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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 화석 가격이 폭락하는 슬픈 이유

입력
2020.08.11 15:56
수정
2020.08.11 18:14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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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이정모국립과천과학관장
긴털매머드.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제공.

긴털매머드.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제공.



압도(壓倒)는 '뛰어난 힘과 재주로 남을 눌러 꼼짝 못 하게 함'이라는 뜻이다. 기분 좋은 단어가 아니다. 하지만 자연사박물관에 가서 느끼는 압도감은 생명에 대한 경이감을 일으킨다. 보통 자연사박물관에 들어가면 바닥에 서 있는 공룡이나 하늘에 매달려 있는 고래와 마주치게 된다. 이유는 하나다. 바로 그 압도감을 주려는 것이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도 마찬가지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백악기 공룡 아크로칸토사우루스가 멋진 포즈로 서있다. 고개를 들어 올리면 천장에 매달려 있는 푸른 향고래가 눈에 들어온다. 1억 년 전에 살았던 아크로칸토사우루스와 현생 생물인 향고래가 함께 있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박물관 2층을 절반쯤 관람하고 모퉁이를 도는 순간 관람객은 또 한 번 압도된다. 이번에는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에 살았던 긴털매머드 두 마리가 서 있다. 한 마리는 살아 있는 모습을 재현한 모형이고 다른 한 마리는 진품 긴털매머드 화석이다.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개체다. 2003년 개관한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이 구입한 가격은 2억 원대로 알려져 있다. 적은 액수가 아니다.


긴털매머드.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제공.

긴털매머드.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제공.



매머드는 비교적 최근까지 살았던 생명체다. 480만년 전부터 4,000년 전까지 존재했다. 인류와 침팬지가 같은 조상에서 갈라선 게 700만년 전이니 인류보다도 나중에 생긴 생명체다. 매머드는 아프리카에서 다른 대륙으로 퍼져 갔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매머드를 잡아먹었고 매머드 가죽을 입었으며 매머드 뼈로 집을 지었다. 전곡선사박물관에는 매머드의 뼈와 상아로 지은 집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매머드는 코끼리를 닮았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긴 코를 가진 장비목(長鼻目)이다. 긴 코는 딱히 코라고 할 수는 없다. 입술과 코끝이 늘어난 것이다. 흔히 매머드는 코끼리보다 훨씬 몸집이 컸을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예외적으로 아주 큰 개체가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아프리카코끼리보다도 작았고 아시아코끼리 정도의 크기였다. 아무튼 큰 포유류에 속하니 당연히 초식이었다. 고기만 먹어서는 큰 몸집을 유지할 수 없다. 매머드는 솔잎이나 나무의 어린 가지를 먹고 살았다.

매머드와 코끼리는 생김새가 비슷한 것 같지만 하나씩 따져보면 거의 반대 성향의 모습을 가졌다. 가장 큰 차이는 귀와 털이다. 아프리카코끼리는 귀가 크다. 열을 발산하기 위한 장치다. 그런데 매머드는 귀가 아주 작다. 그리고 두꺼운 지방질이 쌓인 피부 겉은 털로 덮여 있다. 코도 털로 덮여 있다. 게다가 항문을 열고 닫는 게 가능했다. 추위를 막기 위한 방한 시스템으로 무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매머드는 4,000년 전 왜 갑자기 멸종했을까? 사실 갑자기는 아니다. 서서히 멸종했다. 우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힘을 너무 과대평가하지는 마시라.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구가 더워졌다. 빙하기가 끝나면서 긴털매머드가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긴털매머드가 발견되는 곳은 시베리아 동토다. 그들에게는 더워서 살 수 없었지만 당시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시원했다.

요즘 긴털매머드 화석은 암시장에서 2,000만원 대로 거래되고 있다. 가격이 20년 전보다 10분의 1로 떨어진 것이다. 원인은 짐작하신 대로다. 긴털매머드가 마구 발견되고 있다. 지구가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툰드라 동토가 녹으면서 긴털매머드 화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긴털매머드 화석 가격의 폭락 원인은 기후위기인 셈이다.

최근 긴털매머드를 복원하려는 연구가 시작되었다. 영화 '쥬라기공원'처럼 매머드 공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매머드 복원은 가능할 것이다. 2007년 이후 살이 붙어 있는 거의 완벽한 개체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냉동 매머드의 살에서 세포를 꺼내 핵을 분리하고, 핵을 제거한 코끼리 난자에 집어넣은 후, 이것을 다시 코끼리 자궁에 착상시켜서 새끼 매머드를 탄생시키겠다는 거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복제양 돌리를 만든 것과 같은 과정이다.

그런데 말이다. 생명공학으로 복원한 긴털매머드를 키울 수 있는 곳은 이제 지구에는 남아 있지 않다. 지구는 너무 뜨겁다. 꿈 깨자. 대신 자연사박물관에 가서 압도당해 보자.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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