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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튜버의 '베이비'일 뿐입니다

입력
2020.08.13 06: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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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유튜브에선 자고 나면 한둘씩 유명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엄청나다고 해서 인플루언서(Influencer)로 불리는 이들이 풀죽은 얼굴로 잇따라 사과하는 중이다. 시청자들을 "헬로 베이비들~"이라고 친숙하게 부르며 방송을 진행하던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씨도, 먹방을 선보이며 많은 사람들의 식욕을 돋구던 '양팡'도 돈을 받고도 아닌 척 몰래 광고한 것이 드러나자 잘못했다고 빌고 있다. 팬들의 지지를 먹고 사는 이들이 팬들의 분노를 사게 되자 납작 엎드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같은 '뒷광고'에 왜 이렇게 분노하는가? 우선 속은 게 분하기 때문이리라. '내돈 내산(내가 돈 주고 내가 산)'을 큰 소리로 외치며 '직접 장만한'을 커다란 자막으로 강조하던 원피스와 화장품이 사실은 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협찬 또는 광고 제품이었다는 것에 화가 치솟는다. 이렇게 분노를 유발하는 기만의 사례는 광고나 홍보의 역사에 수도 없이 등장한다. 세계 최대의 홍보대행업체인 미국의 에델만도 뒷광고와 비슷한 수법을 사용해 홍보를 하다 된서리를 맞은 바 있다. 인터넷 사업 활동이 활발해지던 2006년 무렵 사진가와 프리랜서 작가 등 2명이 미국을 여행하며 대형 슈퍼마켓 월마트를 미화하는 내용을 올렸다. 평범해 보였던 이 블로그는 이들의 여행이 '내돈 내산'이 아니라 월마트와 계약을 맺은 에델만의 기획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며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에델만은 쏟아지는 비판을 못 견디고 사과성명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됐다.

그러나 2020년 한국의 유튜브 뒷광고에 대한 분노의 감정 수위를 기만으로만 설명하기는 좀 부족하다. 다른 이유는 배신감이다. 유튜브 인플루언서들이 구독자수를 0에서 100만명으로 늘리게 된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이들이 사용자들과 구축하는 인간적 친밀감이다. 이전 시대 유명인들과 달리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의 인플루언서들은 구독자들과의 자연스러운 소통에 아주 탁월하다. 이들은 스타일이나 먹방, 게임과 같은 주제에 대한 소통을 통해 사용자들이 자신과 친밀하다고 느끼게 하면서 구독자들을 확보해 나간다. 얼마 전 구글이 발표한 연구에서 유튜브 구독자 상당수가 친구보다 인플루언서들이 자신을 더 잘 이해한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친구 이상으로 친하다고 생각했던 인플루언서가 '내돈 내산'으로 속였다는 사실은 심각한 배신으로 다가와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한다.

이런 '모조 친밀성'을 설명하기 위해 학자들은 '의사사회적 상호작용(Parasocial interaction)'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냈다. TV 등 미디어의 출연자들을 자주 보는 과정이 실제 사회생활의 교류와는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상호작용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유튜브 인플루언서들은 이러한 의사사회적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데 능란한 기술자들인 셈이다. 일상을 깔끔하게 기록한 강민경씨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그와 아주 친밀하다는 착각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의사사회적 상호작용은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열심히 인플루언서를 팔로우하고 구독하지만 그는 나를 팔로우하지 않는다. 유튜브를 자주 보면 그가 친하게 느껴지고 나를 이해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는 나를 전혀 모른다. 나는 그에게 수억 원의 광고 수익을 안겨주는 몇 백만 '베이비' 중 한 명일 뿐이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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