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 카로스타 호텔(8.21)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라트비아도 그해 8월 21일 독립했다. 하지만 라트비아는 나머지 발트 3국(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과 함께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하지 않았다. 러시아로부터의 실질적, 항구적 독립 의지에 따른 거였다
18세기 스웨덴-러시아 북방전쟁 이후 제정러시아에 밟힌 라트비아는 1차대전 직후인 1918년 11월 독립했지만, 발트해를 놓칠 수 없었던 러시아는 다시 전쟁을 일으켰다. 라트비아는 영국 폴란드 등 연합국의 도움으로 간신히 독립을 지켰다. 2차대전 발발 직후인 1940년 러시아는 발트 3국을 다시 점령했다. 라트비아 시민 약 13만명이 망명했고, 약 그쯤의 시민이 살해되거나 시베리아로 유배됐다. 연방 체제의 51년간 라트비아는 사실상 피식민지였고, 민족주의와 독립 의지에 비례해 탄압도 심했다. 독립국가연합 거부는 그 경험의 결과였다. 러시아어가 모국어인 국민이 약 37%이고 81%가 소통이 가능하지만, 라트비아 국민은 2012년 국민투표를 통해 러시아어 제2공용어 지정을 거부했다.
라트비아 발트해 항구도시 리예파야(Liepaja)는 차르의 별장이 있던 휴양지이자, 소비에트 발틱함대의 거점 군항이었다. 도시의 3분의 1이 막사와 벙커 및 부대시설을 갖춘 군사지역이었다. 카로스타(Karosta) 군 교도소는 정치범 등 수많은 이들이 고문ㆍ처형당한 곳이었다. 민간인은 접근할 수 없고, 한번 들어가면 죽어야 나온다던 군 기지는 독립 이후 유령도시가 됐다.
카로스타 교도소는, 현재 옛 모습 그대로 박물관 겸 호텔이 됐다. 투숙객은 철창 감방에서 수감자가 쓰던 침대에서 자고, 그들이 먹던 밥을 먹는다. 소비에트 군인 복장의 종업원은 최대한 옛 교도관의 방식으로 고객을 응대한다. 하루 숙박료는 2020년 현재 15유로(식사료 별도), 특실인 교도소장의 방은 50유로다. 별도 요금을 내면 스파이게임, 탈옥게임 등 어드벤처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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