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은 사치다"...체인점 하나 없이 50년 장수한 통닭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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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은 사치다"...체인점 하나 없이 50년 장수한 통닭집

입력
2020.08.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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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경기도 최초 통닭집 '수원 매향통닭'
생닭 튀긴 '옛날 통닭' 단일 메뉴로 50년 이어와 
기자생활 하던 큰 아들이 10년 전부터 대이어

50년 외길 옛날 통닭을 고집해 온 고병희씨와 대를 이은 큰아들 최용철씨가 점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후텁지근한 여름,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 퇴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치맥(치킨과 맥주). 기름에 바싹하게 튀겨 모락모락 김이 나는 치킨에 목을 때리는 탄산의 시원함은 그 어디서도 찾기 힘든 매력이 있다.

그러나 ‘짬뽕’과 ‘자장’을 놓고 중국집에서 고민하듯 치킨집에서도 갈등은 이어진다. “치킨하면 프라이드지", “어허, 왜 이래. 치킨은 프라이드 반, 양념 반이야." 여기에 젊은 세대라도 있으면 이렇게 튀어나오기 십상이다. “아닙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왕갈비 통닭을 먹어야 합니다.” 메뉴를 놓고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경기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12에 있는 ‘매향통닭’에서는 이런 일이 없다. 한 마리, 두 마리, 마릿수만로만 주문이 가능할 뿐인 탓이다. 양념에 버무린 치킨은 물론 밀가루 등의 옷을 입히지 않은, 오로지 가마솥에 생닭을 튀긴 통닭, 단일 메뉴 치킨집이다.

‘매향통닭’은 50년 전부터 한 자리를 지켜 온 경기도 첫 통닭집이다. 사업자등록 기준 현존하는 우리나라 두 번째 통닭집으로도 알려져 있다. 첫 번째는 서울 명동에 있는 전기구이 통닭집이라는 게 ‘매향통닭’ 측 설명이다. 할아버지와 아들, 손자 등 3대가 함께 찾는 수원에 몇 안 되는 ‘노포’다.

50년 외길 옛날 통닭을 고집해 온 고병희씨와 대를 이은 큰아들 최용철씨가 생닭을 튀기고 있다. 배우한 기자


Since 1970, 경기도 1호 통닭집

‘매향통닭’의 역사는 1970년 11월 시작됐다. ‘매향통닭’ 주인 고병희(78)씨는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해야만 했다. 여자가 장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의 벌이로는 입에 풀칠하는 수준에 그쳤다. 주변 얘기도 듣고, 직접 발로 뛰며 일거리를 찾았다. 그러던 중 수원천 옆 수원의 대표 전통시장 중 하나인 지동시장에서 노란 장판 위에 올려진 손질 된 생닭이 눈에 들어왔다. 생닭은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그는 무릎을 쳤다.

고씨는 “그때 ‘그래 저거다. 저거면 우리 가족 먹여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닭 손질은 여자가 쉽게 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나 뛰어들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며 “더욱이 당시에는 수원천에서 바로 털을 뽑고 손질해 주니 싱싱해 많은 사람이 샀다”고 말했다.

남편과 상의해 둘째 아들 이름을 딴 ‘용일통닭’의 점포를 냈다. 간판 이름은 이듬해 지역명인 ‘매향통닭’으로 바꿨다.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당시 서민들도 쉽게 먹을 수 있는 고기가 닭이었기에 불티나게 팔렸다.

매상이 늘면서 고씨의 닭 손질도 그만큼 빨라졌다. 닭 한 마리 손질하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이 세발 자동차에 사온 닭을 보면 무게를 측정하지 않아도 1.1㎏, 1.3㎏, 1,6㎏으로 구분해 어리장(닭장)에 넣을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닭 손질에 가장 중요한 물의 온도도 손가락만 넣어보면 안다고 했다. 적정한 온도에서 닭 털을 뽑아야 깔끔하게 뽑힌다는 것이다. 입소문은 금세 수원 전역으로 퍼졌다.

50년 외길 옛날 통닭을 고집해 '매향통닭'. 배우한 기자


욕심이 부른 화, ‘외길인생’의 단초

1970년대 수원천 일대에는 재래식 도계(屠鷄)가 한창이었다. ‘위생’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기에 가능했다. 수원천에는 늘 닭 핏물이 흐르고 털로 가득했다고 한다.

당연히 돈도 많이 벌었다. 자연스레 욕심도 생겼다. 관련법이 생기면서 더이상 수원천에서 닭 손질이 불가능해지면서 도계장을 짓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게 화근이었다. 도계장 지을 땅을 샀는데 진짜 주인이 나타났다. 사기당한 것이다. 재판까지 갔지만 모두 잃었다. 억울한 마음에 술로 지세던 남편마저 1996년 세상을 떠났다.

고씨는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다”며 “하지만 아이 셋을 보는 순간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허리띠를 졸라맸다”고 말했다.

새벽 4시까지 장사하고, 집에도 가지 않았다. 4시간 가게에서 쪽잠을 자고 일어나 아이들 밥만 먹이고 학교에 보낸 뒤 다시 가게로 나왔다. 아침부터 그날 튀길 닭을 손질하기 위해서다. 고씨는 “그때는 정말 아이 셋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며 “다른 거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닭만 튀겨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가 지금까지 단일 메뉴, 옛날 통닭을 고집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저작권 한국일보].50년 외길 옛날 통닭을 고집해 온 '매향통닭'. 배우한 기자


대를 이은 아들...닭 튀기는데 4년 걸려

“아들이라고 예외가 없더라고요.”

큰 아들 최용철(57)씨 얘기다. 어머니가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마음에 걸려 20년 넘게 해 온 기자 생활을 접고 2009년 앞치마를 둘렀다. 가업을 자신이 이을 생각이었다.

중간중간 어머니 일을 도우러 가게에 나왔지만, 그가 한 일은 냉장고에서 닭을 가지고 나오는 것과 서빙 보는 일이 전부였다. 어머니가 힘들어하는 닭 튀기는 일을 도우려 했지만 어머니는 튀깁 집게를 넘겨주지 않았다. 그가 기름솥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본격적인 가업 승계에 나선 지 4년 만이었다.

그의 첫 일은 닭을 깨끗하게 손질하는 일이었는데 꼬박 1년을 했다고 한다. 이어 닭에 칼집 내는 일만 1년을 했고, 그토록 잡고 싶었던 집게를 잡는 데는 다시 1년이 더 걸렸다. 그로부터 1년이 더 지난 뒤에야 닭을 튀길 수 있었다고 한다.

최씨는 “내 손으로 직접 닭을 튀긴 ‘내 통닭’은 4년 만에 나왔다”며 “쉽게 생각했는데 닭 튀기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고 했다.

그가 4년 만에 튀긴 통닭은 맛이 어땠을까. 그는 “먹을 수 없었다”고 했다. 겉은 시커멓게 타고 안은 제대로 안 익었다는 것이다. 고씨는 “기름에 넣는다고 통닭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다”며 크게 웃었다.

닭을 튀기면서 중간에 칼집도 넣어야 하고, 관절을 모두 꺾어 줘야 하며, 두꺼운 가슴살과 다리 살은 집게로 꼭 찍어서 벌려줘야 했다. 또 닭을 많이 흔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고씨가 50년 간 이어온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웬만한 비법은 전수 받아 닭 튀김 전문가 대열에 오른 그지만, 그는 여전히 어머니 앞에서 '하수'라고 말한다. 최씨는 “어머니 실력은 평생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50년 외길 옛날 통닭을 고집해 온 고병희씨가 과거 처음 통닭을 튀기기 시작한 과거를 상기하며 말을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50년, 옛날 통닭 장수비결…'정성, 한결같은 맛'

‘매향통닭’의 장수 비결은 한평생 닭만 튀긴 어머니와 이제 막 노하우를 전수받은 아들만 닭을 튀기는 데 있다. 변치 않는 맛을 위한 것으로,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바로 이 '한결같은 맛'을 가장 높게 평가한다.

한 손님은 “매향통닭은 예나 지금이나 맛이 변하지 않아 좋다”며 “육즙이 살아 있고 바삭바삭한 맛은 다른 치킨집에서 경험하지 못한 맛”이라고 했다.

최씨는 최근엔 종업원을 구하려고 했지만 어머니 고씨가 거부했다. 주인이 튀겨야 맛이 변하지 않고, 그래야 손님들도 신뢰를 가지고 계속 찾는다는 이유에서다. 고씨는 “통닭 한 마리를 튀겨도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데 종업원들이 과연 주인과 같은 열정을 갖고 튀길 수 있겠느냐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 정도의 유명세를 체인점을 낼법도 하지만 분점도 체인점도 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고씨는 “돈을 벌려고 했으면 가맹점을 냈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분들은 내가 아니다. 정말 정성을 다해 한 마리의 통닭을 튀길 분들이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매향통닭’의 장수 비결 중 또 하나는 가마솥이다. 이곳에선 가마솥에서만 닭을 튀긴다. 가마솥은 전남의 한 무쇠솥 장인으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일반 통닭집에서 튀기는 전기솥은 온도가 180도 정도에 불과하지만 가마솥은 230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온도가 높다보니 겉은 바삭하고 육즙이 남아 식감이 매우 좋다. 최씨는 “가마솥은 한 번 올라온 온도가 쉽게 내려가지 않고 계속 유지된다”며 “온도가 낮거나 들쭉날쭉하면 고기가 뻣뻣해져 맛이 없다”고 말했다.

고씨는 지금도 오전 6시 10분에 나와 자정을 넘겨야 집에 들어간다고 한다. 하루 세 번 들어오는 그 날 잡은 생닭만 사용하기 때문에 자리를 계속 지켜야 하고, 소금 간 등 닭이 기름 솥에 들어가기 전까지 거쳐야 할 그만의 여러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50년 전통의 ‘매향통닭’은 수원의 먹거리 골목을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른바 ‘수원 통닭거리’다. ‘매향통닭’이 시초가 되면서 하나둘 씩 생겨나기 시작해 10여 곳이 성업 중이다.

다만 ‘매향통닭’처럼 가마솥에 생닭을 튀기는 곳은 없다.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킨 제품들이 대부분이다.

통닭 튀기는 일은 여든을 내다보고 있는 고씨 인생의 전부다. 그는 “우리 ‘매향통닭’이 유명세를 탄 것도 천직이라 생각하고 한결같이 같은 장소에서 닭을 튀겼기 때문일 것”이라며 "되든 안 되든, 불편하고 힘들어도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생각으로 버티면 안되는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50년외길 옛날 통닭을 고집해 온 고병희씨와 대를 이은 큰아들 최용철씨가 생닭을 튀기고 있다. 배우한 기자


매향통닭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천로 317


임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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