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아동ㆍ여성 강제노역 기록 공개
일제강점기였던 1941년 5월 2일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는 ‘소년공(少年工)을 부른다 - 산업전사(産業戰士)로 충북도에서 모집’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일제가 만 14세 이상 20세 이하의 청소년들을 ‘총후(전쟁 후방)의 중견산업전사’라는 명목으로 동원해 일본 내 공장에 배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소년들이 산업계 진출할 절호의 기회’라는 감언이설과 함께, ‘충북에서만 수십 명이 할당됐다’는 대목도 나온다.
국가기록원과 국립중앙도서관, 동북아역사재단은 13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쟁에 동원된 아동과 여성’을 주제로 전시와 공동 포럼을 열었다.
각 기관이 소장한 일제강점기 기록 가운데 아동ㆍ여성 강제동원 관련 기록과 강제동원을 정당화하고 선동하기 위한 신문 기사와 문헌 등 관련 기록물 35건이 공개됐다. 그 동안 각 기관에서 아동ㆍ여성 강제동원과 관련한 기록물에 대한 개별 열람은 가능했지만, 관련 기록물을 한데 모아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초등학생 한달에 20차례나 동원... 동원 이력 담긴 학적부 최초 공개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당시 학적부에는 초등학생(당시 국민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노역 현장에 강제동원한 ‘학도동원(學徒動員)’ 내용이 나온다. 그 동안 학생 동원과 관련한 연구는 있었지만 실제 인물과 동원내용이 기재된 명부가 공개된 것은 드문 사례라고 기록원 측은 설명했다.
일제는 1938년부터 학교별로 ‘근로보국대’를 결성해 학생들의 근로봉사를 강제했다. 당초 동원 기간은 10일 정도였으나 전쟁이 치열해지고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기간을 1년까지 늘려 학생의 노동력을 착취했는데 학적부는 이 같은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특히 근로보국대에 동원된 학생이 졸업 후 전쟁터로 끌려간 사실을 학적부(중학생)와 일선 파견부대 군인ㆍ군속 명부인 ‘유수명부(留守名簿)’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조선총독부가 학생들을 노동력과 병력의 원천으로 인식했음을 입증하는 구체적 사례라고 기록원 측은 설명했다.
또 ‘학도동원비상조치요강’(1944년 3월 18일)과 ‘학교별 학도동원기준(1944년 4월 28일) 등 조선총독부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수시 동원을 강제한 지침도 전시돼 있다. 이영도 기록원 학예연구관은 “공주의 한 국민학교와 관련한 기록을 보면 소화 19년(1944년)에 6학년 학생(12∼13세)을 부대 형태로 만들어 강제노역을 시킨 것을 찾아볼 수 있다”며 “일제는 단순히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노동력을 착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8월에는 학생들을 동원해 소나무 껍질을 채취하도록 했다. 당시 일제는 항공유가 부족해 나무껍질에서 기름을 추출했다”며 “한 달에 20차례나 노역에 강제동원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여성은 간호원으로 양성해 전쟁터로... '가미카제' 자세 요구
조선총독부 도서관에서 이관된 도서, 신문, 잡지 등 30만여 점을 소장 중인 국립중앙도서관은 아동과 여성, 방공(防空) 동원과 관련된 자료를 엄선해 공개했다. 중일전쟁 이후 일제는 후방의 산업 노동자들도 전선의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보국(報國)한다는 논리로 산업보국운동을 시행했는데 전시된 신문에는 중학교 학생들을 광산과 공장 등에 동원하고 있는 실태가 잘 나타나 있다.
간호부 동원에 관한 신문자료는 여성 동원 실태를 보여준다. 일제는 여성 간호부들을 ‘백의의 천사’로 선전하며 침략전쟁의 최일선에 동원했다. 이를 위해 경성과 청진의 병원에 간호부 양성반을 설치하기도 했다. 일제는 간호부로 동원한 여성들에게 일본군 ‘가미카제’와 같은 자세를 요구하기도 했다.
‘조선방공전람회기록’과 ‘언문 방공독본’ 등 방공 관련 기록물에는 청계천 아래 대규모 지하시설을 구축해 방공호로 이용하려는 계획 등이 정리돼있다. 언문 방공독본은 진주만 공습 직후로, 한글 사용이 금지됐던 시기인 1941년 12월에 만들어진 것으로 가정의 공습 지침을 한글로 기재했다.
이들 문헌에는 침략전쟁 수행을 위해 방공을 명목으로 조선 사회를 전시체제로 개편하려는 일제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고 도서관 측은 설명했다.
일제강제동원 평화연구회 대표 연구위원인 정혜경 박사는 “일제의 조선인 미성년 동원 사례를 보면 국제노동기구는 물론 일본 국내법 기준에도 못 미치는 명백한 불법이었다”며 “당시 국제기준에 근거한 미성년 노동의 범위와 기준을 설정하고 다양한 사례를 발굴ㆍ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자료 공동 전시 행사는 9월 4일까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진행된다. 일반인들도 이달 말까지 예약하면 관람할 수 있다.
한편 국가기록원 등 3개 기관은 그 동안 각 기관 차원에서 진행됐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에 대한 기록 분석,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등 관련 사업과 연구를 공동 추진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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