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피와 살은 비 오는 날에는 꼭 술을 마시라 한다. 나는 강북 종로가 좋다. 아직은 좀 정취가 남아 있는 종로 2, 3가 피맛길이나, 핫한 익선동에 잠식돼 가는 종로3가 비좁은 갈매기살 골목을 자주 간다. 문이 없어 훤히 내다보이거나 처마가 딸려 있는 선술집이 좋다.
바로 발아래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 그 날것의 냄새를 나는 사랑한다. 그 투명하고 투박한 빗소리 안주 삼아 친구와 노닥노닥하는 게 나의 싸구려 옛날식 낭만이라면 낭만이다.
비는 노래와 비슷하다. 비도 소리와 선율이 있다. 음악도 비도 흐르고 적신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엔 막걸리 당기듯 노래도 당긴다. 가객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꼭 들어야 한다.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난 당신을 생각해요/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30년을 훌쩍 넘긴(1986년 발매) 지금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그 목소리의 힘.
하나 더 있다. “Listen to the pouring rain/listen to it pour…” 호세 펠리치아노의 ‘Rain’(1969년 발매). 이 중독성 강한 어쿠스틱 기타 리듬에 내 가슴이 반응하지 않은 적 없다. 전자는 서른셋에 요절했고 후자는 선천적으로 앞을 못 봤다. 그에게 비는 소리와 촉감뿐이었을 게다. 그래서 이 노래들이 더 애틋할까.
그냥 비 이야기나 하려던 참이었는데 술 이야기로, 음악 이야기로 넘어갔으니 이놈의 글쓰기는 대책이 없다.
유독 말 많았던 2020년 장마도 가고 있다. 주야장천 내려도 너무 내렸다. 비 내리는 낭만포차도 어쩌다지, 물에 잠긴 전국 마을 풍경과 숨진 이들 뉴스를 보고 있노라니 술타령 음악타령이 다 의미 없고 죄스럽다. 오늘로 딱 50일째가 돼 역대 최장 '오란비(장마의 옛말)'가 됐다 한다. '코로나 블루'에 이어 '레인 블루'라는 말이 생겨났다.
눈을 똑바로 뜨니 주변은 어렵지 않은 게 없다. 코로나는 여전히 끝을 보여주지 않는다. 인간의 얼굴은 마스크로 평준화됐다. 오늘도 동네 카페 하나가 문을 닫았다.
그나마 음원시장을 싹쓸이한 '싹쓰리'와 TV 채널을 점령한 '미스터 트롯' 가수들을 보는 재미로 견디는 사람도 있다지만, 난 이상하게 '만들어진' 사람에겐 정이 안 간다. 수천 건 쏟아진 여성 의원의 분홍원피스 뉴스에 짜증이 났다. 그런 뉴스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방식이 싫다.
정태춘은 ‘92년 장마, 종로에서’에서 열정이 식은 시대 풍경을 이리 쓸쓸히 읊었다.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그렇다고 불평 말고 내가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팬데믹보다 무섭다는 기후변화에는 관심 없는 리더십에 분기탱천해야 할까, 미친 척 노래방에 갈 수가 있나.
그냥 이겨내는 수밖에. 우울은 수용성이라는데, 운동하고 찬물에 샤워 한 판 하고 나면 나아지려나.
소설가 윤흥길을 작가 반열에 올린 중편 ‘장마’(1973년)를 다시 읽었다. 아들을 각각 국군과 빨치산으로 보낸 사돈 할머니 집안이 긴 장마철 내내 싸우는 이야기다. 두 집안은 갈등하고 할퀴고 증오하다 두 아들이 다 죽고 장마가 끝나면서 비로소 손을 잡았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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