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가까이 이어진 장마에 잡초들만 신이 났다. 일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뜻이다. 옥수수는 알이 영그는 대신 키만 부쩍 자라고 고추는 탄저병에 수확량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오랜 물난리에 애호박, 오이, 참외, 쌈채소도 맥을 못 춘다. 나는 우선 쓰러진 고춧대를 세우고 그나마 성한 붉은 고추를 땄다. 텃밭을 시작한 지 10년, 작물은 농군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데, 따로 할 일이 많은데다 거리가 멀어 텃밭은 손길이 아쉽기만 하다. 어쨌거나 내 일이다. 우선 빈 이랑 잡초부터 제거하기로 한다. 이랑을 만들고 퇴비를 하면 다음 주에는 배추 모종을 사다 심을 수 있다.
텃밭은 반려동물처럼 늘 주인의 관심을 요한다. 때때로 먹이를 주고 어루만지고 놀아주기도 해야 한다. 행여 손길과 발길을 끊으면 텃밭도 동물처럼 야생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 것이다. 텃밭, 즉 도시농업을 팔자 좋은 사람들의 소일거리로 여기기도 하지만, 어쩌면 텃밭 할 공간이 사라지면서 반려동물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예전에는 개, 고양이가 아니라 누구나 텃밭을 가꾸었다. 요는, 텃밭 농사는 노동이 아니라 휴식이자 소일거리라는 얘기다. 도시인들이 휴일에 산에 가고 극장에 가고 반려견과 산책을 하듯, 도시농업인들도 텃밭에 나가 한 주의 피로를 푼다. 두어 시간 흙, 풀을 벗 삼아 놀다보면 한 주 내 쌓인 고민과 불안은 어느새 땀과 함께 씻겨 내려간다.
텃밭은 주말에 떠나는 산행이나 바캉스와도 다르다. 자연에야 우리는 늘 손님일 수밖에 없다. 경치를 구경하고 잠시 몸을 담갔다가 떠나면 그만이나 텃밭에만큼은 내가 주인이다. 3월 감자를 시작으로 4월 말이면 온갖 작물을 심는다. 심은 후에는 추비를 하고 잡초를 제거하고 북을 돋아준다. 여름, 호박이나 오이, 가지를 키워 수확을 한 후에도 할 일은 남는다. 호박을 채 썰어 반찬을 만들거나 말려두지 않으면 결국 쓰레기로 버려지고 만다. 심심할 여유가 없다.
텃밭은 정부에서도 장려하는 정책 사업이다. 도시 농업인들에게 우리 농산물 구매욕이 더 크며 그 밖에도 고용창출, 에너지 절감 등 다양한 산업경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200만명 규모의 도시 농업을, 2022년까지 텃밭 면적 2,000ha, 인력규모 400만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다만 코로나 19의 창궐로 기간은 줄고 인원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텃밭에는 코로나가 없다. 탁 트인 공간에서 몸과 마음을 쓰는 일이다. 영화관, 헬스클럽의 폐쇄 공간을 피해 집에서 넷플릭스만 끌어안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서울을 떠난 지 25년, 이제는 어떤 소식도 먼 나라 얘기로만 들린다. 여전히 부동산은 들썩이고 사람들은 어떻게든 서울, 강남에 집을 마련하려 애를 쓰는 모양이다. 그렇게 건물이 많건만 정부는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녹지공간까지 노린단다. 삶과 사연이 각양각색이니 누가 누굴 뭐랄 바는 아니지만, 바야흐로 팬데믹 시대다. 밀접, 밀집, 밀착을 피할 수 없는 공간, 도시가 살(buy)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살(live) 곳이 못 된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텃밭 노동은 오히려 도시인들에게 필요하다. 그래서 도시농업이다. 생계 때문에 탈출은 못할지언정, 일주일에 하루, 이틀 만이라도 마스크 없이 숨 쉬고 살아보기를 조심스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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