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개를 무서워했다. 아무리 귀여운 개라도 큰소리로 짖어대면 겁이 나서 다가갈 수 없었다. 불같이 화를 내는 무서운 어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강아지를 관찰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있다. 개가 짖을 때 무서움에 떨고 있는 쪽은 오히려 짖고 있는 그 개라는 것.
본가에서 키우던 강아지는 낯선 이가 다가오면 일단 짖었다. 소리는 우렁차게 들리지만 관찰해보면 주춤주춤하며 뒷걸음질 치는 모습이 영락없이 겁먹은 아이다. 대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도 짖었고, 산책 중에 다른 개를 보아도 짖었다. 하지만 상대가 다가오기라도 하면 도망가기 바쁜 겁보일 뿐이었다. 덕분에 이제는 길을 가다가 크게 짖는 개를 만나면 무서워하기보다는 ‘겁이 많구나’ 하며 짠한 마음까지 든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습관적으로 화부터 내고 보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 아니라 두려운 게 많은 사람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의 뒤에 진짜 감정이 숨겨져 있다. 사람이 가진 분노의 뒤를 살펴 보면 불안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연락을 잘 하지 않는 애인에게 화를 내는 건 자신이 버림받을까봐 불안한 것일 수 있다. 걸핏하면 목소리를 높이고 화를 내는 직장 상사의 마음 안에는 부하 직원들이 자신을 무시할까봐 또는 인정받지 못할까봐 라는 불안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의연한 쪽보다 크게 동요하는 쪽에서 스스로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이 더 많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습관적으로 욱하고 분노하는 사람을 분노로 되받아칠 일이 없다. 대신 그 사람이 내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화를 내는 걸까. 무엇을 지키고 싶어서 저렇게 크게 동요하는 걸까 하고.
불안감이 높은 사람은 상황을 통제하려는 성향이 높다. 이 때문에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남들보다 더 불안을 느끼고 그것이 화로 표현이 되는 것이다. 통제되지 않는 상황을 견딜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분노를 마주했다면 똑같은 분노로 반응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좋다.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을 상대를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불안에서 기인한 분노는 어차피 타인이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다. 그는 당신의 행동에 화가 났다기보다, 자신의 불안감이 건드려진 것이니까.
그런데 늘 욱하는 사람이 당신이라면? 만약 당신이 분노를 조절할 수 없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다면 이렇게 해보자. 화가 날 때마다 주로 어떤 상황에서 그 불편한 마음이 일어나는지 살펴본다. 분명히 패턴이 있을 것이다. 그 패턴을 파악한 다음, 감정 아래에 있는 자신의 두려움을 마주해보자. 나를 깊이 이해하기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 일어난 것을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당신의 화를 너그럽게 받아 줄 여유가 없다. 때로는 당신의 불안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대와 진솔하게 소통할 수 있다면 상황은 악화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어낼 가능성도 높아진다.
장기화된 코로나와 긴 장마 때문에 사람들은 더 예민해졌고 화가 많아졌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과 타인의 분노를 돌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테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