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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를 체포하라"

입력
2020.08.13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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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성들의 분노(8.13)

인도 최하층 달리트 여성들은 카스트(신분)와 젠더를 비롯한 모든 차별의 바닥에 놓인 이들이다. 2004년 그들이 제 기능을 상실한 법원과 경찰 앞에서 한 강간 피의자를 집단 살해했다. globalcitizen.org

인도 최하층 달리트 여성들은 카스트(신분)와 젠더를 비롯한 모든 차별의 바닥에 놓인 이들이다. 2004년 그들이 제 기능을 상실한 법원과 경찰 앞에서 한 강간 피의자를 집단 살해했다. globalcitizen.org


2004년 8월 13일, 인도 중부 나그푸르(Nagpur)법원 복도에 카스트 최하층 '달리트(Dalit)' 여성 200여명이 모였다. 지역 경찰의 비호를 받으며 달리트 여성들을 상습적으로 강간하고 "최소 3명을 살해한" 폭력단 우두머리 아쿠 야다브(Akku Yadav, 1972~2004)의 보석 심리가 열릴 예정이었다. 보석 불허를 요구하기 위해 모인 여성들이었고, 다수가 강간 피해자였다.

법정에 들어서려던 야다브는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여성을 가리키며 "매춘부같은 X, 곧 다시 강간하러 갈 테니 기다리라"고 조롱했다. 분노한 여성들은 약 15분간 야다브를 짓밟고, 때리고, 미리 준비한 과도로 70여 차례를 찔러 살해했다. 한 여성은 그의 성기를 잘랐다. 22명이 체포됐고, 우샤 나라얀(Usha Narayane)이란 여성이 주범으로 기소됐다.

야다브는 10년 넘게 지역 여성들을 강간ㆍ집단강간해 10여 차례 고소당했지만 모두 무죄나 보석으로 풀려난 자였다. 어렵사리 용기를 내 그를 고소한 여성들은 경찰의 조롱과 성희롱을 당하기 일쑤였다. 반면 나라얀은 달리트 여성이면서도 대학을 졸업한 인권운동가였고, 매부는 변호사였다. 만만한 천민 여성들만 범행 대상으로 삼던 야다브나 지역 경찰에게 나랴안은 껄끄러운 존재였다. 야다브는 약 2주 전부터 여러 차례 졸개 수십 명을 이끌고 나라얀의 집에 찾아가 강간 살해 협박을 일삼다 기소됐다.

한낮 법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충격적인 사연이 알려지면서 여성들을 응원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일부 법관과 변호사들도 "여성들에겐 대안이 없었다"며 "그들은 피의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현장에 있던 여성들은 "우리 모두를 체포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나랴얀은 '종범' 21명과 함께 긴 재판 끝에 2012년 '신뢰할 만한 증언 부족' 등을 근거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야다브에게서 다량의 알코올 성분이 검출됐다는 부검보고서도 그가 경찰의 특별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을 방증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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