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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 따지고 코로나까지... 대학가 '반수' 열풍

입력
2020.08.19 10: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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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보다 취업과 서열만 강조하는 캠퍼스
낭만과 여유는 사라지고 학점 따는 기계로
"대학은 왜 갔고 왜 존재할까"? 답없는 성찰만

편집자주

이슈와 화젯거리를 이야기할 때 기성세대는 자주 핏대를 세웁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워낙 크다 보니 밀레니얼 세대는 의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견 표출의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한국일보 인턴기자들이 기성세대와는 다른 밀레니얼의 시각을 담아 한국 사회를 ‘언박싱’ 해보겠습니다. 밀레니얼의 솔직한 체감지수를 느껴 보세요.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가 시행된 지난 6월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지만, 올해 수능은 예정대로 12월 3일 시행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가 시행된 지난 6월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지만, 올해 수능은 예정대로 12월 3일 시행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교육부는 지난 4일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예정대로 치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는 병원에서, 자가격리자는 별도 장소에서 시험을 치른다고 발표했습니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어 바이러스의 공포가 상당하지만, 수능을 취소하기는커녕 수험생 모두가 수능만큼은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국가적 선언이었던 셈이죠.

수능은 대한민국에서 국가적 행사에 버금갈 정도로 특별한 날로 취급받습니다. 학생들은 오직 이날을 위해 청춘을 바치고, 이날 이전과 이후의 삶은 극명하게 달라집니다. 그러나 수능 성적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은 결국 명문대 입학이라는 현실적 문제와 연결됩니다. 대학교육이 의무교육도 아닌데, 도대체 우리나라 국민들은 왜 대학 입시에 이렇게 목을 매는 걸까요. 대학에 들어가야 행복해지고, 명문대에 입학해야 성공한 삶이 되는 걸까요. 대학이 점점 세속적 신분상승 수단이 되면서, 대학의 교육적 기능과 역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학과 학벌에 대한 현실적 이야기들을 밀레니얼들이 언박싱 해봅니다.


대학 입시 전쟁, 그 끝은 어디일까

숭례문 너굴맨(너굴)=교육부가 코로나19로 자가격리가 필요한 사람은 물론이고 확진자도 수능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네. 자가격리 대상자는 별도 시험장에서, 확진자는 병원에서 시험을 치르게 한다는 것 같아.

연어는 차갑게(연어)=전염병도 수능은 막지 못한 거네. 영국은 우리나라 수능과 비슷한 시험인 A레벨(A-Level) 시험을 취소했는데 말이야.

기타 치는 프레디머큐리(기프)=그래도 애로가 있는 학생들을 배려한 건 잘한 것 같아. 나는 재수를 했는데, 1년 동안 정말 지옥 같았거든. 학원에선 모의고사 성적에 따라 반도 나누고 층도 따로 쓰게 했어. 거의 신분을 가르는 시험이었지. 다들 눈이 높아서 ‘적어도 이런 대학에는 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 퍼져 있었어. 그 때를 생각하면 정말 끔찍해.

부어 먹는 깡소주(부어깡)=내가 다닌 학원에선 모의고사 1등부터 등수를 적은 페이퍼를 복도에 붙여놨어. 서로 말은 안 하지만 점수가 떨어지면 갑자기 말도 안 하는 친구도 있었어. 점수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거지.

매우 매운 마라탕(매마)=나는 외고를 다녔는데, 선생님들부터가 경쟁을 부추겼어. 서울 주요대학에 합격해도 최상위권 대학이 아니면 잘했다는 평가를 못 받으니까, 대부분의 학생들이 성적에 만족하지 못했어. 최상위권 성적이 아니면 선생님들이 아예 상담도 안 해줬어.

연어=최상위권 대학에 진학시키려고 학생들에게 반수 또는 재수를 유도하는 학교도 많아. 최상위권에 진학한 학생 수에 따라 교사들에게 보너스가 지급되거든.

너굴=예체능 계열 입시도 살얼음판이었어. 나는 체육대학 입시를 위해 운동을 했는데,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 수능 점수도 나와야 했고, 실기시험을 위해 몸도 만들어야 했어. 아무리 운동을 잘해도 수능 점수가 나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었거든.

부어깡=어린 나이에 이렇게까지 스트레스 받으며 공부한다는 게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어. 실수 한 번으로 몇 년간 공부해온 시간이 모두 날아갈 수도 있잖아.

연어=맞아.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대학 입시에 매달릴까. 성적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 너무 안타까워. 사회에 나와 보면 성적이나 입시가 별거 아닌데 말이야.

분노 조절 잘해(분조잘)=지난해 비정상적인 입시 경쟁을 꼬집은 드라마 ‘SKY캐슬’이 인기를 끌었잖아. 그런데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한 것 같아.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입시를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찾는 결말은 인상적이지 않았어. 좋은 대학 가려고 서로를 물어뜯는 장면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잖아.

부어깡=적성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데, 수험생 입장에선 쉽게 와닿지 않아.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그들에게는 명문대 입학이 지상목표가 될 수도 있는 거지.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이 참 안타까운 환경에 놓여 있는 것 같아.

지난 1월 1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고교 건물 벽에 '2019학년도 주요대학 합격현황' 현수막이 걸려 있다. 명문대 진학을 홍보하는 현수막이 학벌주의를 부추긴다는 우려가 높지만, 이런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배우한 기자

지난 1월 1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고교 건물 벽에 '2019학년도 주요대학 합격현황' 현수막이 걸려 있다. 명문대 진학을 홍보하는 현수막이 학벌주의를 부추긴다는 우려가 높지만, 이런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배우한 기자


배움보다 취업이 먼저인 슬픈 대학 생활

너굴=대학에 가기 전엔 대학에 대한 로망이 조금은 있었는데, 막상 입학 후에는 그냥 톱니바퀴처럼 학점 이수만 한 것 같아. 분위기 자체가 다소 삭막했어. 올해 신입생들은 코로나19 때문에 학교를 아예 못 나가서 대학에 대한 애정이 더욱 식었어.

기프=올해는 입시결과에 만족하지 못해서 '반수' 하는 친구들이 엄청 늘었어. 재수생이 유리하다는 전망이 나오니까 과감하게 반수를 택하는 것 같아. 어차피 떠날 대학이라고 생각한 탓인지 대학 동기들이랑 잘 어울리지 않은 친구들도 있고.

부어깡=우리 학과에도 그런 친구들이 있었어. 어느 순간 안 보인다 싶으면 '반수'를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다가 다른 대학으로 갑자기 가버리고.

매마=맞아. 학교가 마음에 안 든다고, 또는 재수하는 게 부끄럽다고 잠적해 버린 친구들도 있었거든.

분조잘=나는 수능 점수가 진짜 잘 나와서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학교'에 진학했어. 그런데 다들 나보다 똑똑한 것 같고, 생활방식이 전혀 다른 친구들이 많아서 힘들었어. 그래도 부모님 기대가 커서 꿋꿋히 버텼지.

기프=재수학원 다닐 때 어울렸던 친구들이 모두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학에 진학했어. 나도 목표로 삼았던 학교에 진학했지. 그런데 입학 이후가 문제였어. 삶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고, 방향도 정하지 못해서 방황했지. 친구들 대부분은 지금 고시 준비를 한다는데, 진정 원해서 공부하고 있는지는 의문이야.

부어깡=이게 대학 자체의 문제인지, 대학에 들어간 우리의 문제인지 헛갈려. 대학에서 배운 걸 나중에 어떻게 써먹을지 생각하다 보면 막막하다는 친구들이 많았어. 배움은 포기한 채 학점 관리를 위해 수업을 골라 듣는 모습에 자책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연어=실제로 입학하자마자 졸업 이후를 위한 학점 관리에만 몰두하고 있잖아. 대학이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취업사관학교가 된 느낌이야. 순수학문 학과를 통폐합하고 실용학문 위주로 재편하는 대학이 늘고 있잖아. 이제 대학을 고등교육기관이라고 부르는 건 맞지 않는 것 같아.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어울리지도 않는 것 같고.

분조잘=아예 대학이랑 기업이 협력해 취업을 위한 학과도 계속 생겨나고 있잖아. 우리 학교에는 최근에 기업과 연계한 반도체 관련 학과가 신설됐는데, 졸업하면 쉽게 그 기업으로 취업할 수 있대. 그래서 일부 학생들은 특혜라고 반발하기도 했지.

기프=미국의 유명 코미디언인 코난 오브라이언은 2011년 다트머스대 졸업식 축사에서 "자녀가 순수예술이나 철학을 전공했다면 걱정해도 좋다. 그들이 직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고대 그리스다"는 말로 이런 현실을 풍자했어.

매마=그래서 대학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도 바뀌고 있는 것 같아. 이제는 얼마나 양질의 회사에 얼마나 많은 졸업생을 보내느냐가 중요해졌잖아. 대학 입장에선 학생들 니즈를 판단하고, 그에 맞게 대응하는 것 같기도 하고.

너굴=‘순수학문을 육성해라’ ‘배움의 공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비판이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학생들이 현실적으로 취업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으니까.

분조잘=대학이 체질을 바꿀 수밖에 없는 사정은 이해하는데, 급속히 '취업사관학교'처럼 변하고 있는 점은 그래도 아쉬워. 배우려고 대학 간 게 아니라,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너무 강하게 퍼져 있으니까. '이걸 제대로 배워서 이렇게 진로를 결정하겠다'는 정상적인 구조가 사라지고 있는 거지.

서울의 주요 대학 로고.

서울의 주요 대학 로고.


대학 줄세우기, 가능하면 앞줄에서 보자

연어=명문대 졸업장이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한 도구가 돼버린 건 부인하기 어렵잖아. 그래서 대학 서열화도 심해졌고. 고등학생들이 “SKY 서성한 중경외시” 말하고 다닐 정도니까.

매마=나는 중국대학을 졸업했는데, 중국도 비슷한 점이 있어. 다만 대학별로 일률적으로 순위를 매기는 게 아니라, 학과 단위로 평가한다는 거야. 우리나라는 카이스트, 포항공대 이외에는 학과를 기준으로 연상되는 대학이 없어. 개성도 없고 지향점도 막연하고 비슷하다 보니, 모든 대학이 '그 밥에 그 나물' 같아.

부어깡=맞아. 갈수록 대학을 서열로 구분하는 분위기가 굳어지고 있잖아. 서열이 인간의 등급을 결정하니까, 입시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거고. 입시 결과를 쉽게 못 받아들이니까, ‘한번 더 해보자’는 수능 중독이 생기고, 급기야 대리 시험까지 적발되고.

매마=스포츠 경기에선 참가에 의의를 두는 경우도 많은데, 대학 입시에선 여전히 좋은 성적이 아니면 박수 받기가 힘들어. 교사들도, 학부모들도 모두 경쟁을 부추기다 보니, 학생들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쉽게 인정받기 어려운 것 같아.

기프=기업도 양질의 인재를 고를 때 정량적 스펙에 주로 의존하잖아. 스펙을 쌓기 위해선 결국 좋은 대학에 가야 할 거고. 실제로 취업 준비하는 친구들이 회의감을 느낀다고 말할 때가 있어. 서열상 어느 대학 밑이면 서류에서 탈락시킨다는 거야. 정부나 기업에서 말로는 학벌 철폐했다고 하는데, 여전히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이 있는 것 같아.

2017년 12월 서울의 한 종합대학 행정관 앞에서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농성하는 모습. 연합뉴스

2017년 12월 서울의 한 종합대학 행정관 앞에서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농성하는 모습. 연합뉴스


우리가 바라는 대학의 모습

분조잘=대학 가면 잔디밭에 누워서 낮잠도 자고, 자체 휴강도 하면서 자유를 즐길 줄 알았어. 그런데 생각과 달리 중앙광장은 텅 비어 있었고 도서관만 꽉 차있더라고. 공무원이나 회계사 시험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먹고 대학생’은 찾아볼 수가 없어.

너굴=동아리도 마찬가지야. 고학년이 동아리 활동하면 한심하게 바라봐. ‘취업 준비는 안 하느냐’는 거지. 취업에 도움되는 학회 활동을 해야 한다는 사람도 많아졌어.

매마=어른들은 대학생 때 공부보다 낭만을 즐겼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잖아. 예전엔 취업 걱정이 없어서 낭만적이었을 거야. 대학이 진정한 교육기관 역할을 했던 적이 있었을지 궁금해.

너굴=고등학교 때 대학마다 어떤 학과가 특성화돼 있는지 자세히 알려줬으면 좋겠어. 지금은 대학 서열만 강조하고 있잖아. 우리는 왜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근본적인 의문이 들어.

매마=주변에서 일단 대학에 가라고 하잖아. 그런데 확실한 목표 없이 진학한 사람들이 고시 공부하고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걸 보면 '닥치고 대학 가라'는 말이 과연 옳은 건지 모르겠어.

분조잘=맞아.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만큼 벌 수 있다면 굳이 발버둥 치지 않을 것 같아. ’고졸’로 취업한 사람도 많지만 다시 대학에 돌아오는 사람도 꽤 있어. 직장생활 하면서 차별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최종학력에 따른 임금차별도 있고, 승진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고.

부어깡=그럼 대학은 어떤 방향으로 학생을 교육해야 할까.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이 내 이름 모르면 섭섭하고 그러잖아. 대학에선 오히려 ‘교수가 내 이름 알면 불안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어. 끈끈한 사제관계는 없고 학점 따러 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취업을 위한 중간계단 정도로만 보는 거지.

너굴=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 ‘물포자(물리를 포기한 사람)’처럼 중간에 포기하게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미래를 제시해주는 교육 그리고 학생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으로 역할을 다하면 좋겠어. 그런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정리=이주현 인턴기자

참여=강보인, 김예슬, 이태웅, 이혜인, 임수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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