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폐허가 산타할아버지의 고향으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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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폐허가 산타할아버지의 고향으로 탈바꿈했다

입력
2020.08.19 09:00
수정
2020.09.2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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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1800만통 넘는 편지가 도착 한 핀란드 로바니에미
민ㆍ관이 산타클로스 특화해 유명 관광지로 만들어


핀란드 로바니에미의 방문자 센터에서 현지인이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동학 작가


1939년 6,000여 명이 살던 핀란드의 조용한 도시 로바니에미에 침략자들이 들이닥쳤다. 현대 전쟁사에 남을 겨울 전쟁을 치룬 핀란드는 이후 러시아의 추가 침입을 막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동맹을 맺는다. 독일은 로바니에미에 기지를 만들고, 마을 곳곳에 건물을 건설했으며 인구를 두배 가까이 늘렸다. 그러나 1944년 10월 독일을 비롯한 추축국 세력이 러시아의 압력에 밀려 후퇴해야 할 상황이 되자 도시를 파괴하고 떠난다. 이 때 로바니에미는 90% 이상이 불에 타 버렸고, 도시는 사실상 사라져 버렸다.


로바니에미 재건 프로젝트를 맡은 핀란드의 국민 건축가 알바르 알토(왼쪽). 오른쪽은 알토가 순록의 머리 모양을 본 떠 그린 설계도. 인터넷 캡처


이후 핀란드 건축가협회는 로바니에미의 도시 재건 프로젝트를 건축가 알바르 알토(Alvar Aalto)에게 맡겼다. 알토는 핀란드의 국민 건축가로 알려진 인물로, 수력 발전소를 짓기 전부터 자연 환경과 순록 등 동물, 식물 등에 대한 영향이 없는지 사전 점검하는 등 건축과 환경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를 늘 고민했다.

알토는 로바니에미의 재건 계획을 짜면서 기존 지형에 머리 윤곽선을 그리고 주요 도로와 철로 등이 교차하도록 했고, 축구장 자리를 순록의 눈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오늘 날 순록 뿔의 얼굴 모습을 갖춘 도시는 그렇게 만들어 졌다.


로바니에미는 왜 산타의 고향이 됐나

산타클로스의 고향으로 알려진 로바니에미는 해마다 64만 명 이상의 외지인이 찾고 있다. 이는 도시에 살고 있는 6만3,000명의 10배가 넘는 숫자다. 그 동안 주로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인 등 유럽인들이 많이 찾았는데 최근 중국인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두 가지다. 오로라를 볼 수 있고, 산타클로스마을에서 산타할아버지를 직접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인은 예로부터 빨간색이 복을 상징한다고 믿어 왔는데 산타클로스가 빨간 옷을 입으니 더 좋아한다고 한다. 게다가 자본주의 문화를 접하고 익숙해지면서 갈수록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중국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시진핑 국가 주석이 산타마을을 방문한 것도 중국인들 사이에 이곳이 더 많이 알려지게 했다. 이를 반영하듯 핀란드와 중국 두 나라 사이에 베이징과 로바니에미를 직접 연결하는 직항 항공 노선을 새로 만드는 것도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로바니에미 시는 베이징 뿐 아니라 터키와의 직항 노선을 만드는 방안도 추진하면서 관광업의 확대에 도시가 할 역할을 적극적으로 찾아 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현지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 산타오피스에 들어서는 복도에 걸려있다.(왼쪽) 산타빌리지의 기념품 매장에서 중국인들의 쇼핑을 즐기고 있다. 이동학 작가


사람들의 발길이 늘면 도시는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로바니에미가 속한 라플란드주는 인구가 12만 명으로 한국으로 치면 작은 지방 도시 수준이지만, 숙박 공간만 10만실이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해마다 로바니에미에서 41만명이 머물고(2017년 기준), 주도인 로바니에미를 중심으로 라플란드주의 관광업 관련 고용 인원은 7,000명이 넘는다. 일자리 유지뿐만 아니라 이 도시의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관광 분야 관련 창업에 나서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시는 이런 움직임을 행정·재정적으로 적극 지원한다.

그렇다면 로바니에미 시는 어떻게 산타클로스의 고향이 되었을까. 정말로 산타클로스는 이곳에서 태어난 것일까. 애초에 핀란드 역사책이나 고서에도 핀란드가 산타클로스의 고향이라는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1927년 라디오의 한 인기진행자가 당시 소련과 국경이 맞닿아 있던 꼬르바뚠뚜리(Korvatunturi)라는 곳을 산타클로스의 고향이라고 말한 것을 계기로 사람들은 차츰 ‘라플란드=산타클로스 고향’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후 1950년 6월 미국의 사회운동가이자 여성정치가인 안나 엘리너 루즈벨트가 이곳에 오고 싶다는 뜻을 밝히면서 중요한 전환점이 찾아 온다. 그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조카이자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이다. 그런 유명 인사가 오겠다고 하자 지역 사회는 들뜨기 시작했고, 깜짝 방문을 위한 리셉션 행사 진행을 위해 ‘북극권 오두막’(Arctic Circle Cabin)이라는 이름의 작은 건물을 2주 만에 만들었다. 내부에 들어갈 의자는 도시 재건에 나선 알토가 디자인했다. 훗날 이곳은 북극권 방문을 상징하는 산타마을의 토대가 된다.


귀한 손님을 맞기 위해 특별한 오두막을 짓다


프랭클린 루즈밸트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사회운동가인 안나 엘리너 루즈벨트(왼쪽). 로바니에미 상공으로 북위 66도 선이 지나는 모습. 이 선을 넘으면 북극권으로 분류된다. 인터넷 캡처


지역 사회가 흥분한 이유는 또 있다. 당시 도시재건을 위해 투입된 자금은 유니세프의 전신인 국제연합국제부흥사무국(UNRRA·United Nations Relief and Rehabilitation Administration)에서 나왔고, 로바니에미는 UNRRA가 제공한 원조 자금을 전 세계 처음으로 받는 지역이 됐다. 루즈벨트는 당시 유엔 주재 미국대표를 지내고 있었고, UNRRA의 자금 투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핀란드인들이 잘 알고 있었다. 참으로 고마운 손님이 직접 찾아온다니 지역 사회는 최선을 다해 맞으려 했다.

루즈벨트는 로바니에미시가 자신의 방문을 위해 지은 오두막에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기념 편지를 썼고, 이 편지가 북극권에서 외부로 보낸 최초의 편지로 기록되면서 큰 화제가 됐다. 이후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가족이나 지인에게 기념 편지를 보내는 것이 ‘필수 코스’가 됐다. 또 소련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총리와 이스라엘의 골다메이어 총리 등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방문하면서 세계적 관광 명소로 이름을 날린다.

로바니에미는 콩코드 여객기를 통해 성장의 기회를 또 한 번 얻는다. 1984년 콩코드 여객기가 북극권 여행을 홍보하며 여행객들을 태우고 오자, 로바니에미의 지역 기업가들은 ‘사업이 되겠다’는 촉을 발동시켜 오두막이 있던 곳을 산타마을로 키웠다.

이후 북극권에서 전 세계 어디로든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상점 및 산타 우체국 방문, 산타클로스와 사진 찍기, 순록 만나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세계인의 눈길이 쏠렸다. 특히 전 세계 어린이들이 보내는 편지가 늘고, 산타할아버지를 보겠다는 방문객도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 어린이가 보낸 편지가 1,800만통이 넘는다고


중국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핀란드의 똔뚜들이 중국인 관광객을 안내하고 있다(왼쪽). 북위 66도를 표시해 둔 산타빌리지 기념품 가게 내부 모습. 이동학 작가


신기하게도 어린이들의 편지는 전 세계 어디서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께’라고만 쓰면 따로 주소가 없어도 이곳으로 온다. 이는 국제우편협약 때문에 가능한데, 1985년부터 지금까지 199개 나라의 어린이들이 1,800만 통 이상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1년에 많게는 70만 통, 특히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하루에 무려 3만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그렇게 도착한 편지들은 출발한 나라 별로 나뉘고 ‘똔뚜’라 불리는 직원들이 편지를 읽는다. 편지 내용 중 가장 많은 질문은 ‘전 세계의 어린이가 정말 많은데, 어떻게 선물을 다 갖다 주냐’는 질문과 ‘선물을 달라’는 요구가 가장 많다고 한다. 그리고 똔뚜들은 답장을 써준다. 물론 모든 편지에 답장이 가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 한계가 있어 대략 10통 중 1통 정도가 답장 대상이 된다.

요즘 중국 출신의 똔뚜들도 여럿 일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들은 중국 어린이들에게 답장 쓰는 일을 맡는다고 한다. 그 중 한 사람은 편지가 많이 오는 나라일수록 답장을 보내는 수가 적어진다고 귀띔했다. 이유는 마케팅 차원이라고. 편지가 많이 오는 곳은 답장을 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편지가 오고 있는 반면 편지가 적게 오는 나라는 답장을 열심히 보내야 현지에서 산타클로스로부터 직접 편지가 왔다는 소문이 퍼지며 산타마을이 알려진다는 것이었다. 산타마을은 내친김에 중국 쓰촨성의 청두에 ‘분점’을 내기로 했고, 2016년 5월 로마니에미의 산타마을을 그대로 본떠 조성했다고 한다.

기독교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산타클로스를 모델로 하는 산타마을이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 땅에 세워진 것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산타클로스의 얘기가 중국인들에게 그만큼 새롭고 매력적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쾌한 음악, 이국적 환경과 캐릭터, 중국인이 좋아하는 빨간색 유니폼 등과 어울려 어린이는 물론 성인들도 호응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교적 이유보다는 하나의 새로운 문화 자체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화천 산천어 축제가 왜 거기서 나와


북극권이 시작되는 기준선이라는 표시가 바닥에 돼 있다.(왼쪽) 도시 방문객들의 필수 코스 산타오피스 전경. 이동학 작가


그런데 한국 역시 이런 움직임이 있다. 강원 화천군에 산타우체국이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화천군은 세계 겨울도시시장회의의 회원 도시로 역시 이 회의의 멤버인 로바니에미와 연을 맺고 있다고 한다.

겨울의 대표 캐릭터인 산타클로스와 겨울 축제로 해외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산천어 축제를 연결해 새로운 관광 자원으로서 시너지를 내기 위해 2016년 산천어축제에서 처음으로 산타우체국을 임시로 운영하여 600통 넘는 편지를 받았고, 정식 가동 된 2017년엔 6,500통으로 10배 이상으로 뛰었다. 이후 2018년, 7,455통, 2019년 9,016통의 편지가 접수됐다.

이는 핀란드 체신청과 독점 계약을 통해 운영권을 얻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쓴 편지는 먼저 화천의 산타우체국으로 모이고, 답장을 로바니에미의 산타 명의로 직접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내에 산타 우체국이 생기자 호기심이 생긴 아이들과 부모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2017년 정식 개관을 했던 해에는 26만여 명이 방문하며 산타의 인기를 실감케 했고, 이후에도 2018년 14만여 명, 2019년 17만여 명이 꾸준히 찾고 있다. 이는 산타 우체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굿즈(갖가지 기념품)의 수익으로도 연결되는데, 2019년 1,700여만 원이 넘는 수익금이 생겼다. 거기에 쿠키만들기, 나무공예, 종이공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 상권에 플러스 효과를 주고 있다고 한다.

로바니에미시는 자연의 선물인 오로라와, 사람들의 아이디어로 만든 산타마을을 적극 홍보하고 지원하며 인구 6만의 도시를 넘어 세계에서의 스토리 시티로 떠오르고 있다.

산타클로스는 저 멀리 서양의 어디쯤에 있겠거니, 아예 가상의 인물이란 생각을 했던 많은 이들의 상상을 현실 속에 만들어버렸다. 상상 속의 영역에 존재했던 것이 이렇게 실체를 갖게 되니,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 지고 이는 곧 도시의 경쟁력 향상으로 연결 된 것이다. 핀란드 북쪽의 조그만 도시지만, 이제 이 경쟁력은 중국과 한국에서 이른바 브랜드를 공유하는 분점까지 내면서 그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산타가 인사하자 환상은 현실이 돼 버렸다

산타의 도시로 잘 알려진 핀란드 로바니에미에 루돌프를 본떠 만든 조각이 전시돼 있다. 이동학 작가


드디어 긴장되는 순간, 산타를 만나기 위해 마법의 오솔길 같은 곳을 지나 산타오피스의 2층 계단을 올랐다. 산타를 만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이미 두 달 전에 지났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온 것이다.

똔뚜들에게 듣기로 산타클로스는 8개 서로 다른 언어로 인사 할 줄 안다고 했다. 산타클로스가 있는 공간으로 들어선 내게도 “안녕하세요, 또 오세요”라며 한국어로 말을 건넸다. 아마도 이곳을 찾는 한국인이 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또한 한쪽 벽에 ‘크리스마스의 소망’, ‘고요한 밤’, ‘성탄절의 기적’이라고 쓰인 모형 책자가 책꽂이에 꽂혀 있어 너무 반가웠다.

산타클로스와 만남은 매우 설렜는데 막상 만나고 나니 별 느낌이 들지 않았다. 산타라는 환상 속 존재를 눈으로 직접 봐 버렸다는 허탈감이 다가오는 느낌마저 들었다.

오히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방문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기 위해 웃어야만 하는 산타클로스의 현실이 좀 고단하게 느껴졌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보지 못한 질문도 있다. 산타클로스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임기가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여러 사람이 번갈아가며 배역을 소화하는 것인지 말이다. 정규직? 비정규직? 아마도 이 질문에 대답을 들었다면 그나마 남아있던 동심마저 파괴되었을지도.

코로나19로 관광업이 무너지고, 다른 나라와 교류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앞으로의 세상이 2019년 이전처럼 자유스러움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아직도 확신할 수 없다. 산타클로스가 정말 있다면, 인류에게 넓은 이해와 아량, 그리고 오늘만 보며 사는게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살 수 있는 혜안을 선물 받고 싶다. 단 착한 사람에게만 선물을 주시는 분이니,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착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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