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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 영화ㆍ웹툰 동시 출격… 마블 '어벤저스'처럼 세계관 짓는다

입력
2020.08.17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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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플랫폼을 넘어선 'IP' 시대
카카오페이지, 플랫폼ㆍ장르 넘어 '유니버스' 구축

편집자주

디지털시대를 맞아 콘텐츠 산업의 화두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 떠올랐습니다. 다양한 플랫폼이 있는 만큼 이제 매체보다 콘텐츠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요청입니다. 한국의 도전도 이제 시작됐습니다.

개봉을 앞둔 영화 '승리호'의 한 장면. '승리호 IP 유니버스'의 일환이다. 메리크리스마스 제공

개봉을 앞둔 영화 '승리호'의 한 장면. '승리호 IP 유니버스'의 일환이다. 메리크리스마스 제공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페이지는 지난 5월 다음웹툰에 ‘승리호’ 연재를 시작했다. '승리호'는 SF물이다. 2092년을 배경으로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선원들이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로봇 ‘도로시’를 발견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그저 웹툰만 연재하는 게 아니다. 카카오페이지는 3년 전에 영화투자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가 개발 중이던 영화 ‘승리호’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다. 영화 '승리호'의 개봉 즈음에 맞춰 웹툰 연재를 시작한 것은 전략적인 결정이다.

카카오페이즈는 이 작업을 ‘승리호 IP(지적재산) 유니버스 구축'이라 부른다. 웹툰 '승리호'와 영화 '승리호'는 동시에 기획, 제작됐으나 두 작품은 기본 설정 정도만 공유할 뿐 주된 스토리는 다르다. 성공적인 원작 소설 판권 하나 사서 이걸 드라마로, 영화로, 만화로 만들던 '원소스 멀티유즈'가 아니다. 원천IP가 지닌 세계관(유니버스)만 공유할 뿐, 각각의 플랫폼에서 서로 다른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실제 웹툰 ‘승리호’의 출발점은 영화 ‘승리호’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각색 정도에 그친 게 아니라 아예 새로 쓰다시피 했다. 웹툰을 맡은 홍작가는 “영화 ‘승리호’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따오긴 했지만, 이야기는 완전 다르다"며 "굳이 비율로 따지자면 40% 정도는 아예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썼다"고 말했다.

'승리호 IP 유니버스'를 만들겠다는 것은 미국의 '마블' 혹은 '스타워즈'가 영화,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 등으로 통해 세계를 확장해 나가듯, 승리호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가겠다는 포부다. 그래서일까. 카카오페이지는 스스로를 '웹툰 사업자'가 아니라 'IP 비즈니스 사업자'라 정의했다. 잘 빠진 웹툰 하나, 괜찮은 웹소설 하나 히트 시켜놓고 좋아하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는 얘기다.

어쩌다 한번 시도한 게 아니다. 앞서 카카오페이지는 영화 ‘강철비’, 웹툰 '스틸레인(Steel Rain)' 시리즈를 함께 선보였다. 영화 ‘강철비’의 성공에 이어 최근 속편 ‘강철비2: 정상회담’이 개봉했고, 웹툰은 총 3편까지 연재를 마치며 ‘스틸레인 유니버스’를 구축해가는 중이다.


5G 시대 'IP유니버스'가 답이다

콘텐츠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성공한 소설이나 웹툰 등을 원작으로 영화, 드라마를 만들던 방식, 원소스 멀티유즈(OSMUㆍOne Source Multi-Use)라는 표현은 이제 옛말이 됐다. 5G 시대의 콘텐츠는 장르나 플랫폼의 장벽을 뛰어넘는 'IP유니버스'를 만들어내야 성장이 가능해진다.

만화책에서 출발해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으로 무한 확장을 거듭하고 있는 미국 콘텐츠 기업이자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마블이 좋은 예다. 1939년 최초의 슈퍼히어로 '휴먼 토치'의 등장 이후 마블은 80여년간 8,000여개가 넘는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됐다. 사람들은 이를 '마블 유니버스'라 부른다.


흔히 '마블 유니버스'라 불리는, 마블의 여러 캐릭터들.

흔히 '마블 유니버스'라 불리는, 마블의 여러 캐릭터들.


마블 유니버스의 힘은 강력하다. 한국에서도 ‘어벤저스’ 시리즈가 인기를 얻은 뒤 공부하듯 마블 유니버스를 파고드는 팬들이 적지 않다. 올 4월까지 마블 세계관으로 제작된 영화 23편의 전 세계 매출 총액은 26조원에 이르고, 그 중 2019년 개봉한 ‘어벤저스: 엔드게임’ 한 편의 매출만 3조원을 넘겼다.

한국도 최근 웹툰, 웹소설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한국판 마블’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네이버웹툰과 카카오페이지가 대표적이다.

2004년 서비스를 시작해 2014년부터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네이버웹툰은 5년 만에 구글플레이스토어 기준 100여개국에서 만화 부문 매출 1위를 차지했다. 월간 순 방문자(MAU)는 올 초 6,000만명을 넘어섰다.

카카오는 일본 시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카카오의 일본 자회사인 카카오재팬의 만화 플랫폼 ‘픽코마’는 지난 7월 일본 양대 앱마켓에서 비게임 부문 통합 매출 1위에 올랐다. 동일 기준 전 세계 순위로는 12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일본 진출 4년 만에 이룬 성적이다. 일본은 여전히 웹(Web) 만화 시장이 모바일 시장이 훨등히 크다곤 하지만 픽코마의 성장세는 놀라운 수준이다. 카카오는 일본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인도네시아 대만 태국 중국 등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두 회사 모두 본격적인 IP 유니버스 구축에 나선 건 아니다. 하지만 '야심'을 숨기지는 않는다.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는 “1단계가 글로벌 웹툰 플랫폼 1위였다면, 사업전략 2단계로 글로벌 지역 확대가 진행 중"이라며 "이 작업들이 어느 정도 이뤄지면 IP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사업을 시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그래픽팀=신동준 기자

한국일보 그래픽팀=신동준 기자



확장 가능성 큰 '슈퍼IP'를 찾아라

IP 비즈니스의 핵심은 양질의 IP 확보다. 카카오페이지는 웹소설과 웹툰 등 7,000여편의 IP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최근 학산문화사, 대원씨아이, 서울미디어코믹스 등 여러 콘텐츠 회사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태원클라쓰’ ‘김비서가 왜 그럴까’ 같은 성공사례를 계속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 이진수 카카오페이지 대표는 “마블처럼 영화 한 편으로 수조원을 벌어들이는 게 부럽긴 하지만, 우리 상황에서는 일단 수백억, 수천억 규모부터 만들어나가는게 현실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콘텐츠 업계에서 합종연횡이 잇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레진엔터테인먼트는 웹툰 플랫폼 브랜드명을 '레진코믹스'에서 '레진'으로 바꾸면서 넷플릭스, 키다리스튜디오, 델리툰과의 협업을 선언했다. 해외시장 공략까지 내다보겠다는 것이다. CJ ENM도 지난달 콘텐츠 기업 위즈덤하우스와 전략적 제휴 협약을 맺었다. 이 또한 IP 확보를 위한 작업이다. CJ ENM은 김호연 작가의 장편소설 ‘파우스터’를 시작으로 향후 3년간 위즈덤하우스가 보유하고 있는 출판물, 웹툰, 웹소설 등 IP를 활용해 드라마, 영화, 공연, 애니메이션 제작에 나설 계획이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시대

'콘텐츠 산업의 격변'이라 부를 수 있는 이런 흐름을 두고 학계는 '트랜드미디어 스스토리텔링'이란 표현을 쓴다. 원소스 멀티유즈와 달리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개방성, 확장성, 연결성을 중시한다. 공유하는 IP 유니버스를 기반으로 다양한 창작자가 독립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작품의 통일성을 해치는 게 아니라, 세계관 확장으로 이어진다고 믿는 방식이다. 원천 소스를 일방향적으로 가공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맥락에서 다양하게 변형하는 방사형 창작구조다.

이는 콘텐츠 산업계의 치열한 경쟁 때문이기도 하다. 리스크를 줄이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을 활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바일 기기의 진화는 이런 흐름을 더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에게 최적화되는 모바일 문화의 특성상 개별적인 취향에 의존하는 IP유니버스 형성이 더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

소설, 만화, 드라마 등은 물론 게임, 캐릭터, 스타 등 소위 '인기있는 IP'를 확보하고 있는 업체들이라면 누구나 IP 유니버스 만들기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최근 게임업체 넥슨의 일본 법인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대상으로 1조8,000억원 규모의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발표한 것이 한 예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게임 회사인 넥슨이 1조원 이상을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투자하겠다는 것은 콘텐츠 산업의 중심 원리 자체가 뒤바뀌고 있다는 신호"라며 “앞으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바람은 한층 더 거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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