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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우롱하는 복지부 장관

입력
2020.08.12 04:30
수정
2020.08.12 07:2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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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0일 정부세종청사 복지부 브리핑실에서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세종=뉴스1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0일 정부세종청사 복지부 브리핑실에서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세종=뉴스1


“대통령은 대중께 직접적으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는 언급을 한 적이 없다.”

지난 10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내년부터 2023년까지 적용되는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 발표 후 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2차 종합계획에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무산돼 "대통령 공약파기"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내놓은 해명이다.

박 장관의 말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대한 언급은 차고 넘친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자 시절 발행한 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 168쪽에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의 급여 수준을 현실화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 폐지함으로써 국민 누구나 국민최저선 이상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고 명시했다.

같은 시기 42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행동(폐지행동)’이 대선후보자들에게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요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서면질의에도 문 대통령은 완전 폐지를 약속했다.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부분 폐지를 약속한 것보다 한층 더 빈곤층에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서면답변에서 “국민 개인의 기본권적 생존권 보장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우리나라 헌법정신”이라며 “생존권 보장 책임을 개별 가족에게 전가하는 부양의무자기준은 궁극적으로 폐지돼야 한다”고까지 했다.

누가 봐도 문 대통령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원칙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의료급여에서만 예외로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박 장관은 “대통령은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 철폐에 초점이 있는 말씀이지 의료급여를 말한 것은 아니다”고 눙치기까지 했다. 인사권자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무능이며, 알면서도 이렇게 말했다면 주권자인 국민 우롱이다.

차라리 박 장관은 “대통령은 언급한 적이 없다”고 발을 뺄 게 아니라 왜 다른 급여들과 달리 의료급여만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더딘지를 적극 설명해야 했다. 문 대통령의 공약집에도 '국민적 동의 및 재정여건, 도덕적 해이 방지 장치 마련 등을 고려해 급여별, 대상자별 단계적 폐지 추진'이라는 단서가 붙었던 사항이다. 의료급여와 다른 급여의 차이가 뭔지, 어떤 점에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이번 정부에서는 달성할 수 없는 약속이었는지를 국민에게 알리고 설득했어야 했다.

박 장관은 의료급여를 받지 못한 빈곤층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취약계층 의료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23년까지 부양비와 수급권자 소득ㆍ재산 반영 기준을 개선하면 19만9,000명이 추가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만원도 채 안 되는 건보료를 납부하지 못하거나 본인부담금이 부담돼 아파도 참는 극빈층은 사각지대로 남는다. 추가 수급권자가 늘어난다 해도 연을 끊고 사는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는 73만명(2018년 기준)의 27%에 그친다. 산술적으로 53만여명은 의료급여 수급자격이 되는 극빈층인데도 못 받고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은 가족이 버린 사람을 정부가 버려도 된다고 말한 적이 없을 뿐이다.

김진주 정책사회부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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