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ㆍ나가사키 추도식 인사말 93% 같아
코로나19 정부 대응 우려에도 같은 말만 반복
SNS서 "국민을 가볍게 보고 있다" 비판 잇달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최근 원폭 75주년을 맞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열린 평화기념식에서 언급한 인사말이 거의 흡사해 '재활용'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정부 대응에 있어 여론의 우려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같은 말만 반복하는 아베 총리의 태도와 맞물려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11일 교도통신과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9일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 추도를 위한 평화기념식에서 말한 인사말의 문구가 사흘 전인 6일 히로시마 평화기념식의 인사말과 93% 일치했다. 나가사키 기념식의 인사말 1,153개 문자 중 1,078개 문자(93%)가 같았고, 7개의 단락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도 동일하다는 지적이다. 피폭자 단체측은 "히로시마를 나가사키로 바꾼 것밖에 없지 않느냐"며 "이는 피폭자들을 조롱하는 것으로 핵심이 있는 내용을 원한다"고 반발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행사에서의 인사말이 거의 비슷하다는 지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에도 양측이 첫째 단락과 둘째 단락이 바뀐 것을 제외하면 동일했고, 2018년 연설의 표현과 구성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아베 총리가 피폭자를 위한 메시지를 복사해 붙이기는 것을 그만 두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국민을 가볍게 보고 있다" 등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국민민주당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중의원 의원은 트위터에 "관료들이 써준 글을 읽을 뿐"이라며 "총리로서 특별한 애착이 없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연설이 같아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피폭자를 기리는 연설이 매년 새로울 수는 없기 때문에 과도한 비판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럼에도 최근 코로나19 대응을 둘러싼 아베 총리의 발언이 자신의 생각을 담아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거나 설득하기 보다 정부 방침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싸늘한 평가를 받고 있다. 아베 총리는 코로나19 대응 실패에 따른 지지율 급락 이후 기자회견을 한동안 열지 않아 언론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베 총리의 인사말은 히로시마시와 나가사키시가 매년 발표하는 평화선언과도 대비된다. 히로시마시는 매년 피폭자와 전문가의 경험을 참고해 작성하며 피폭 당시의 참상을 소개하고 있고, 나가사키시는 피폭자와 계승활동을 벌이는 젊은이들이 참여하는 기초위원회에서 공개 논의를 거쳐 작성한다.
모리타키 하루코 '핵무기 폐기를 목표로 하는 히로시마 모임' 공동대표는 마이니치신문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시장의 경우 자신의 말로 전달하려는 자세를 느낄 수 있지만 재사용한 듯한 아베 총리의 문장은 마음에 울림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원폭 희생자를 애도하는 마음이라든지 유일한 피폭국으로서 일본의 입장을 밝히는 것은 두 행사에서 아무래도 같은 내용이지 않겠느냐"고 해명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