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정치인은 모두 위선자’라는 의심은 꽤 유구하다. 특히 요즘 같은 때면 더 파다하다. 정부와 여당이 온 힘을 다해 다주택자 규제, 불로소득 환수, 세입자 보호에 매진하는 동안 일부 청와대 참모는 ‘직(職)을 버리고 집을 택했다’는 눈총을 받았다. 이런 표리부동에 비판이 쏠릴 때마다 혹자는 쉽게 ‘언론 탓’을 한다. 보도를 쏟아 화를 키운다는 것이다. 공감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테다. 위선을 뉴스로 만드는 건 그 순간 뜨겁게 반응하는 유권자 겸 독자들의 직관과 본능이기도 하다.
요사이처럼 한 두 장면이 정치를 송두리째 위선으로 오독시킬 때면,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많은 정치인이 얼마나 자주 사석에서 ‘민심의 귀함, 높음, 무게’에 대해 격찬하는가에 대해서다. 투명한 진심인지 당장 알 길은 없으나, 적잖은 이들은 늘 진심을 가득 담아 되뇐다. ‘유권자들은 정말 모든 것을 다 보고 있다’ ‘전략적 투표가 반영된 선거 결과는 세밀화처럼 절묘하다’ ‘시민들은 잔꾀나 속임수에 당하지 않는다’ ‘한국 유권자의 민도(民度)와 정치 효능감은 세계 최고다’ 등 그 찬사를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묵묵히 일하는 다수의 이들은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을 그저 낡은 관용구로 여기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저 극중 악역 모사꾼처럼 눈속임으로 정치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 역시 모를 리 없을 그 천심의 변심이다. 리얼미터(TBS 의뢰) 10∼12일 조사에서 정당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 33.4%, 미래통합당 36.5%였다. 이 천심이 가리키는 환부는 어딜까.
민주당은 21대 국회를 ‘전폭적 지지’ 속에 출발했다. ‘임대차 3법’과 ‘부동산 3법’ 등 부동산 관련 법안 처리 과정을 두곤 폭주 논란 속에서도 ‘그러라고 국민이 표를 몰아 준 것’이란 평가가 비등했다. 궁극적으론 세입자를 지키고, 투기를 방지하고, 주거권을 보장하겠다는 선의를 읽는 눈이 많았다. 하지만 위태는 곳곳에서 돌출됐다. 무엇보다 정의당은 “의도엔 공감하나 왜 민주당이 원하는 법안만 핀셋 고르듯 골라 처리하느냐’고 물었다. 민주당은 답하지 못했다. 법안소위 구성을 외면하던 통합당은 돌연 “입법 독주” 공세의 기회를 얻었다.
완벽한 정책은 없다. 시장과 현장의 부작용은 상수다. 그런데도 일이 뒤틀리면 야당은 당당한 표정으로 외칠 것이다. “거 봐라, 혼자 달려나가더니.” 완벽한 조직도 없다. 늘 일부는 말실수를 하고 ‘표리부동’할테다. 그때마다 선의를 의심받게 된다. 영원한 신뢰도 없다. 정권의 명운이 걸린 법안만 핀셋처럼 뽑아 속전속결하는 ‘선택 권력’을 바라보면서 누군가는 떠올릴 것이다. 노동자인 내가 산재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도, 소수자인 내가 차별 받지 않을 권리도, 여성인 내가 안전할 권리도 저런 저돌적 처리 속에 해결될 수는 없을까. 그 ‘선택 권력’의 조명이 내 자리로 오는 것은 언제일까.
결국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는 화살을 받기 십상이다. 정당 지지율 데드크로스가 가리키는 것이 어쩌면 ‘이 구역의 옳음은 오로지 내가, 바로 지금 결정한다’는 당정청의 조급증은 아니었을까. 시작과 달리 가시밭길이 된 듯한 거여의 여정을 꽃길로 돌려 세울 첫 단추는 어쩌면 그 지당한 원칙, 숙의(熟議)의 회복에 있는지 모른다.
※ 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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