. 특히 정부가 개개인의 사상을 분석해 ‘위험관리자’를 분류해 관리하는 황당한 짓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제주 말고도 전국 곳곳에 한 서린 죽음이...

대전 산내골의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 소나무뒤의 잔디가 자란 긴 흙더미가 학살당한 보도연맹원들의 무덤이다. 손호철 제공

대전 산내골의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 소나무뒤의 잔디가 자란 긴 흙더미가 학살당한 보도연맹원들의 무덤이다. 손호철 제공


"골로 간다”는 말이 있다. “너 까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골로 간다”는 말이 대표적인 예다. 이 골이 대전 동남쪽에 위치한 산내골을 의미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산내(골령)골이 어떠하기에 이 같은 말이 생겨났을까. 산내골에는 기네스북에 올라갈 보기 드문 광경이 있다. 그것은 ‘세계에서 제일 긴 무덤’이다. 무덤처럼 잔디가 덮인 흙더미인데 높이는 별로 높지 않고 길이는 30미터이상 긴 흙더미다. 한국전쟁 때 좌파추정자들을 집단으로 학살하고 흙으로 덮어 생긴, 긴 무덤이다.

1950년 6월 27일 서울을 버리고 대전으로 도주한 이승만은 7월 1일 다시 목포를 거쳐 해군함정을 타고 부산으로 도주했다. 이처럼 대전이 북한군에 넘어가게 되자 6월말부터 7월까지 산내골에서 대량학살이 일어났다. 정부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1차 1,400명, 2차 1,800명, 3차 1,700명 등 4,900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집계됐지만, 여러 연구들은 약 7,000명이 살해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생긴 말이, “골로 간다”는 말이라고 한다.

1차 학살은 보도연맹원을 중심으로, 2차 학살은 대전형무소에 갇혀있던 좌익사범을 미군이 운전하는 미군트럭에 실고 와 미군이 촬영하는 감독 하에 대량학살을 저질렀다고 한다. 다시 말해, 학살이 ‘미군 몰래’가 아니라 ‘미군의 지휘 아래’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인권의 나라 미합중국 만세다! 그래도 그 ‘덕분’으로, 미군이 찍은 생생한 학살사진들이 비밀이 해제되어 최근 공개됐다. 그러나 이곳은 기념비 설립 등이 예정된 채 썰렁하게 버려져 있는 상태이다.


애기섬학살을 추모하는 기념판(왼쪽), 일부 유해를 발굴했지만 아직 봉인되어 있는 경산코발트광산의 보도연맹 학살현장. 손호철 교수 제공

애기섬학살을 추모하는 기념판(왼쪽), 일부 유해를 발굴했지만 아직 봉인되어 있는 경산코발트광산의 보도연맹 학살현장. 손호철 교수 제공


대전만이 아니다. 전국 곳곳에 보도연맹과 정치범 학살의 아픈 흔적이 남아있다. 여수는 바다 앞 애기섬에 수장시킨 희생자들을 기르는 기념판이 설치되어 있다. 지역의 특성에 맞게 ‘창의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학살한 것이다.

대학도시인 경산에는 대학생들이 “누가 더 용기가 있나” 담력테스트를 하는 곳이 있다. 근처의 폐광이다. 깜깜한 어둠 속에 죽은 사람의 유골들이 즐비해 담력테스트로는 적격이다. 폐광에 유골이 즐비한 것은 이곳역시 한국전쟁 초기에 보도연맹과 좌익기결수들을 집단학살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승만정부는 경산코발트광산으로 알려진 이곳에 지역 보도연맹원들과 대구형무소 정치범들을 끌고 와 잔인하게 학살헸다. 여러 명을 철사줄로 함께 묶어 수직갱 앞에 세운 뒤 밀어버리기도 하고, 사람들을 가둔 뒤 불을 지르거나 폭약을 터트렸다. 4ㆍ19혁명 후 실시된 국회조사에서 대구형무소 재소자 1,400여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5ㆍ16과 함께 다시 어둠속에 묻혔다. 2009년 정부는 이를 군경에 의한 학살로 공식판정했다,

그 결과 이곳에는 신원이 확인된 127명과 미확인자 1,600명을 추모하는 위령탑이 세워졌다. 그러나 아직도 1,900명이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갱도 앞에는 철문에 자물쇠가 잠겨있고, 그 앞에는 ‘민간인 학살유해 발굴 미루지 말라’는 현수막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봉인된 학살의 역사’는 언제나 완전히 열릴 것인가.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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