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종료 청년들, 지원단체와 함께 사진달력 준비
"'보호종료' 뜻 사회에 알리고 '인생 스토리' 나누고파"

지난달 서울 충무로 양현모사진관에서 보호종료 청년들이 양현모(오른쪽) 사진작가에게 사진 수업을 받고 있다. 배우한 기자
"친구들과 서해안 캠핑장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이에요. 친구들과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서요."(20대 보호종료 청년 박모씨)
"다양한 색감과 소재가 한 구도 안에 들어있네요. 호기심을 끄는 이런 게 좋은 사진이죠. 여러분 나이에 맞는 흥미로운 장면을 많이 찍어 보세요."(양현모 사진작가)
상명대에 재학 중인 이중석(24)씨는 지난달부터 매주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양현모사진관을 찾고 있다. 사진에는 관심 없던 '왕초보'였지만, '준프로'에 버금가는 사진 실력을 갖추기 위해 연마 중이다. 짧은 기간 사진 배우기에 열을 올리는 건 다음달 말 20대 초ㆍ중반 또래 친구 9명과 함께 '2021년 사진 달력'을 제작하기 위해서다.
이씨와 친구들은 지난달 사진 수업 때 양현모 작가로부터 '구도'를 활용한 사진에 대해 배웠다. 안정감을 주면서 한 장의 사진 안에 다양한 사물과 인물, 색감을 배치하는 방법을 숙지했다. 이와 함께 셔터와 조리개를 바꿔가며 빛 노출량에 따라 사진을 찍는 방법도 배웠다.
양 작가가 이날 청년들이 낸 사진 중 좋은 작품으로 꼽은 건 서해안 캠핑장 사진이다. 한장에 그네와 캠핑카, 텐트 등 다양한 사물이 적절히 배치된 건 물론, 형형색색의 색감을 담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20대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이란 메시지도 들어있어 높은 점수를 줬다.
사진 전문가들 위주로 교육을 진행해 온 양 작가가 20대 초ㆍ중반 청년들을 위해 팔을 걷어 부친 건 단순히 이들의 취미생활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꿈을 사회에 알리겠다는 이씨와 친구들을 돕기 위해 이들과의 특별한 동행에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새해 달력에 자신들의 '20대 시절 청춘'을 담아 이르면 10월 말쯤 공개할 예정이다.
'무도(무한도전) 달력', '펭수 달력'처럼 스타들이나 내는 사진 달력에 일반인인 20대 청년들이 도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고 '몸짱 소방관 달력'처럼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기부 활동도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도 아니다. 보통 20대보다 먼저 사회에 진출한 이유, 자신의 인생을 응원하려는 게 이들이 달력을 만드는 이유다.
수중에 쥔 500만원, 집 구하기도 버거운 첫 번째 '자립'

보호종료 청년인 20대들이 지난달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양현모사진관에서 자신들이 촬영한 사진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류호 기자
이씨를 비롯해 이날 사진 수업에 참석한 10명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돈보스코 청소년센터'에서 함께 거주하는 '보호종료 청년'들이다. 보호종료 청년은 과거 '고아원'으로 불렸던 보육시설에서 자란 만 18세가 넘은 청년들을 뜻한다.
이들은 대부분 스무살을 넘긴 청년들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도 있고, 군대를 제대해 대학에 복학한 사람도 상당 수다. 그러나 아직 독립하지 않고 돈보스코 같은 보호시설에 머물며 주거지와 식사 등 각종 생활 지원을 받고 있다. 독립할 나이가 지났는데도 아직 시설에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호종료 청년은 만 18세가 되면 보육시설을 나와 독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들이 보육시설을 나올 때 들고 나오는 돈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자립지원금으로 받는 500만원이 전부다. 이 돈도 지자체마다 차이가 있어 적은 곳은 400만원도 채 받지 못한다고 한다.
돈은 용도 제한이 없이 자신이 필요한 곳에 어디든 쓸 수 있지만, 대부분 주거지 마련에 들어간다. 집을 구해 곧 바로 생계 현장에 뛰어 들어야 하는 게 이들의 현실이다. 당당히 독립해 홀로서기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 많은 이가 자립에 실패한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청년은 "우리는 18세가 되면 보호시설을 나와야 해 미리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런데 학생 때 돈을 얼마나 모을 수 있겠나"라며 "500만원도 큰 돈이지만,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면 돈 쓸 데가 너무 많다. 첫 시작부터 막막한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돈도 문제지만 도움을 요청할 인간관계가 끊긴다는 것도 이들의 애로사항이다. 보호종료 청년인 김모씨는 "보호시설에서 나오면 새로운 지역으로 혼자 떨어져 지내야 하는데, 그동안 쌓아 온 인간관계가 모두 끊어지게 된다"며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적다 보니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고 토로했다.
독립이 생각보다 어렵다보니 극한 외로움에 내몰리고, 결국 스스로를 내려놓는 사람도 제법 있다며 안타까운 현실을 전했다. 이씨는 "우리는 넓은 황무지에 던져진 사자 한마리와 같다. 약해 보이면 잡아먹히기에 늘 강한 척을 하고 살아야 한다"며 "외로움과 불안감을 쉽게 느끼다보니 나쁜 길에 빠지거나 방황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보호시설서 재충전 시간 갖는 보호종료 청년들
그러나 이들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첫 번째 도전은 실패했어도 그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성공 계획을 세워 두 번째 독립에 도전한다. 이를 위해 돈보스코처럼 이들을 돕는 시설과 프로그램을 찾게 된다. 그곳에서 충분한 재충전과 훈련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립 성공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날 진행된 사진수업도 이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마련된 재능기부 프로그램이다. 20대를 위한 비영리법인 '오늘은'이 보호종료 청년들의 자립심을 키워 주고 이들의 문화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준비한 '무지개대학'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 프로젝트는 상대적으로 문화생활을 접할 기회가 적은 이들을 위해 마련된 것으로, 더 넓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사회생활을 돕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자립에 필요한 경제와 부동산 관련 교육은 물론, 진로 상담, 적성 개발, 문화예술 교육도 함께 진행된다. 강국현 오늘은 사무국장은 "사진이나 요리 수업 등은 사회에 나갔을 때 이들의 삶을 다채롭게 하는 교양 차원에서 접근했다"며 "당장 배가 부른 자립과 상관 없지만 사회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미리 준비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사진수업으로 인생 터닝포인트 맞아, 자신감 생겨"

보호종료 청년인 20대들이 지난달 4일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양현모사진관에서 사진 수업을 받고 있다. 류호 기자
사진수업이 더욱 특별한 건 자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자아 성찰'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체로 사진을 낯설게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사진을 접할 기회가 적다 보니 사진을 찍는 건 물론, 사진에 찍히는 게 생소하다. 사진에 비친 자신을 마주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사진에 익숙해 지는 건 물론, 사진에 담긴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됐다. 사진 수업에 참가한 서모씨는 "평소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던 풍경이나 일상도 사진을 배운 뒤 좀 더 관심있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며 "친구들과 같이 사진을 배우며 시간을 함께 보내고 이걸 기록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들의 프로젝트는 보호종료 청년에 대한 개념을 사회에 알리겠다는 취지라 남다른 의미가 있다. 오늘은과 청년 10명이 '2021년 사진 달력'을 내기로 한 건 자신들의 고충을 알리고 싶어서다. 사회에 먼저 손을 내밀어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서겠다는 생각이다. 강 사무국장은 "어른들은 보통 고아라고 하면 알지만, '보호종료 청년'이란 말을 아직 낯설어 한다. 우리 사회가 아직 이들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니 이를 알리고 싶었다"며 "이들이 어떤 사정이 있는 사람들인지, 자신들의 꿈은 무엇인지, 이들의 인생 스토리를 담고 사회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도 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들 모두 경제적 자립을 넘어 20대의 청춘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씨는 "18세가 돼 처음 자립했을 땐 두려움이 컸지만, 이곳에서 다시 준비를 하니 두 번째 자립은 잘 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은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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