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과 곽도원 몰래 관객의 눈을 훔친 이가 있다. 전국 175만 관객을 모은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잠수함 부함장 장기석 역으로 출연한 신정근(54)이다. 드라마 시청자들에겐 ‘미스터 션샤인’의 행랑아범, ‘호텔 델루나’의 김선비로 깊은 인상을 남긴 그는 ‘강철비2’에서 다시 한번 감초 이상의 역할을 해내며 주목받고 있다. 관객들 사이에선 “진짜 주인공은 정우성이 아니라 신정근”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영화가 처음 공개된 뒤엔 눈이 빨개지도록 댓글을 찾아 읽었는데 칭찬이 많아지면서 점점 책임감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말했다.
‘강철비2’는 남북미 정상회담 중 세 정상이 북한군의 쿠데타로 핵잠수함에 납치된 뒤 벌어지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그린다. 장기석 부함장은 몇 줄짜리 줄거리엔 등장하지 않는 인물. 영화 초반만 해도 곽도원이 연기하는 북한 호위총국장에 가려 잘 보이지 않다가 후반부에 맹활약하며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낸다.
신정근은 처음 출연 제의를 받고선 믿기지 않아 소속사에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온 배역이 맞는지 확인까지 했다고 한다. “그동안 코미디 위주로 출연했는데 장기석은 너무 멋있는 군인이잖아요.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싶었죠. 정우성씨가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장기석 역으로 저를 떠올렸다고 하더라고요. 분장 안 해도 이미 한 것 같다면서요. 대한민국 배우 중 가장 북쪽에 가까워서인지, 미국 대통령으로 출연한 배우도 절 보고 ‘노스 페이스(North face)’라고 하더군요.”
1987년 극단 생활을 시작한 뒤 33년째 연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신정근은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감초 역할을 했다. 때론 허술한 동네 건달로, 못된 악당으로, 까칠한 수사반장으로 출연하며 변신을 거듭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걸쭉한 사투리를 내뱉는 생활 밀착형 캐릭터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영화 ‘거북이 달린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코미디의 비중이 많지만 과도한 코믹 연기가 없으며 비슷한 캐릭터를 반복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그는 “한 쪽으로 치우치면 금방 사람들 눈에 띄고 유명해질 수 있을지 몰라도 소진돼버리고 나면 더 이상 쓰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며 “주어진 한도 안에서 최대한 풍요롭고 다양한 연기를 하려 한다”고 말했다.
배우라면 누구나 주인공으로 나서고 싶다는 욕심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는 주연 이야기에 고개를 저었다. “인품과 깜냥이 없다면 관객도 동료도 스태프도 다 알기 때문에 그 모든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선량한 서민을 연기하든 거친 불량배를 연기하든 신정근이 만들어내는 캐릭터에는 진한 인간미가 배어 있다. ‘강철비2’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뜨끔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캐릭터를 좋아하나 봐요. 어릴 적에 무서운 아버지 아래서 자라서인지 따뜻한 게 좋아요. 그래서 연기를 하다 가끔 들키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정신 차려야 하는데, 그래서 제가 주연을 못하나 봐요. 하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