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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팀의 진정한 팬이란?

입력
2020.08.16 22: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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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로 인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이 와중에도 프로야구 경기를 매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마치 장맛비 속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햇살처럼 나에게는 큰 기쁨이다. 비록 경기장을 자주 찾을 정도의 부지런한 열성팬은 아니지만 야구경기에 대한 열정만은 빠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 혼자 소리를 지른 적이 다반사이다.

나는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래 그리고 다른 기업이 인수한 이후로도 현재까지 한 팀만을 응원하고 있으며 처음 우승했던 당시의 벅찬 감격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물론 마지막 우승을 한 이후 십여 년 동안의 암흑기에는 아예 프로야구 자체를 외면했던 적이 있을지언정 결코 응원팀을 바꾼 적은 없었다. 이런 나의 외바라기 응원은 출생지 팀이라는 지연(地緣) 외에도 초대 감독이 나의 고등학교 선배라는 학연(學緣)까지 작용해서 한 팀만을 고집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준 셈이다.

한 팀만을 오랫동안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포츠를 즐기는 수준의 팬심 차원에서는 훈훈한 미담거리가 될 수 있지만 승패에 연연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인간의 합리성(rationality)과는 무관한 집착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모든 행위를 4가지로 분류했는데 이런 정서적인 행동은 합리성차원에서는 일탈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내가 응원하는 팀의 감독과 선수를 심하게 비방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면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이야기한 동일시(identification)라는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있으며 자신의 억압된 감정을 응원팀에 투사(projection)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네이버(Naver)가 최근 스포츠 뉴스 댓글에 대하여 잠정적인 폐지를 결정했다고 한다. LG트윈스 모 선수의 아내가 욕설과 험담을 담은 DM(direct mail)을 참기가 힘들었다고 하는데 가족에 대한 비난이 넘어서는 안 될 수준에 이르게 돼서 고소하기도 했다. 또한 젊은 여자 배구선수가 악성 댓글에 상처를 받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스포츠에 대한 과몰입이 선수를 비방하고 온갖 저주를 퍼붓는 데 그치지 않았고 결국 자살에 이르게 했다. 그런 심리의 근저에는 부정확한 정보와 얄팍한 지식에 기인해서 섣부르고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든 인지적 왜곡(cognitive distortion)이 자리 잡고 있다.

더닝-크루거(Dunning-Kruger)효과는 무능력한 사람이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스스로의 오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전문가적인 지식이 있다고 믿는 아마추어 팬들이 프로선수에게 지나친 훈수를 두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스포츠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라는 관점에서 아쉬움과 기대를 모아 비판하거나 질책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팬이 감독이나 선수를 대신할 수 없다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 또한 잘 인식해야 한다.

스포츠(sports)란 단어는 ‘sport’ 즉 ‘즐겁게 하다’ 에서 파생이 되었다고 한다. 스포츠팀의 진정한 팬이 된다는 것은 경기의 승패에 지나친 감정이입을 하기 보다는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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