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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 대신 펜’ 병도 고치고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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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 대신 펜’ 병도 고치고 소설도 씁니다

입력
2020.08.21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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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의사들 이낙준, 김유명, 박상민

이비인후과 전문의인 이낙준 작가의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는 누적 다운로드 수 1,500만회를 돌파하며 최근 드라마화가 확정됐다. 네이버시리즈 제공

이비인후과 전문의인 이낙준 작가의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는 누적 다운로드 수 1,500만회를 돌파하며 최근 드라마화가 확정됐다. 네이버시리즈 제공


김승섭, 남궁인, 하지현, 박경철… 글 잘 쓰는 의사들은 출판계의 대표적인 블루칩이다. 본인의 전공을 살려 사회의 병리 현상을 분석하기도 하고, 전투적인 의료 현장과 의사 개인의 인간적 고민을 생생하게 담아낸 글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에세이나 교양서를 넘어 본격적으로 ‘소설가’에 도전하는 의사들도 늘고 있다.

네이버 웹소설 플랫폼 시리즈에서 누적 다운로드 1,500만회를 돌파하며 드라마화가 확정된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의 이낙준 작가,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전공을 살려 현대인의 욕망을 의학에 투영한 소설을 쓴 김유명 작가, 한국추리작가협회 신인상을 수상하고 메디컬 감성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개척 중인 박상민 작가까지. 문과와 이과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중인 이들에게 ‘의사 소설가’만의 특별한 점을 물어봤다.

어쩌다 의사가 소설까지 쓰게 됐을까?

의사이면서 소설가라는 정체성은 같지만, 이들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이낙준 작가는 문학 유전자가 남다른 집안에서 자라 자연스레 소설에 관심을 두게 됐다. 그의 아버지는 무협지 팬이었고, 동생은 대학 문학상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작가는 “평소에도 한강 김애란 등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많이 읽어왔다”며 “순문학보다는 웹소설이 도전에 장벽이 없어 보였고 재미만 있으면 독자들이 알아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유명 작가는 “의사로 10년쯤 일하고 보니 일반인들은 알기 힘든 이 직업 세계의 경험을 적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며 “이야기로 풀어내면 독자들이 호기심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 소설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12년차 성형외과 전문의인 김유명 작가는 전공을 살려 현대인의 욕망을 의학에 투영한 소설을 써낸다. 가쎄 제공

12년차 성형외과 전문의인 김유명 작가는 전공을 살려 현대인의 욕망을 의학에 투영한 소설을 써낸다. 가쎄 제공


문과 이과 경계 철저한 한국…의사 소설가 나오기 힘든 현실

해외에는 로빈 쿡이나 마이클 크라이튼, 테스 게리첸 등 실제 의사이면서 소설가인 작가가 많다. 이들이 쓰는 소설을 일컫는 ‘메디컬 스릴러’라는 장르가 따로 있을 정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걸음마 수준에 가깝다. 한국에서 의사 소설가가 많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이낙준 작가는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일을 많이 하는 우리나라 의사들의 근무환경”을 꼽았다. 애초에 본업 말고 다른 일을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김유명 작가는 ‘교육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작가는 “해외에서는 인문대를 다니다가도 메디컬 스쿨에 진학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와 이과로 나뉘고 해당 분야의 공부만 하기 때문에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의사가 나오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취재가 쉽겠다고? 의외의 고충도 있다

전문지식에 대한 공부가 따로 필요한 일반 작가에 비해, 본인이 잘 아는 분야를 소설로 풀어내는 것이다 보니 취재가 용이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뜻밖의 고충도 있다. 박상민 작가는 “소설을 쓴다고 하면 아무래도 주변에서 본업에 소홀하지 않을지 염려하지만 근무 외 시간에 짬을 내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낙준 작가는 “현직 의사가 쓰는 소설이라는 걸 독자들이 알고 있다 보니 현실에서는 사실 불가능한 상황인데도 독자들이 믿어버리는 경우가 있다”며 “그럴싸한 허구가 돼버리는 게 장점이면서 단점”이라고 말했다.

2016년 한국추리작가협회 신인상으로 데뷔한 박상민 작가는 최근 공중보건의로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대구의료원에 파견근무를 했다.아프로스미디어 제공

2016년 한국추리작가협회 신인상으로 데뷔한 박상민 작가는 최근 공중보건의로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대구의료원에 파견근무를 했다.아프로스미디어 제공


의학지식 활용하지만 환자의 개인정보는 철저히 보장

실제 의료 현장을 배경으로 하면 환자의 사적인 질환이나 상황이 은연 중에 드러나진 않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정작 의사 소설가들은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상민 작가는 “책을 읽은 주변 의사들 중에 실제 그런 환자를 만난 적이 있는지 물어보신 분도 있다”며 “의학지식만 활용할 뿐 소설 속 이야기는 전부 상상으로 쓴다”고 말했다. 이낙준 작가는 “애초에 의료법상 환자의 개인정보는 어디에서 어떻게 다쳤는지 정도만 기재되고 신상은 아무도 알 수 없다”며 “소설에 등장하는 상황은 전적으로 허구라고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훌륭한 의사이자 훌륭한 소설가로, 목표는 따로 또 같이

의사와 소설가라는 쉽지 않은 두 가지의 일을 모두 해내는 이들에겐 목표도 두 가지일 수밖에 없다. 이낙준 작가는 “소설가로서는 언젠가 의학소설이 아닌 다른 세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써보고 싶고, 이비인후과 의사로서는 보청기의 안경화를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김유명 작가는 “소설을 쓰기는 하지만 의료인으로서는 환자에게 충실히 몰입하고 싶기 때문에 두 가지 자아가 서로 섞이지 않는 것”이 신념이다. 박상민 작가는 “스릴러나 미스터리 장르를 넘어 청소년 소설이나 SF도 써보고 싶다”고 했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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