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나"…쑥대밭 된 섬진강 유역 주민들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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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나"…쑥대밭 된 섬진강 유역 주민들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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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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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피해 현장 방문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후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에서 주민들의 애로사항 등을 듣고 있다. 2020.08.12./청와대사진기자단 / 왕태석 선임기자


"후우…. 환장하겄소, 환장해."
12일 오후 전남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 집중호우에 무너진 집 속에서 진흙범벅이 된 가재도구를 챙기던 박모(65)씨는 연신한숨을 토해냈다. "집 꼴을 한번 보시오. 폭격 맞은 집 같지 않소? 내 속도 그러요." 흙벽에 파편처럼 처박힌 밥그릇과 냄비를 흙 묻은 손으로 가리키던 박씨는 "잠도 못자고 진흙더미와 쓰레기를 치우고 치워도 끝이 없지만 길거리에 나앉을 수는 없어 사흘째 치우고 있다"며 "특별재난지역으로 빨리 선포해 주지 않으면 정말로 죽게 생겼다"고 울먹였다.
'남도의 젖줄' 섬진강 하류 지역에 농민들의 한숨소리가 넘쳐 나고 있다. 바다로 흘러가야 할 강물이 30년 만의 폭우에 넘치면서 강둑을 무너뜨리고 마을을 덮치는 바람에 삶의 터전이던 강 기슭이 쑥대밭이 됐기 때문이다. 섬진강에 기대 살던 전남 구례ㆍ곡성ㆍ전북 남원 일대 주민들은 논ㆍ밭은 물론 읍내까지 집어삼킨 물난리에 "이제 어떻에 살아야 하냐"면서 막막한 생계 앞에서 좌절하고 있다.


마을이 침수됐던 전북 남원시 금지면 하도마을에 있는 한 장어 양만장에서 국군 장병들이 폐사한 장어 처리를 돕고 있다. 연합뉴스


섬진강 둑 100m가 무너져 물바다가 됐던 남원시 금지면 일대는 물이 빠지가 거대한 뻘밭으로 변해 있었다. 논과 밭의 경계가 사라졌고 과실 나무는 모조리 쓰러져 과수원의 형체를 구분할 수 없었다. 상귀마을 주민 김모(56)씨는 "60~70대 농민들이 빚까지 껴안고 감자와 딸기 농사로 연명하는데, 밭이 진흙더미로 덮혀 올해 농사뿐 아니라 향후 1~2년 농사는 완전히 망쳤다"며 "섬진강댐이 제때 방류만 했어도 이 정도까지는 안 됐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중도시로 변했던 구례 읍내는 쓰레기더미로 변해 버렸다. 오일장이 열리던 구례읍 장터에 각급 공무원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와 물에 침수로 팔 수 없게 된 물건들을 치우면서 장마당에 쌓인 쓰레기는 산더미를 연상케 했다. 이을재(71) 구례 오일장 상인회장은 넋이 반쯤 나가 있었다. 며칠째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는 그는 "코로나로 가뜩이나 힘든 경기에 폭우까지 겹치면서 아예 장사를 포기하는 상인들이 속출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닷새에 한번씩 장사하는 노인네들에겐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그것마저도 없으면 내일을 기약할 수도 없다"고 호소했다.


생태적 보전가치가 높아 국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전남 곡성군 오곡면 일대 섬진강 침실습지가 최근 연이은 집중 호우와 기습 방류로 12일 흙탕물에 잠겨 있다. 곡성군 제공


섬진강 일대 주민들은 당국의 안이한 물 관리로 피해가 커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섬진강 최상류에 있는 섬진강댐은 지난 7~8일 집중호우 예보에도 선제적 방류를 하지 않았다가 8일 오전 6시쯤 갑자기 초당 600톤씩 긴급 방류를 시작했다. 이어 낮 12시쯤에는 1,000톤, 오후 4시쯤에는 수문 19개를 모두 열어 1,868톤으로 방류량을 늘렸다. 섬진강댐의 갑작스러운 수문 개방과 대량 방류로 인해 섬진강 지류(구례 서시천) 제방이 터지는 등 곡성ㆍ구례ㆍ광양ㆍ순천 등 4개 시ㆍ군에서만 2,24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성난 주민들은 13일 수자원공사 측의 책임 있는 사과와 보상을 촉구하는 항의 방문을 하고 국무총리실에도 항의 서한을 전달하기로 했다. 섬진강 인접 11개 지방자치단체와 6개 특별기관으로 구성된 섬진강환경행정협의회가 항의에 앞장섰다. 김순호 구례군수는 "지난 7, 8일에는 집중호우가 온다는 기상예보가 있었는데 왜 예비 방류를 안했는지, 댐 담수율을 50%로만 낮췄어도 이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수공 측의 무리한 방류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구례 곡성 남원= 박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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