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바이든과 오바마
2018년 7월 30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미국 워싱턴 조지타운에 위치한 ‘도그태그 베이커리’를 찾아 함께 메뉴를 고르고 있다.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에 정권을 넘겨준 뒤 각자의 길을 가던 두 사람은 이날 만남으로 여전한 브로맨스를 과시했다.워싱턴DC=로이터 연합뉴스
2018년 7월 미국 워싱턴DC 조지타운에 위치한 자그마한 빵집. 두 사람의 등장에 시민들은 열광했다.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며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에 미국인들은 “당신들이 너무 그리웠다”며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 정치 역사상 최고의 ‘브로맨스’를 자랑했던 버락 오바마(59)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77) 전 부통령 얘기다. 흑인 대통령과 백인 부통령. 백인이 늘 우위를 차지하던 권력의 서열을 단숨에 전복시킨 두 사람은 그 자체로 새로운 미국의 희망이었고 위대한 가능성의 상징이었다.
2016년 두 사람이 떠나고 난 뒤 백악관은 독설과 막말, 분열과 대립의 진앙지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독한’ 정치에 신물이 난 미국인들은 이제 ‘조바마’ ‘오바이든’(두 사람의 이름을 결합한 별명)이 함께 그려 냈던 ‘순한’ 정치가 그리운 모양이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된 조 바이든의 지지율이 트럼프를 앞지르는 걸 보면 말이다.
11월로 다가온 미국 대선 판이 들썩이는 시기에 맞춰 출간된 ‘바이든과 오바마’는 두 사람이 환상의 정치적 파트너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책이다. 미국인들에겐 상식이 통하는 정치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조 바이든이란 인물을 탐구해 볼 기회를 준다.
2008년 8월 미국 콜로라도 덴버시 펩시센터에서 진행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되자, 러닝메이트로 나선 조 바이든 부통령 후보가 박수를 치며 축하하고 있다. 대선에서도 승리한 두 사람은 나란히 백악관에 입성 한 뒤 8년 간 같은 곳을 바라보며 정치 여정을 걸었다. 덴버=로이터 연합뉴스
겉으로 보기엔 두 사람은 친해질 이유가 없었다. 모든 게 달랐다. 나이 차이도 크고, 성격마저 극과 극이었다. 꼭 필요한 말만 묵직하게 던지는 철두철미한 ‘내향적 학구파’ 오바마와 달리 바이든은 계산 따위 없이 감성 넘치는 ‘외향적 문학도’이자 떠버리 수다쟁이였다. “세상에 그 양반 정말 말이 많더군.” 2005년 초선의원이던 오바마가 32년 베테랑 의원이었던 바이든의 쉴 새 없는 연설을 보고 혀를 내둘렀던 게 첫 만남이었다.
패기 넘치는 젊은 오바마에게 미국 상원의회는 낡고 느리고 비효율적인 정치집단이었다. 반면 바이든은 자신의 정치 인생을 함께한 상원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최연소(30세) 기록으로 상원의원에 당선된 지 한 달 만에 바이든은 사랑하는 아내와 13개월 막내딸을 교통사고로 잃는 아픔을 겪었다. 질 바이든 여사와 재혼하기까지 남은 두 아들을 5년간 홀로 키우면서 인생을 바친 곳이었기에 더욱 그랬는지 모르겠다.
오바마와 바이든은 상극이었지만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바로 진실함이다. 책에서 묘사되는 바이든은 ‘겉과 속이 같은’ 그야말로 투명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30년 넘게 정치판에서 구른 노회한 정치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격의 없는 소통에 바이든은 ‘짜증 없고, 악의 없고, 증오심 없는 트럼프’라고 칭해지기도 한다. 스포츠를 좋아하고, 가족을 끔찍이 아끼는 것도 비슷했다.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 대신 바이든을 부통령으로 낙점한 건 인간적인 매력에 반해서다. 임기 초반 바이든의 숱한 말실수로 곤혹스러운 상황을 겪으면서도, 오바마가 재선 이후 바이든을 놓지 않은 이유다.
2016년 11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워싱턴 DC 백악관의 로즈가든에서 제45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을 마친 후 조 바이든 부통령과 함께 자리를 떠나고 있다. 워싱턴DC=AFP 연합뉴스
아슬아슬한 갈등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으로 문제를 풀어 나갔다. 바이든은 처음부터 병풍처럼 서 있기만 하는 부통령의 역할은 사절했다. 역대 미국의 부통령은 대통령 유고 시를 대비한 ‘대체인력’에 불과했다. 바이든은 그 이상을 원했다. 중요한 모든 회의에 참석하고 대통령과 매주 오찬을 하며 수석 고문으로 국정 전반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사실상 권력을 공유하는 일. 지나치다고 느낄 법한 요구였지만 오바마는 흔쾌히 수락했다.
바이든은 종횡무진 활약했다. 상원외교위원장을 3번이나 역임할 만큼 ‘외교통’이었던 바이든은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지속적으로 조언하며 오바마의 외교안보 교사를 자처했고, 정치적 경륜과 특유의 친화력을 무기로 공화당 의원들과 초당적 협력도 이뤄 냈다.
바이든과 오바마ㆍ스티븐 리빙스턴 지음ㆍ조영학 옮김ㆍ메디치 미디어 발행ㆍ408쪽ㆍ1만8,000원
정당한 권력은 쥐고 있는 게 아니라 나눌수록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세진다는 걸 두 사람은 몸소 보여 줬다. 경기부양, 보건 의료 개혁, 인종차별, 동성결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정책의 출구전략까지 이견이 있더라도 끊임없이 머리를 맞댔다. 선뜻 말 못하는 민감한 현안이 있을 때 바이든은 때때로 오바마의 '입'이 돼 줬고, 바이든이 공격당하면 오바마가 방어해 줬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 몸처럼 움직이며 시너지를 냈다. 그 덕에 미국인들은 정치의 힘을 체감했다.
하지만 8년의 브로맨스가 무색하게 오바마는 2016년 민주당 경선에서 바이든이 아닌 힐러리를 후계자로 낙점했다. 본선 경쟁력에서 더 승산이 있다고 본 것. 오바마는 정치적 미래 앞에서 냉철했지만, 바이든에겐 상처였다. 그러나 4년 뒤 바이든은 3수 끝에 민주당의 대선 후보 자리를 결국 거머쥐고 부통령이 아닌 대통령의 자격으로 백악관 재입성을 노리고 있다.
안으로는 통합과 치유를, 밖으로는 미국의 리더십 회복을 내세운 바이든. 러닝메이트로 검사 출신의 흑인여성이자 초선 상원의원인 카멀라 해리스(55)를 택한 것은 오바마, 바이든의 시즌2를 연상케 한다. 바이든이 만들어 내는 품격 있는 정치와 리더는 어떤 모습일지, 미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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