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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정치인 심상정은 그 자체로 기록이다. 진보정당 출신으로 4선 반열에 오른 국회의원은 그가 유일하다. 정치인 중 드물게 팬클럽과 ‘심블리’라는 애칭도 갖고 있다. 21대 국회 들어선 김상희ㆍ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최다선 여성 의원이 됐다. 여당 소속이었다면, 최초 여성 국회부의장은 그의 몫이었을지 모른다. 총선을 거치며 간신히 6석을 지킨 정의당에 하나 남은 지역구 당선자이기도 하다. 정의당의 슬픈 현주소다.
□ 2년 전 고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그는 정의당의 하나 남은 대들보가 됐다. 당에 아직 그만한 인지도와 인기를 지닌 인물이 없다. 그래서 ‘심상정의당’이란 말도 나왔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바꿔 말하면,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당의 리스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성폭력 의혹에 휩싸인 박원순 서울시장 조문 국면과 최근 물난리 사태에서 잇따라 증명됐다.
□ 그는 박 시장 조문을 거부한 같은 당 류호정ㆍ장혜영 의원을 대신해 사과를 하면서 되레 당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두 의원의 의사 표명에는 공직자로서 피해자와 연대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에 일부 당원이 탈당까지 감행하자, 대표가 나서서 사과를 한 건데 적절한 해법은 아니었다. 7일엔 산사태 피해 농가 복구를 도우러 갔다가 의원ㆍ당직자들과 나란히 서서 찍은 기념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비판을 받았다. 어려움을 겪는 민생 현장을 찾은 건 칭찬받을 일이지만, 그걸 ‘인증’한 게 문제였다.
□ 정의당은 13일 혁신안을 발표한다. 당이 거듭나려면 ‘포스트 심상정’ 리더십을 만드는 게 핵심 과제다. 지도체제의 문제가 아니다. 기대주가 오로지 심상정 한 명인 정당의 수명이 오래갈 리는 없다. ‘심상정의당’인 현주소를 벗어나 ‘정의당의 심상정’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얘기다. 심상정 개인에 기대지 않아도 희망을 볼 수 있는 ‘대안 야당’으로서 정체성을 다지는 게 급선무일 테다. 마침 여야 불문 기존 정당을 뛰쳐나온 부동층, 기성 정당에 등 돌린 청년들, 젠더 의제를 믿고 맡길 정당을 찾아 헤매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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