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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자림로를 사랑했다

입력
2020.08.18 16:00
수정
2020.08.18 17:45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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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용
최성용작가
왕복 2차선의 제주시 비자림로. 최성용 작가 제공

왕복 2차선의 제주시 비자림로. 최성용 작가 제공



서귀포시 남원읍과 제주시 조천읍을 연결하는 도로는 두 지역의 이름을 따서 남조로라 부른다. 이 도로는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오가는 제주도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제주의 주요 도로 중 하나이지만,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는 관광객에게는 한라산 동쪽 산간을 지나는 왕복 2차선의 시골길일 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남조로 정상 부근인 교래자연휴양림과 붉은오름자연휴양림 사이의 교래사거리는 출퇴근 시간이면 긴 정체가 있었다. 제주도 사람들도 출퇴근을 하고, 시골길인 교래사거리에는 러시아워가 존재했다. 1년 전, 교래사거리 일대의 남조로 확장 공사가 완공되면서 교통 정체는 크게 개선됐다.

교래사거리에서 남조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도로가 비자림로다. 왕복2차선의 아담한 도로를 삼나무가 감싸고 있는 이 도로는 아름다운 길로 유명하지만, 육지 사람들이 그 길의 이름까지 알지는 못했다. 이름이 알려진 것은 비자림로 확장 공사가 전국적인 이슈가 되면서부터다. 교래사거리에서 동쪽 해안 방향으로 8.5㎞를 달리면, 공사가 중단된 비자림로 확장 공사 구간이 나온다. 제주 비자림로의 도로 확장을 위해 삼나무 900여그루를 벌목한 지도 2년이 지났다.

지난 2년은 도로 확장을 원하는 사람들과 비자림로의 원래 모습을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의 논쟁의 시간이었다. 논쟁의 중심에는 ‘삼나무가 지켜야 하는 자연인가’가 있었다. 도로 확장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곳의 삼나무는 ‘자연’이 아닌 ‘인공’으로 심은 나무이고, 알레르기를 일으키며, 삼나무 단일종으로 이루어진 숲은 생태 다양성을 해치니 베어도 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한 반론은 간단하다. 1960년대까지 전국의 수많은 산이 민둥산이었고, 이를 우거진 숲으로 만들기 위한 대대적인 조림사업이 있었다. 사람이 심은 나무는 베어도 좋다고 한다면 살아남을 숲은 별로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끔찍히 좋아하는 소나무도, 주변에 많고 쓰임이 많아 ‘참’자를 득한 참나무류도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공사 대상 구간에는 천연기념물이자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팔색조와 잿빛개구리매 등이 살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뒤져보면 주변이 숲으로 둘러싸인 비자림로에서 애기뿔소똥구리 같은 멸종위기 곤충이나 양서류를 찾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 연구팀의 보고서에 따르면 비자림로의 식물상 다양성 지수는 지리산국립공원과 제주 곶자왈 시험림과 비슷하다. 이제 삼나무는 베어도 된다는 주장은 유효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도로 확장을 하지 못한다면 남조로의 확장도 불가능했다. 남조로 확장 공사 구간에는 팔색조와 잿빛개구리매, 애기뿔소똥구리가 살지 않을까?


지난 5월 공사가 재개된 제주시 비자림로 2구간. 연합뉴스

지난 5월 공사가 재개된 제주시 비자림로 2구간. 연합뉴스


2년 전 8월, 비자림로의 삼나무가 뭉텅이로 잘려나간 모습이 알려졌을 때 많은 사람은 큰 충격을 받았고, 이는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전국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왜 남조로 확장 공사에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지만 비자림로 확장 공사에는 분개할까? 나는 사람들이 비자림로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자림로에는 남조로 확장공사 구간과 같은 정도의 교통체증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 저속으로 달리는 트럭이, 농번기의 경운기가 길을 막아섰지만, 그 뒤를 조금 느리게 뒤따라가면 되는 정도였다. 물론 차선을 늘리면 저속차량을 쉽게 추월할 수 있으니 이동 시간이 몇 분 줄어들 것이다. 줄어든 몇 분의 대가는 사람이 사랑하는 장소의 상실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장소는 흔치 않다.

남조로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확장 공사 구간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통행로였지만, 비자림로는 통행로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삼나무를 자르는 순간, 마음을 준 장소는 사라지고, 지나가는 통행로만 남았다. 자연만 훼손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훼손됐다.

길을 통행로로만 본다면 삼나무 좀 잘랐다고 해서 난리를 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온통 길로 둘러싸여 있다. 그 길을 통행의 편의만을 최우선에 두고 만든다면, 우리가 사는 공간은 삭막한 공간이 될 것이다. 멸종위기종이 살지 않아도, 마음을 준 장소를 쉽게 없애서는 안된다.

최성용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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