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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여야에서 동시에 국회의원 임기를 제한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직전 선거까지 3회 연속 당선된 사람은 다음 총선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미래통합당도 국회의원 4연임 제한을 담은 정강정책 초안을 발표했다. 둘 다 기득권 내려놓기를 통해 국민 신뢰를 회복하자는 취지다.
□국회의원 임기 제한은 쉽게 말해 ‘고인 물은 썩는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20대 국회 법안 대표 발의 횟수는 선수별로 초선 61.6개, 재선 80.6개, 3선 47.8개, 4선 43.2개였다. 결석률도 4선 의원이 9.4%로 가장 높다. 초ㆍ재선 때는 바짝 일하다가 3선부터 느슨해지는 거다. 보통 3선이 되면 상임위원장을 역임하고 중진 소리도 듣는다. 이때부터 처신이나 발언이 신중해지고 어깨에도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임기를 제한하면 다선의 기득권과 전횡은 줄어들 것이다. 3연임만 가능하도록 한 지방자치단체장과 형평성 문제도 있다. 하지만 초ㆍ재선 의원이 청와대나 당 지도부의 돌격대ㆍ거수기 역할을 하는 현실 속에서 다선 의원의 존재감과 경륜은 법안 발의 숫자나 출석률 못지 않게 중요하다. 또 21대 총선 현역 물갈이율은 58.2%로 중진들이 안정적 기득권을 누린다고 보기도 어렵다.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본령인 국회의원을 지자체장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도 지나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가운데 연임 제한 규정을 두는 나라는 없다. 미국만 해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33년간 의정 활동을 하고 있다. 2010년 별세한 로버트 버드 상원의원은 51년간 상원의원을 지냈고, 하원까지 합치면 57년176일간 재직했다. 선수에 상관 없이 유능한 인물들이 국회에서 활동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 판단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선 때만 되면 국회의원 임기 제한 논의가 되풀이된다. 결국 정치가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밥값도 못하면서 싸우기만 한다면 누가 철밥통을 곱게만 보겠는가. 임기 제한 논의에 '정치 혐오' 운운하는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각성부터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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