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에 전격 합의하면서 중동의 지정학적 구도가 격변의 계기를 맞고 있다. 이해관계에 따른 각국의 ‘이합집산’ 조짐이 뚜렷해진 것인데, 고립 가능성이 커진 이란의 반발이 가장 거세다. 이란과도 이스라엘과도 적대 관계인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선택도 주목된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연설에서 “UAE가 거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며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약은 팔레스타인 국민과 무슬림 전체에 대한 배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며 이슬람권의 금기를 깬 UAE를 ‘종교적 배신자’로 규정한 것이다. ‘시아파 맹주’ 이란은 팔레스타인의 대(對) 이스라엘 무장투쟁을 앞장서서 지원하고 있다.
특히 이란은 이번 협약을 통해 중동 내 ‘반(反)이스라엘 공동전선’이 해체되고 새로운 대이란 전선이 구축될까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다. 중동 친미 진영이 줄줄이 이스라엘과 수교에 나서면 이란의 고립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로하니 대통령은 “UAE는 이스라엘의 중동 교두보를 만들었다”면서 “미국이 보증하는 사악한 행태”라고 맹비난했다.
사우디ㆍ이란과 이슬람권 지도국 자리를 놓고 다투는 터키도 가세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전날 “UAE와 외교관계를 중단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국교 단절 카드까지 거론했다. 이란ㆍ터키와 가깝고 팔레스타인에 재정 지원을 가장 많이 하는 카타르 역시 왕실 소유 알자지라방송을 통해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는 배신”이라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전달했다.
겉으로 비치기는 반발 기류가 우세하지만 중동 역학구도를 둘러싼 재편 움직임은 계속될 전망이다. UAE-이스라엘 평화협약을 성사시킨 미국이 열의를 보이고 있어서다. 더구나 중동 협상의 총책임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자 유대계인 행정부 실세 제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이다. 그는 13일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더 많은 관계 정상화를 이끌어내겠다”며 사우디와 바레인, 오만 등을 추가 대상으로 지목했다. 바레인과 오만은 이미 평화협약에 대한 공개 지지를 표명했다.
최대 관건은 사우디의 동참 여부다. 그간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온 사우디는 아무런 논평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역내 위상을 지키려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지지한다”는 왕정 공식 입장을 쉽게 철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과 경제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국왕으로 즉위하면 사우디도 UAE의 길을 택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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