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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견제'와 '생산적 협력'...시민사회의 공존 위한 열쇠다

입력
2020.08.25 09:10
수정
2020.08.26 17: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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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시민사회

편집자주

2020년대 지구적 사회 변동의 탐색을 통해 세계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매주 화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서구사회에서는 1968년 프랑스 파리의 학생들로부터 시작된 '68혁명'이 본격적인 시민사회 시대를 열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구사회에서는 1968년 프랑스 파리의 학생들로부터 시작된 '68혁명'이 본격적인 시민사회 시대를 열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민사회 시대’가 열린 것은 지난 20세기 후반이었다. 서구사회에서는 1968년 ‘68혁명’이 결정적 계기였다. 68혁명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모두 비판함으로써 자율ㆍ자치ㆍ연대의 새로운 사회를 꿈꿨다. 환경ㆍ여성ㆍ평화운동 등 새로운 사회운동들이 시민사회를 이끌었고, 녹색당이라는 새로운 정치세력화가 모색됐다. 우리 인류는 국가와 시장에 맞설 수 있는 시민사회라는 ‘제3의 거점’을 갖게 된 셈이었다.

제3의 거점으로서의 시민사회

서구에서 시민사회라는 말을 발명한 이들은 홉스, 로크, 루소 등 근대 초기 사회계약론자들이었다. 이 시민사회는 19세기에 들어와 잊혔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민족주의 등 근대를 분석할 수 있는 더 강력한 개념들이 부상했기 때문이다. 죽어 있던 시민사회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이들이 68혁명 세대였다. 이들은 국가 주도 패러다임과 시장 주도 패러다임에 맞서 새로운 변화와 해방을 추구할 수 있는 시민사회론을 내놓았다.

시민사회론의 부활은 크게 마르크스적 전통과 토크빌적 전통의 두 갈래로 진행됐다. 마르크스적 시민사회론에서 결정적 영향을 미친 이는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다. 1970년대 초반 그람시의 ‘옥중 수고’가 영어로 발간되면서 그람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시민사회 이론가로 떠올랐다.

그람시의 핵심 개념은 헤게모니다. 헤게모니란 지배계급이 지적ㆍ도덕적ㆍ정치적 지도력의 행사를 통해 창출하는 피지배계급의 자발적 동의를 말한다. 이 헤게모니가 형성되고 작용하는 영역이 곧 시민사회다. 그람시가 전달하려 했던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가 바로 이 시민사회에 뿌리내린 제도와 실천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그람시 이론을 공부하고 나서 우리는 시민사회에 있는 학교, 종교기관, 각종 대중매체가 하는 일을 더욱 분명히 이해하게 됐다.

토크빌적 시민사회론에서 주목할 이론가는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이다. 퍼트넘은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와 ‘나 홀로 볼링’에서 시민사회와 경제성장, 민주주의가 사회적 자본의 축적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견해를 내놓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퍼트넘의 핵심 개념은 사회적 자본이다. 사회적 자본이란 개인들 사이의 연계, 이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네트워크, 호혜성과 신뢰의 규범을 뜻한다. 퍼트넘은 사회적 자본과 이와 연관된 시민적 참여가 미국에서 20세기 첫 60년에는 발전해 왔지만, 이후에 점차 쇠퇴해 왔다고 분석했다. ‘더불어’가 아니라 ‘나 홀로’ 볼링을 친다는 ‘나 홀로 볼링’이라는 책 제목은 사회적 자본의 쇠퇴에 대한 재치 있는 은유다.

2018년 방한한 로버트 퍼트넘(왼쪽)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조희연(오른쪽) 서울시교육감과 함께 교육과 빈부격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2018년 방한한 로버트 퍼트넘(왼쪽)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조희연(오른쪽) 서울시교육감과 함께 교육과 빈부격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그람시와 퍼트넘의 시민사회론은 강조점이 달랐다. 그람시가 시민사회 안에 존재하는 헤게모니의 투쟁을 중시했다면, 퍼트넘은 시민사회를 이루는 사회적 자본의 역할을 주목했다. 전후 사회갈등이 경제영역보다는 정치 및 문화영역에서 이뤄져 왔음을 그람시의 관점이 깨닫게 했다면, 퍼트넘의 관점은 미국을 위시한 서구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왜 쇠퇴해 왔는지를 발견하게 했다. 나아가, 두 사람의 시민사회론은 그 지향점이 달랐다. 그람시가 자본주의 헤게모니에 맞서는 대안정치와 저항문화의 활성화를 강조했다면, 퍼트넘은 민주주의의 쇠퇴에 맞서는 사회적 자본의 재구축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람시와 퍼트넘은 모두 시민사회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20세기 후반에 와서 이제 시민사회는 한 사회에서 국가와 시장을 제외한 잔여의 범주가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 및 사회생활이 진행되는 제3의 거점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됐다.

2020년대와 시민사회의 미래

21세기에 들어와 서구 시민사회의 변동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소비사회와 정보사회의 진전이었다.

먼저 소비사회의 진전은 시민사회의 현실에 새로운 성찰을 요청했다. 1960년대 이후 시민사회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맡아왔지만, 다른 한편으론 탈정치화와 상품화가 강화됐다. 이러한 소비사회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지만, 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강조하듯 소비사회의 진전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시대를 열어온 셈이었다.

한편 시민사회의 변동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정보사회의 진전이었다. 정보사회의 진전은 결사체, 사회운동, 공론장을 포괄한 ‘온라인 시민사회’의 등장과 부상을 가져왔고,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중심을 이룬 ‘온라인 공론장’은 문화생활은 물론 정치사회에 큰 영향을 미쳐 왔다. 구체적으로 온라인 공론장은 정부와 국민 간의 직거래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기성 정당체제에 비판적인 포퓰리즘의 발흥에 결정적 조건을 제공했다.

2020년대에 시민사회의 미래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정치학자 진 코헨과 사회학자 앤드루 아라토는 시민사회가 정치와 경제 사이에 놓인 가족, 자발적 결사체, 사회운동, 공론장의 네 영역으로 이뤄졌다고 봤다. 이 네 영역에서의 변화를 그렇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우선 가족은 지난 20세기 후반부터 다양한 성적 관계와 가족 형태의 등장으로 변화돼 왔고, 이러한 변화는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다. 여기서 분명해 보이는 경향은 두 가지다. 과거 가부장적 가족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과 가족의 다양한 형태를 지켜볼 때 개인의 삶에서 가족의 존재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결사체와 사회운동의 경우, 시민사회의 유토피아적 에너지는 한 순환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린 이후 시민사회는 시장에 맞서는 저항의 구심을 이뤄 왔지만, 동시에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표현을 응용하면 ‘시장에 의한 시민사회의 식민화’도 빠르게 진행돼 왔다. 소비사회가 시민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이 점점 중요해지는 이러한 경향은 2020년대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공론장의 경우, 시민사회는 최근 심원한 변화를 겪는 과정에 놓여 있다. 변화의 모멘텀은 두 방향에서 주어진다. 하나가 앞서 말한 SNS 공론장의 영향이 커져온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포스트트루스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포스트트루스 시대는 한편으로 가짜뉴스의 범람을 가져오고, 다른 한편으론 정치사회의 양극화를 부추기는 동시에 그 양극화된 정치사회로부터 영향 받아 공론장의 양극화를 강화시키고 있다.

조지프 히스 '계몽주의 2.0'

조지프 히스 '계몽주의 2.0'


고전적인 시민사회론을 열었던 사회계약론자들은 계몽주의자들이었다. 철학자 조지프 히스는 우리 시대가 기본적으로 계몽주의 시대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계몽의 핵심은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신뢰에 있다. 히스는 위기에 빠진 이성과 합리성의 복원 기획으로 ‘계몽주의2.0’을 제안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숙의, 그리고 이를 위한 집합행동의 실천이 계몽주의2.0의 구체적인 전략을 이룬다. 2020년대 정치사회는 물론 시민사회에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 계몽주의2.0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사회와 시민사회

시민사회의 발전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적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열망은 시민사회의 기원을 19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했다. 독립협회가 주도한 독립신문과 만민공동회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결사체, 공론장, 사회운동의 측면에서 시민사회는 1945년 광복 직후 다시 한 번 크게 분출했다. 하지만 이내 냉전분단체제가 고착화하면서 시민사회는 수면 아래로 잠복됐다.

우리 사회에서 시민사회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은 1960년대 산업화 시대가 열린 이후였다. 자본주의 발전은 국민 다수로 하여금 근대적인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했고, 이는 자연스레 19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 인권과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운동의 폭발적 성장을 가져왔다. 민주화 시대는 다름 아닌 시민사회 시대였다.

21세기에 들어와 우리 시민사회는 서구와 유사한 경향을 보여준다. 가족의 급격한 변동, 결사체와 시민운동의 한 순환의 마감, 사이버 공론장의 성장과 양극화된 공론장의 강화가 그것들이다. 시민사회에서 서구사회와 한국사회의 시간적 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는 발전 모델은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생산적 공존이다. 이를 위해 시민사회는 국가와 시장에 대해 비판적 견제를 추구하는 동시에 생산적 협력을 일궈내야 한다. 비판적 견제와 생산적 협력이라는 시민사회의 과제에 대한 숙고와 실천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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