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표정
“분열된 국가를 통합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그가 바로 조 바이든입니다.”
우렁찬 함성과 박수는 없었지만 차분하면서도 강인한 현장의 목소리는 생생하게 전달됐다. 17일(현지시간) 민주당 전당대회 개막을 시작으로 미국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사상 처음 화상으로 진행된 것 치곤 일단 첫 날 성적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전대는 20일까지 나흘간 열린다.
환호가 사라지자 엄숙함과 비장감은 더욱 도드라졌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지난 4년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적을 통렬히 비판하며 유권자들의 결집을 호소했다. 코로나19 사태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단단히 각을 세운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州) 주지사는 대통령의 보건 리더십을 직격했다. 미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진 반(反)인종차별 시위의 불씨가 된 고(故) 조지 플로이드의 형제들도 나와 트럼프의 차별을비판했다.
이날 오후 9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된 민주당 전대 첫 날 주제는 ‘우리, 국민’. 제목부터 통합을 강조해 배제와 분열을 일삼는 트럼프를 겨냥했다. 사회를 맡은 배우 에바 롱고리아는 “지난 4년 동안 우리는 하나의 국가로서 축소되고 분열됐다”며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바로 조 바이든 대선 후보와 부통령으로 지명된 카멀라 해리스가 백악관에 가져올 리더십”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미셸 오바마 "혼란과 분열, 공감 결여의 4년"
이날 지지 연설 중 가장 주목 받은 이는 단연 미셸 오바마 여사였다. 그가 맞춤 제작해 목에 걸고 나온 ‘투표하자(VOTE)’ 목걸이가 300~400달러이며 “지난 몇 주 동안 자신의 연설문을 작성해 연습했다”는 보좌관 발언마저 화제가 됐다.
연설의 대미를 장식한 오바마 여사는 트럼프를 겨냥해 “잘못된 대통령” “미국에 맞지 않는 대통령”으로 칭하면서 시종 날 선 비판을 이어갔다. 그가 특히 문제 삼은 부분은 ‘공감 능력’이었다. 오바마 여사는 “우리가 백악관에 지도력이나 위로, 안정감 같은 것을 요구할 때마다 대신 우리가 얻은 것은 혼란과 분열, 그리고 완전한 공감의 결여”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를 향한 성토는 ‘우편 투표’로 이어졌다. 우편 투표는 트럼프가 극구 반대하는 투표 방식이다. 오바마 여사는 “그들(트럼프 행정부)은 소수 이웃의 투표를 폐쇄하고 있다”며 “유권자들을 숙청하고 있고, 협박하기 위해 사람들을 내보내고, 우리 투표소의 보안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일찍 투표를 해야 한다. 오늘 밤 당장 우편 투표 용지를 요청하고 확실히 접수되도록 확인해야 한다”고 유권자들을 독려했다. “2008년과 2012년처럼 투표해야 한다”면서 4년 전 실책을 되풀이해선 안된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그는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난달 17일 별세한 흑인 인권운동의 거목인 존 루이스 전 민주당 하원의원을 언급했다. 오바마 여사는 “역사의 흐름에 우리의 목소리와 표를 더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며, 존 루이스와 같은 영웅들이 ‘잘못된 것을 보면 반드시 무슨 말을 해야 한다. 뭔가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진정한 공감의 형태”라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으로 “내 친구 바이든을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거듭 투표를 촉구했다.
샌더스 "하나로 뭉쳐 트럼프 물리쳐야"
바이든 전 부통령의 당내 경쟁자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힘을 보탰다. 그는 현재 미국사회의 상황을 ‘위기’로 진단하며 “트럼프가 재선하면 우리가 이뤄낸 모든 ‘진보’가 위태로워 질 것”이라면서 “민주주의 미래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주장했다.
샌더스 의원은 대선 승리 만이 위기를 헤쳐 나갈 유일한 방법이고 역설했다. 그는 “올해 대선은 이 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라며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선 전례 없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모두가 하나로 뭉쳐 트럼프을 물리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큰지 그를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는 우리 민주주의에 단순히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과학을 거부하며 우리의 삶과 건강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19 부실 대응을 비판한 것이다. “네로는 로마가 불타는 동안 바이올린을 켰고, 트럼프 대통령은 골프를 쳤다”는 한 마디로 트럼프의 대응 능력을 매몰차게 깎아 내렸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강조했던 귄위주의에 대한 위험도 빼놓지 않았다. 샌더스 의원은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당신들 중 상당수는 권위주의가 민주주의와 품위, 인류를 파괴하는 음흉한 방법을 알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우리를 권위주의로 이끌고 있다. 탐욕과 독재, 권위주의에 맞서 일어설 준비가 돼 있고, 민주주의와 품위를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 움직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미 언론은 8분간 이어진 그의 연설이 끝난 뒤 “두 차례 대선 도전의 긴 여정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고 평했다.
"트럼프, 감염병ㆍ인종차별 총체적 부실 대응"
지난 5월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플로이드의 형제들도 연사로 나섰다. 동생 테런스와 필로니스는 카메라 앞에 서서 형을 비롯해 인종차별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한 뒤 묵념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필로니스는 “형은 이기심이 없었다. 그는 항상 가족과 친구, 심지어 완전히 낯선 사람들을 위해 희생했다”며 “우리나라와 전 세계의 모든 인종, 모든 연령, 모든 성별, 모든 배경의 사람들이 사랑과 단결의 이름으로 거리에 나와 평화롭게 항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의를 위한 싸움을 계속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쿠오모 주지사는 트럼프의 코로나19 대응을 깊숙이 파고 들었다. 그는 “코로나19를 억제하지 못한 것은 정부와 사회의 깊은 부패 증상”이라며 “코로나는 질병이 아니라 증상”이라고 진단했다. 또 “바이러스는 신체가 약하고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을 때 공격하는데, 지난 몇 년간 미국의 신체인 정치가 더 깊이 약화되고 분열이 커졌다”고 꼬집었다. 그가 상처 치유의 첫걸음으로 내세운 것도 결국 투표였다. 쿠오모 주지사는 “우리는 국민만큼 훌륭한 리더, 최악이 아닌 우리 내부의 최고에 호소하는 리더, 분열이 아닌 통합할 수 있는 리더, 우리를 무너뜨리지 않고 일으켜 줄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아버지를 잃은 여성 크리스틴 우르퀴자의 사연도 주목 받았다. 우르퀴자는 “트럼프가 바이러스를 유발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의 부정직함과 무책임한 행동이 그것을 훨씬 더 악화시켰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내게 한 말 중 하나는 트럼프 같은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낀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내가 바이든에게 표를 던지는 것은 아버지를 위한 일”이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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