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뮬란’은 할리우드 영화다. 제작비가 2억달러가량인 블록버스터다. 1998년에 나온 디즈니의 동명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옮겼다. 인기 애니메이션 ‘알라딘’(1992)과 ‘라이온 킹’(1994) 등을 실사로 만들어 개봉하고 있는 디즈니의 시장 전략에 따라 만들어졌다.
할리우드 영화라고 하지만 내용과 출연진은 중국 영화나 다름없다.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아버지 대신 전장에 나가 국가와 가족을 구하는 여자 영웅의 이야기를 그렸다. 국내 배우 송승헌과 교제로 유명해진 중국계 미국 배우 류이페이(유역비)가 주인공 뮬란을 연기했고, 중국 무술영화의 대가 리롄제(이연걸), 전쯔단(견자단), 1990년대 중국 영화의 얼굴이었던 궁리(공리) 등이 출연했다. 세계 2위 영화시장 중국을 노골적으로 겨냥한 기획이다.
‘뮬란’은 3월 27일 개봉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직격탄을 맞았다. ‘뮬란’은 미국 극장이 언제 영업을 개시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7월 24일과 8월 21일로 개봉일을 바꿔가며 여름 시장을 지속적으로 노렸다. 중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 국면에 접어든 걸 감안한 개봉 전략이었다.
지난 4일 디즈니는 ‘뮬란’을 9월 4일 자사 동영상 스트리밍서비스(OTT)인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극장 개봉은 별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한국 등에선 9월에 극장에서 소개된다. 중국에서도 9월 극장 개봉이 확실하다.
디즈니는 ‘뮬란’의 중국 흥행을 기대하고 있다. 친중 배우 류이페이에 대한 높은 호감도 덕을 보려 한다. 류이페이는 지난해 8월 홍콩 반중 시위가 한창일 때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온라인에 올린 이미지를 공유해 논란이 됐다. 이미지에는 시위 현장을 취재하다 시위대에게 얻어맞는 중국 기자의 모습과 “나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 당신들은 지금 나를 때릴 수는 있다. 홍콩에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라는 글이 담겼다. 류이페이의 행위는 중국에서는 큰 호응을 얻었지만 홍콩 등에선 반발을 불렀다. ‘뮬란’을 보지 말자는 집단 움직임까지 온라인에 등장했다. 최근 홍콩 민주화 지지자들은 홍콩보안법으로 체포된 청년 활동가 아그네스 초우를 “진짜 뮬란”이라고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류이페이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
홍콩 민주화 지지자들에게 비판받고 있기에 ‘뮬란’은 중국 당국의 지원 속에 흥행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미국 내 반응은 싸늘하다. 디즈니 플러스 가입자는 별도로 29.99달러를 내야 ‘뮬란’을 볼 수 있는데,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가 최근 실시한 온라인 설문 조사에 따르면 가입자 82%가 ‘뮬란’을 안 볼 거라고 응답했다. 코로나19 등으로 반중 정서가 강해진 상황에서 추가로 돈을 내면서까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보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뮬란’은 할리우드 영화지만 정작 미국에서 극장 개봉도 못하고 중국 영화 대우까지 받고 있는 셈이다.혼돈의 시대다. 양대 강대국 미국과 중국이 격돌하면서 세계 영상산업이 어떤 변화를 맞을지 알 수 없다. 코로나19로 극장 상영이 힘들어지면서 영상산업 내 ‘게임의 법칙’이 바뀌고 있기도 하다. 할리우드 영화인지 중국 영화인지 모를 지경인데다 온라인과 극장에서 동시에 공개되는 ‘뮬란’의 처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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