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 조약골 대표
인디밴드, 사회운동 하다 고래지킴이 변신
2013년 제돌이 시작으로 돌고래 7마리 방류 한몫
본명을 묻는 질문에 난색을 표한다. 사회적 약자와 평생 연대하겠다는 다짐으로 ‘약골’이라 이름 짓고 20년 넘게 사회운동가로 살며 문제가 없었는데 굳이 알 필요가 있냐고 되묻는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소망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난생 처음 올해부터 최저임금이 갓 넘는 수준의 활동비를 받으며 살고 있단다. 긴 머리 휘날리며 서울 청계천에서 맞춤 제작한 진분홍 점프 슈트를 입고 전국을 누비는 것도 별 게 없다는 눈치다. 오히려 그런 모습에서 시작된 관심이 국내 해양생태계 보전으로 이어지길 바랄 뿐.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의 조약골(48) 공동대표 이야기다.
‘납치된 돌고래를 바다로’
기타를 치고 반전(反戰) 노래를 부르며 인디밴드 멤버와 사회운동가로 살던 조 대표가 해양생태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1년 7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집회에 참가하면서다. 해군기지 건설로 파괴될 제주 해양 생태계의 보전을 고민하던 중 고래가 입을 피해에 주목했다.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남방큰돌고래 110여 마리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무리 지어 사는 제주 연안에 해군기지가 들어설 경우 터전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해양생태계를 잘 모르는 그가 봐도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강정 앞바다에서 노는 돌고래 무리는 지켜야 할 대상이란 걸 알았다. 제주 앞바다에서 불법 포획돼 전국 공연장으로 팔려가 묘기를 강요 받으며 살다가 폐사되는 남방큰돌고래들 사연은 그가 서울 생활을 접고 제주에 눌러앉는 계기가 됐다.
제주에 정착한 그는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출신 황현진 공동대표와 2011년 12월 핫핑크돌핀스를 창립했다. 고래류는 크기에 따라 고래와 돌고래로 나뉜다. 보통 몸길이가 4~5m 이상이면 고래, 그보다 작으면 돌고래로 분류한다. 핫핑크돌핀스는 점차 그 수가 줄고 있는 돌고래 중에서도 더욱 귀한 분홍빛 돌고래들을 단체명으로 택했다. 그리고 불법 포획된 후 국내 수족관에서 돌고래쇼에 이용되는 남방큰돌고래들이 제주 앞바다로 돌아가야 한다고 처음 주장했다. ‘납치된 돌고래를 바다로’ 캠페인이 그것이다.
핫핑크돌핀스는 캠페인을 통해 2013년 3월 제주 중문단지 돌고래쇼장인 ‘퍼시픽랜드’에서 지내던 남방큰돌고래 4마리(삼팔이, 춘삼이, 태산이, 복순이)의 대법원 몰수 판결을 받아냈다. 살아 있는 생물에 대한 국내 첫 몰수형 판결이었다. 여기에 제주 성산 앞바다에서 불법 포획된 후 퍼시픽랜드에 팔렸다가 다시 서울대공원으로 팔려간 제돌이 문제를 공론화하는데 힘을 보탰다.
이중 건강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삼팔이와 춘삼이, 그리고 학계 및 시민사회 등으로 구성된 ‘제돌이야생방류시민위원회’의 철저한 준비 아래 뒤늦게 합류한 제돌이가 불법 포획된 지 4년 만인 2013년 7월 제주 앞바다로 돌아갔다. 2015년 7월에는 태산이와 복순이 역시 수족관 생활 6년 만에 제주 앞바다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이어 서울대공원 돌고래쇼장 폐쇄에 따라 방류가 결정된 금등이와 대포도 2017년 7월 제주 앞바다로 떠났다. 그들의 문제제기가 2013년 7월 국내 첫 돌고래 방류를 이끌어내고, 이후 동물원과 수족관에서 살던 돌고래 7마리를 바다로 돌려보냈다. 현재 더 큰 바다로 이동한 걸로 보이는 대포와 금등이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마리는 제주 연안에서 다른 무리들과 잘 생활한다. 이중 삼팔이는 두 차례, 춘삼이와 복순이는 각각 한 차례 새끼를 낳았다. 기존 무리들과 합류한 후 완벽히 야생에 적응한 결과다.
'나 자신 챙기기도 바쁜데 고래까지 신경 쓸 시간이 어딨냐'는 물음, '고래 몇 마리 바다로 돌려보낸 게 대수냐'는 일부 시선에 조 대표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는 최상위포식자인 고래가 해양생태계 균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해양생태계 복원에서 고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고 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 대책으로 나무 수천 그루를 심는 것보다 고래 한 마리를 보호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재정과 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큰 고래 한 마리는 평생 이산화탄소를 33톤 가량 흡수한다. 흡수된 탄소는 고래가 죽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도 수백 년간 그 속에 갇혀 있다. IMF는 나무 한 그루가 흡수하는 연간 최대 이산화탄소량은 약 22kg로 계산했다.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하냐’
조 대표는 국내 수족관 시설에서 생활하는 모든 고래류가 바다로 돌아갈 때까지 방류 활동을 계속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 이어진 고래류 폐사를 언급하며 시간이 없다고도 했다.
지난달 20일 전남 여수시 아쿠아플라넷에서 사육하던 12살 수컷 벨루가(흰고래) ‘루이’가 폐사했다. 태어나 줄곧 수족관 생활을 하던 루이는 30년 남짓인 벨루가 평균수명의 절반도 살지 못했다. 루이가 폐사한 지 이틀 후인 22일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에서는 돌고래 ‘고아롱’(수컷 18살 추정)이 폐사했다. 2009년 고래생태체험관 개관 때 들여온 고아롱 등 돌고래 8마리와 이들에게서 태어난 4마리를 합쳐 12마리가 지내던 체험관에는 연이은 폐사로 이제 4마리의 돌고래만 남아 있다.
지난 달만 고래류 두 마리가 폐사하면서 2009년부터 최근 10년여간 국내 수족관에서 사육하는 고래류 61마리 중 50%가 넘는 31마리가 폐사했다. 불법 포획 등을 통한 공급은 차단됐다고 하나, 아직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국내 고래류는 7개 시설에 30마리가 흩어져 있다. 별도 시설에, 수의사와 훈련사 등의 보살핌에도 계속 죽어나가는 게 더 큰 문제다. 결국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그는 말한다.
고래들이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는 게 고래류 관람ㆍ체험 시설을 운영하는 지자체나 기업만의 책임일까. 그는 “관람객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고래들은 바다로 돌아갈 것”이라며 시민 의식의 변화를 요구했다.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에만 한해 40만~50만명이 방문한다. 핫핑크돌핀스가 내놓은 시민의식 변화를 위한 대안은 ‘돌고래학교’다. 2015년부터 매년 여름 돌핀센터에서 열리는 돌고래학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고래류 보호와 해양생태계 보전, 나아가 생태적인 삶의 중요성을 알리는 에코캠프다. 아이들은 수족관 속에 갇힌 고래가 아닌 제주 앞바다에서 자유롭게 노는 고래를 마주하고, 돌고래 서식지 인근 해변가 정화활동도 직접 하며 함께 사는 법을 체득한다.
조 대표는 끝내 건설된 강정마을 제주 해군기지와 달리, 대정마을에 추진될 해상풍력발전 사업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했다. 제주 바다 전체를 자유롭게 드나들던 돌고래들은 현재 해군기지 등 각종 사업들로 터전을 잃고, 대정·구좌·성산읍 일대에서만 겨우 살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돌고래들이 출몰하는 곳이 대정 앞바다 지역이다. “제주 해상을 돌고래보호구역으로 지정하지는 못할망정, 개발사업들이 지속된다면 현재 겨우 120여마리 남은 이들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무리들이 한 지역에만 머무는 연안정착성을 띄는 남방큰돌고래는 호주와 인도양, 동아프리카, 일본, 한국(제주도) 등에 폭넓게 분포한다. 제주 개체군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무리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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