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016년 미국 대선 시기 하와이 체류 중이었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던 동네다. 그런데 11월 투표 직전 ‘트럼프에게 한 표를’ 팻말을 들고 길가에 종일 앉아있던 백인 노부부들이 눈길을 끌었다. “세금을 깎아준다는데.” “이민자가 우리 일자리 가져가는 걸 막아준다는데.” 백인 노동자, 소상공인의 ‘욕망’을 제대로 자극하고 ‘혐오’를 일반화하는 사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트럼프 세상’이 탄생했다.
그는 재임 4년간 ‘MAGA’(Make America Great Againㆍ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쳤다. 중국과 유럽을 압박하고 기존 국제질서를 뒤엎었다. 극심한 내부 갈등을 몰고 왔지만 50% 안팎의 지지는 굳건했다. 비록 3월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처 실패, 주가 하락과 실업률 상승,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후 인종 갈등 문제로 타격을 입었지만 아직 대선 결과는 모를 일이다.
에이미 추아 미 예일대 교수는 저서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이런 미국 사회의 맹점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한다.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던 뉴욕 월가의 ‘점령하라’가 상대적으로 특권층이 이끈 운동인 데 비해 “기도하면 부자 된다”는 ‘번영 복음(prosperity gospel)’은 미국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 운동임을 그는 지적했다. 저소득층 계급에선 ‘부자들의 세계를 점령하라’ 같은 거창한 구호보다 ‘기도하면 돈을 번다’는 욕망 부추김이 먹힌다는 분석이다.
트럼프가 주로 백인들이 열광하는 나스카 자동차대회나 프로레슬링 WWE를 활용하는 것도 주목한다. 수십 수백년 기득권층으로 살았던 미국 백인의 위기감이 ‘부족주의’ 정체성으로 등장하고, 진보 진영은 이를 뚫지 못한다는 게 추아 교수 설명이다.
트럼프 따라하기 때문일까. 한국 정치 역시 미국 못지않게 욕망과 혐오 활용, 그 언저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이루려 집권을 하고, 다수당이 되려 했는가. 왜 정치를 하고 있는 건가.’ 스스로 정치의 목적을 질문하지 않는 순간 혐오와 차별을 기반으로 한 욕망의 정치가 득세하는 게 역사다. 미국의 경우 정권을 빼앗긴 민주당은 물론 트럼프와 티파티를 방치했던 공화당 내 합리적 보수 진영이 토로했던 낭패감을 보라.
그래서 우리는 달라야 한다. 인종 차별 문제를 지적했던 방송인 샘 오취리가 외롭지 않도록,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당당함이 꺾이지 않도록 응원하는 것이 혐오ㆍ차별정치 차단, 정치 정상화의 첫 시험대다. 트럼프식 막무가내 정치가 한국에서 사라지게 하는 길이다.
또 하나. 알맹이 없는 비정규직 철폐 구호가, 정교하지 못한 부동산대책이 불러온 후폭풍 문제다. “우리 정책에 대한 오해”라고 말하기 전에,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은 임대인이자 임차인”이라고 비아냥거리기 전에, 그만큼 더 공부와 준비를 해야 한다. 당신들이 내세운 가치가 훼손되지 않되 유권자의 욕망을 정치의 공간에서 정당하게 수렴할 정책 수립과 집행에 신경 쓰길 바란다. 개별 유권자의 본능적 욕망을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틀에 담아내지 못하는 순간 모든 공리가 허물어진다.
2020년 미국 대선의 결과가 어떻든 최선의 민주주의 모델은 아니다. 2022년 한국 대선이 미국식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