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표현에 검열 안 된다는 이유로?
2012년 방심위ㆍ만화가협회 '자율규제' 협약
자율규제위, 플랫폼 업체에 시정권고만 가능
웹툰 작가 기안84(35·본명 김희민)의 작품 ‘복학왕’의 혐오 논란이 반복되면서, 사태를 키운 웹툰 업계와 ‘자율규제’를 허용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 방식이 도마에 올랐다. 수 차례 논란에도 불구하고 연재 플랫폼인 네이버웹툰이 스타 작가의 작품 검수에 소극적인데다, 현재 웹툰 규제와 재발 방지 대책은 업계에서 자체적으로 수립해 제재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1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기안84의 최근 연재물에 대한 심의 민원은 어제까지 총 9건이 접수된 상태”라며 “웹툰 심의를 담당하는 웹툰자율규제위원회에 자율규제 요청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11일 연재된 복학왕 304회에는 20대 여성 주인공 ‘봉지은’이 기업 정직원으로 전환된 내용이 담겼는데, 일부 독자들이 이 과정에서 묘사된 ‘조개 부수는 장면’이 40대 남성 대기업 팀장에 성상납을 암시한다고 지적하며 연재 중단과 작가의 방송출연 중단을 요청하는 등 논란에 휩싸였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복학왕'을 명시하진 않았지만 이 웹툰에 대한 연재 중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이날 오후 1시 현재 9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혐오논란과 성인지감수성 부족은 사실 복학왕의 문제만은 아니다. 앞서 2018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인기 웹툰 36편의 20회 연재분을 모니터링 실시한 결과, 성차별적 내용이 45건으로 성평등적 내용 9건보다 5배나 많았다. 성차별적 내용은 대부분의 웹툰에서 여성을 먹는 음식에 비유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선정적으로 표현하는 등 성적대상화와 외모지상주의, 성희롱ㆍ성폭력 조장 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받았다.
여기서도 복학왕은 성폭력 장면 사례로 소개됐다. 수차례 논란에도 기안84를 관대하게 보는 네이버 웹툰 플랫폼과 편집자 역량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웹툰 플랫폼은 통상 작품 연재 전 편집자가 모든 작품에 대해 검수를 거친다.
문제는 현재 웹툰에 대한 강제 규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2012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한국만화가협회는 예술적 표현물에 대한 검열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자율규제 업무협약을 맺은 바 있다. 이후 웹툰은 영화, 광고 등과 달리, 한국만화가협회와 주요 플랫폼이 협력해 출범한 단체인 웹툰자율규제위원회의 자율규제를 받게 됐다.
방심위 관계자는 “소수자 비하나 청소년 유해한 내용의 민원이 제기되면 방심위가 수용여부를 판단 접수 내용을 전달하고 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한다"며 "자율규제위원회가 해당 내용을 심의해 청소년 접근제한 조치, 성인인증 권고, 연령 등급조정, 내용수정 등 결정이 되면 해당 플랫폼이 조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심의 결과에 대해 해당 업체에 시정 권고는 가능하지만, 이행 여부는 업체 판단에 맡기는 구조다.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웹툰자율심의위원회 관계자는 “시정 요청을 받은 업체 대부분이 권고사항을 준수하고 있다”고 반박했지만, 웹툰자율규제위원회의 제재를 받기로 한 웹툰 플랫폼은 네이버웹툰, 카카오웹툰 등 10개에 불과하다. 관계자는 “현재 심의 방식은 방심위의 심의 요청 안건을 회의하는 수준이라 위원회 내부에서도 보다 많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수차례 나왔다. 방심위에 관련 예산, 행정 지원 등을 요청해왔다”고 설명했다.
이런 배경으로 복학왕은 숱한 논란을 반복하면서 연재되고 있다. 그동안 언론에 소개된 비하 논란 사례만 △2015년 1월 여성 주인공에 '룸빵녀' 호칭 (33화) △2017년 4월 30대 여성 '늙어서 맛없다' (141화) △2019년 5월 청각장애인 여성 비하 (248화) △2019년 5월 인종차별 및 생산직 노동자 비하 (249화) △2020년 8월 여성 주인공 성상납 논란(304화) 등 다섯 건에 이른다. 모두 여성이나 사회적 소수자와 관련된 사안이다. 복학왕은 논란이 일어나면 해당 장면을 수정하고 사과문을 게재하는 선에서 유야무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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